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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숭숭 난 새 우산, 병원양수도계약서 〈하〉
구멍 숭숭 난 새 우산, 병원양수도계약서 〈하〉
  • 의사신문
  • 승인 2018.11.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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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8〉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지난 글에서는 어떠한 계약이던지 그 주된 뼈대는 똑같다는 점을 보았다. 그 내용이 기억나시는가? 이전 정부의 막후 실세로 호가호위하다가 현재 국가가 주는 식사, 옷, 숙소를 이용하고 있는 모 씨가 법정에서 한 말과 같이, `오늘 먹은 점심도 기억 안 나는데 그게 기억이 나겠느냐?'라고 반박하실 것 같다. 백 번 맞는 말씀이므로 다시 한 번 살펴보겠다.

어떠한 계약이던지 ① 합의의 대상, ② 합의이행시 필요한 내용, ③ 합의불이행시 필요한 내용, ④ 기타 필요한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은 병원양수도계약뿐만 아니라 다른 계약들에도 통용되는 일반 원칙이므로 알아두면 의외로 유용하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병원양수도계약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자.

첫째로 `합의의 대상'을 명확하게 특정하여야 한다. 병원양수도계약의 합의의 대상은 무엇인가? 당연히 `양수도 내역'이다. 그런데 양수도 내역이라고 하면 흔히 물건만을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물건, 권리, 그리고 `의무'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양수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보면, 돈은 다 주었는데 양도인이 당연히 처리할 줄 알았던 기존의 의무(ex. 약품대금, 부동산 미납 관리비 등)가 이행되지 않았다면 당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약품도매회사가 양수인에게 약품대금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한다면 당황을 넘어 황당할 것이다.

따라서 합의의 대상에는 병원 운영과 관련한 채권·채무에 관한 것, 병원 소재 부동산의 임대차에 관한 것, 병원에서 이용하고 있는 기기나 설비에 관한 것, 진료를 위하여 리스한 의료기기에 관한 것, 병원이 제공받고 있는 용역(ex. 의료폐기물수거용역, 청소용역, VAN용역 등)에 관한 것, 병원이 고용하고 있는 인력에 관한 것 등 “병원 운영과 관련된 물건, 권리, 의무에 관한 모든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항들을 일련번호를 붙여 하나도 빠짐없이 목록화하여 기재한 후 합의하여야 한다. 막연하게 `의료장비 일체', `의원 운영에 대한 권리'라는 식으로 기재하는 것은 안한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이 중에서 의료기기 리스계약과 같이 양도인이 제3자와 계약을 체결하였던 사항은 그 계약의 내용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 계약관계도 병원이 양수도되는 경우 처리·정리되어야 할 대상이므로, 이 역시 합의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합의이행시 필요한 내용'은 비법률가도 친숙한 내용이어서 특약사항 등으로 상대적으로 자세히 기재하는 편이다. 하지만 위에서 본 `합의의 대상'에 대하여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지, 특히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 누가 부담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병원양수도계약에서 가장 부실한 부분은 셋째 `합의불이행시 필요한 내용'이다. 양수인은 양수도가 잘 마쳐졌다고 생각하고 의욕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몇 달 뒤에 보니 양도인이 약간 떨어진 곳에 다시 병원을 개원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양수도 협의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로 양수도가 무산되는 경우의 출구전략에 관하여도 충분히 합의하여 놓아야 한다. 즉 양수도계약의 해제·해지사유, 그 절차, 해제·해지의 효력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기재해 놓아야 한다.

그런데 원장님들도 우리나라 사람인지라, 좋은 얼굴로 병원양수도를 협의하던 중에 “한쪽이 뒤통수치면 어떻게 할까요?” “협의하다가 엎어지면 어떻게 할까요?”라는 말은 보통 꺼내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두 분이 합의한 중립적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물론 비용은 반분한다).

넷째 `기타 필요한 내용'은 법률 기술적인 부분으로써, 합의의 대상을 더 명확히 하거나 분쟁 발생시 그 해결에 필요한 내용 등을 다양하게 규정한다. 이 부분은 기술적인 부분이므로 역시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구멍 난 우산의 문제점은, 맑은 날에는 우산에 문제가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우산이 있다'는 것에 안심을 하게 만들다가, 비가 와서 실제로 꺼내 쓰면 주인을 배신(?)하고 비를 줄줄 맞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멍 난 우산은, 우산으로서는 실격이다.

부실한 병원양수도계약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록 인터넷 검색으로 얻었지만) 공들여 작성하고, 심지어 법무법인까지 찾아가 돈 들여 공증까지 받아 놓은 병원양수도계약서가, 당황 또는 황당하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하여 고이 모셔놓은 계약서를 찾아보게 만드는 실제 문제 상황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병원양수도는 법적으로도 당연히 중요한 일이며, 무엇보다도 그간 원장님이 심혈을 기울여 일군 병원을 의료시장에서 평가받는 것이므로 일종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게다가 양수도 이후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간단치 않거나 분쟁액수가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도 양수도계약 체결 당시 양도인이 책임질 채무의 범위를 분명히 규정하지 않아 병원을 양수하고 한참 지난 뒤에 1억 원에 가까운 약품대금청구소송을 당하여 패소한 원장님이 있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출처불명의 두 페이지 계약서를 믿지 말고, 미리 전문적인 상담과 조력을 받을 것을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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