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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관(死生觀)
사생관(死生觀)
  • 의사신문
  • 승인 2018.11.1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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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54〉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최근에 한 시니어 잡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동년기자가 만난 사람'이라는 잡지 코너의 제목과 같이 동년배와 인터뷰하는 형식이어서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기자가 왔다. 슬쩍 물어보니 나보단 한 살 정도 아래다. 한 살, 따질 거리도 되지 않는 차이지만, 기자는 마치 그 한 살로 늙음의 정도가 대단히 크게 다르다고 믿고 있는 듯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사생관'을 물어왔다. 사생관(死生觀). 죽음을 전제로 죽음을 통해 삶을 살피고 따져보는 관점이다. 대개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부터 `죽으면 어디로 가나' 등의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사생관을 드러낸다. 수 차례의 질문에도 사생관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게 된 동년기자가 `혹시 다른 이들의 관점은?'하고 묻는다. 필시 비슷한 나이인 자신의 생각과 많이 달랐거나 지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들의 사생관을 이야기하라니….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언지사록(言志四錄)'이 생각났다. “그러면, 이웃나라 일본인의 사생관을 이야기 하죠”

일본인의 사생관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다는 `언지사록'[국내엔 `언지록' 번역판이 있다]은 `중국에 `채근담'이 있다면 일본엔 `언지사록'이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유명하다. `언지사록'은 사토 잇사이가 인생 후반 사십여 년에 걸쳐 쓴 어록을 집대성한 책이다. 1824년에 만든 `언지록'과 저술한 `언지후록(言志後錄)', `언지만록(言志晩錄)' `언지질록(言志?錄)' 등을 합하여 묶은 `언지사록'은 42세부터 82세까지 40년 동안 정성들여 완성한 자신의 마음공부와 사색, 자성의 내용을 담은 1133조의 금언들을 모은 책이다. 양명학의 `이기합일(理氣合一', `死生一如' 사상을 기본으로 학문하고 수양하는 방법,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방법, 인생관 등에 대해 적고 있다. (사토 잇사이는 높은 수준의 유학자여서 내용 속에 유교의 사생관이 나타나있지만 유학에 문외한이어도 접하기가 수월하다.)

예를 들면 “본래의 내가 있는 곳은 삶과 죽음의 울타리 밖에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이 생명은 부모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며 죽음은 받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즉 죽음은 받은 생명을 반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완전 상실'이 아니라 일종의 변환이다. 출생과 죽음은 직접 연결되어 변환할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본디로의 변환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이러한 사생관을 실제생활에도 적용하기 어렵지 않게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인간의 수명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을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이 수명을 길게 하거나 짧게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로 수명을 증진시키거나 연장시키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계획이나 구상 따위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하늘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계획하고 구상하게 하여 수명을 조절해보려 한다. 만일 장수를 누린다면 그 또한 하늘이 부여해 주는 것이다. 즉, 사람이 요절하느냐 장수하느냐는 하늘의 뜻이며 사람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생사를 인생의 중대사로 간주하고 있지만, 낮과 밤은 하루의 삶과 죽음이며, 들숨과 날숨 또한 한 순간의 삶과 죽음이다. 그저 우리네 일상의 양면이다. 본래의 자신이라 불리는 본심이나 본성은 이러한 생사의 범위 밖에 있다. --- 거짓 없는 솔직한 마음을 성실하게 한숨 한숨을 소중히 하여 최후 임종 때, 단지 휴식 상태에서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모든 망념(妄念)을 내려놓고 번뇌 없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큰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눈을 감고 마감할 뿐이다”고 이야기하며 “장년에 배우면 노년에 쇠하지 않는다”며 배우고 익혀가며 부대끼는 적극적 삶을 강조한다.

`언지사록'은 일본의 지도자들이 선정한 `처세의 명저'의 저자로 꼽히며 당대의 유학자에서부터 현대 일본을 좌우하는 정재계 인사들에게까지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사토 잇사이는 어린 시절, 밤에 유흥가로 나가 취객을 때리고 도망치기도 한 난폭한 사무라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될 무렵 분연히 뜻을 세우고 수양에 전념하여 장년기에 이르러 학문이 원만한 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70세 무렵 그의 학덕은 날로 높아져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태산북두(泰山北斗)로 불리며 우러러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다소 긴 사설인데도 기자는 참을성 있게 다 듣고 나서 주고받은 내용을 꼼꼼히 정리하며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의 사생관은 남의 사생관을 엿보고 살피는 건가요?” 불쑥 던지는 퉁명스러움을 보니 자신의 이야기는 감추고 남의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는 모습이 아무래도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아하, 그렇진 않습니다” 정색을 하며 지금까지 보다 더 진지하게 대답을 이었다. “인터뷰 내내 여러 번에 걸친 질문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동어반복(同語反覆)을 할 만큼의 사생관을 나름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신앙에 기초한 것이어서 꽤 견고한 사생관입니다. 그러나 세세하게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열심히 사생(死生)하는 게 제 사생관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장년에 배우면 노년에 쇠하지 않는다'는 사토 잇사이의 조언도 얼마간 마음에 두고 있는 까닭입니다” 나와 기자 둘 사이에 잠시 뜨악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사토 잇사이 이야기를 보탰다. `사토 잇사이는 1859년 여름 무렵 병에 걸려 향년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변환하였다. 아니 하늘이 변환시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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