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다릅니다”
“매우 다릅니다”
  • 의사신문
  • 승인 2018.11.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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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53〉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대학 동창 모임에 가면 참석자들 중에서 나는 아직 젊은 부류에 든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제1회 선배를 감안하면 젊다기 보다 어린 축에 속하는 편이다. 한 세대를 넘어 연배가 높은 같은 직업의 선배 말씀은 언제나 그 값이 귀할 수밖에 없다. 그날 모임에서도 사회자는 1회 선배의 귀한 말씀을 청했다.

“선배님, 후배들에게 한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좌석으로 마이크를 들고 다가서자 선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정정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느려진 - 그래서 더 진중하게 들리는 - 음성은 또렷했다.

“많이 다릅니다.”

짧은 대답 후 정확하게 일어설 때의 역순으로 천천히 앉았다. 직접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자네들 나이 때 생각했던 늙음과 스스로 나 자체인 늙음은 흠씬 다르다.'는 말이었을 게다.

그의 대답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두 명의 시인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끝과 시작〉 일부]라는 구절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년∼ 2012년)고, 또 한 사람은 대부분의 평자들이 `덧없음의 시인'이라 부르는 `조병화'다.

1996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여류 시인 쉼보르스카는 2012년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스웨덴 한림원은 “모차르트 음악처럼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 폭발을 지니고 있다”고 시상 심사평을 달았다. 그녀의 시는 탄탄한 번역의 도움까지 받아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연습 없이 태어나서 훈련 없이 죽는다'고 노래한 삶과 죽음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두 편의 시로 충분히 깊게 엿볼 수 있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예를 들어 넌 꿈을 꾸는 데 한 푼도 지불하지 않지./환상의 경우는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대가를 치르고./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나가고 있어./그것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한지/ 너는 표 값도 지불하지 않고, 행성의 회전목마를 탄 채 빙글빙글 돌고 있어./그리고 회전목마와 더불어 은하계의 눈보라에 무임승차를 해./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
- 〈여기〉 일부, 번역 최성은, 쉼보르스카 시집 `충분하다'/번역 최성은

필자는 `삶은 정신없이 흐르는 저렴한 허용'이 그녀가 드러내는 삶의 정의라고 요약한다.

“가까운 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건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어나는 일,/존재할 것이냐 사라질 것이냐,/그 가운데 후자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했을 뿐./단지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할 뿐이다,/그것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란 걸,/과정의 일부이고, 자연스런 귀결이란 걸./조만간 누구에게나 닥치게 될 낮이나 저녁,/밤 또는 새벽의 일과라는 걸.”
_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부, 쉼보르스카 시집 `충분하다'/번역 최성은

그녀에게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의 일부'다. 즉, 연습을 하고 훈련을 받을 주체성도 여유도 없이 `빙글 빙글'도는 회전목마의 어느 말이 삶이고 어느 말이 늙음이고 어느 말이 죽음인가. `늙어 죽음'이란 우리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고, 그것에 관해 `예측 불가능한 섭리'라고만 예측할 수 있음을 쉼보르스카는 일깨워준다.

부인이 산부인과 의사여서 생활이 비교적 풍족했던 조병화(1921∼2003) 시인은 `죽음을 길들이기'를 자주 말하여 `무상철학(無常哲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별의 장소에서 곧잘 불리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아름다운 손목/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인생이 그러하거니와/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떠나는 일일세/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인생은 인간들의 옛집/아!/우리 서로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사세”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조병화 전문

늙어 저승으로 떠나는 연습.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하나.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진 않다. 다만 그의 시 〈눈에 보이옵는 이 세상에서〉에 해답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

“얘,/너 뭐 그리 생각하니/사는 거다 그냥 사는 거다//슬픈 거,/기쁜 거//너대로/다 그냥 사는 거다//잠깐이다/바람이 불고/눈이 내리고//얘,/너 뭐 그리 혼자 서 있니/사는 거다 그냥 사는 거다//슬픈 거,/기쁜 거다// 너대로 그냥 사는 거다/그게 세상 잠깐이다”

아하, 그렇구나. 떠나는 연습과 훈련은 다름 아닌 `철따라 알맞게 그냥 그대로 사는 거다.' 왜냐하면 “바람도 눈도 나에게 묻지 않고 불고 내리니 내가 해볼 여지가 없는 잠깐이므로.” 그래서 쉼보르스카도 비록 `저렴한 인생'이었지만

“나는 참으로 길고, 행복하고, 흥미로운 생을 살았다. 그리고 꽤나 인복이 많았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운명에 감사하며, 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화해를 청한다”라고 인생 말기에 슬며시 순순히 응했나 보다. 그리고, 쉼보르스카와 조병화가 노래한 시편들 속에 담겨 있는 사연들을 대부분 겪었고 겪고 있는 노선배는 `스스로 해볼 도리가 없었음을 알고'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했구나.
“매우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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