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책벌레
무라카미 하루키와 책벌레
  • 의사신문
  • 승인 2018.11.0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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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97〉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오랜만에 동네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 갔다. 이 책 저 책을 뒤지다가 일본 유명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눈에 띄어 몇 권을 대출하였다.

그 동안 하루키의 명성은 간혹 들었지만 일본 작가에 대한 선입관 때문인지 아직 글을 읽어 보지는 않았다. 베스트셀러답게 그의 책들은 많이 찾은 흔적이 있어 종이는 낡고 표지는 손상되어 투명 테이프로 여러 번 다시 붙인 흔적이 있었다. 아내는 그런 헌 책을 빌려왔다고 핀잔을 주었다.

며칠 전 한밤 중에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 하루키의 단편 소설 한 편을 읽게 되었다. `뉴욕 탄광의 사고'라는 제목이었다.

“대도시 뉴욕에 무슨 탄광이야?”하고 의아해 하다가 글을 다 읽고는 작가의 의도를 알아챘다. 대도시 일상에서 생기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작가 특유의 간결한 글 솜씨가 돋보이지만 암시적인 내용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소설 첫 머리에 같은 제목인 비지스의 `뉴욕 탄광의 사고' 노래가사가 있고, 뒤이어 다음 줄거리가 나온다.

“20대 후반의 남자 주인공인 나에게는 별난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친구는 비 오는 날이면 동물원에 가서 평소에 못 보는 동물의 모습을 즐기는 것이다. 주인공은 장례식에 갈 때마다 그 친구에게 검은 장례식 용 양복, 넥타이와 구두를 빌린다. 즉, 죽음을 자기의 일로는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28세가 되는 해 가까운 친구 5명이 연달아 사망한다. 자신의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그 해 마지막 날 파티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주인공을 꼭 닮은 사람을 자기가 살해했기에 나(주인공)는 오래 살 것이라고 말하고 헤어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내가 무너진 탄광 속에 갇혀 있는 장면이다. 산소가 소진될까 봐 모두들 얕은 호흡을 하면서 구조원이 접근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소설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주인공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 난해하다. 어떤 내용이 현실일까? 우선 전반부가 현재일 가능성이 높다. 주인공은 다른 젊은이처럼 죽음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었다.

“이십 대 나이에 요절은 전설 속의 시인이나 혁명가, 로큰롤 가수에서나 생기지 보통 사람에게는 부적합한 나이이다.” 그러나 죽음은 어느새 다가와 일상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들을 기습적으로 강타한다. 그 황당함은 뉴욕같이 큰 대도시 땅 밑에 예상 못 하는 탄광이 있어 일어난 붕괴 사건과 같다. 두 번째는 무너진 탄광이 현실이고 처음 이야기는 주인공의 꿈이나 상상일 수도 있다.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무너진 탄광에서 그는 여자 주인공의 마지막 말을 희망 삼아 생환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독서 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바닥에 움직이는 하얀 물체가 문뜩 눈에 띄었다. 일 센티미터 가량의 길쭉한 몸체에 10쌍이 넘는 양다리가 가지런했다. 처음 보는 애벌레이지만 나는 한 눈에 책벌레의 유충임을 알아챘다. 나는 입술 바람으로 멀리 보내려 했지만 내 쪽으로 필사적으로 기어 오다가 숨을 불면 죽은 척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아하, 책으로 돌아 가려는 구나!” 라는 생각에 책을 가까이하고 열자 강아지가 뛰어오듯 벌레가 들어왔다. 나는 서가의 헌 책 더미에 그 소설책을 얹어 놓아두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부처님은 모든 세상사를 연기론(緣起論)으로 설명하셨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소 복잡한 상황이다. 우선 작가의 여러 특별한 경험이 죽음을 주제로 한 이 단편소설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소설 속 남녀의 실제 모델, 탄광 붕괴와 죽음, 같은 제목의 비지스 노래… 또 어떤 인연으로 내가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일본 작가에 대한 편견, 하루키와 나, 내가 도서관에 간 원인과 시점 등등. 여기에 책벌레까지 등장하여 위기를 맞는다. 앞으로 이 사건으로 연결될 미래의 결과와 또 다른 인연들이 궁금해진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엉키고 설킨 연기의 한 끈이 되겠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책벌레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한창 때의 유충으로 도서관에 쌓여있는 섬유질 먹이가 가득 찬 고서들 사이에서 청춘을 안락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키 소설책에 머무를 때 난데없이 내가 그 책을 빌리면서 외딴 곳에 오고 죽음 바로 앞까지 갔다가 온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대도시 땅속에 있는 붕괴된 탄광에 떨어진 것과 같이 예측 못한 황당한 일이다. 애벌레가 살아 돌아 온 이 사건은 그 쪽 사회(?)에서 미래에 작지 않은 여러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우리 눈 앞에 있는 책벌레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즘 학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다중 우주론(多重宇宙論)에 의하면 우주는 상상 못할 정도로 영원하고 광대하며 11차원으로 작동해 여러 우주에서 서로 다른 일이 동시에 생긴다고 한다.

하루키가 이러한 이론을 알았는지, 또는 작가의 직관인지 모르지만 두 이야기가 같이 진행되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도시에서 일상생활도 하고, 동시에 탄광에서 매몰 사고를 당한다. 두 이야기 모두 죽음을 다루고 주인공은 살아남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인간 사회와 벌레 사회의 상호 연관도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또, 죽음이 지금 현실에서 다른 우주로 갈아타는 과정일 지도 모르겠다.

우주에는 어떤 모든 일도 생길 수 있고, 또 생긴다. 뛰어난 문학가인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모호한 뜻을 깔끔한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소설을 끝냈다.

“모든 것이 한참 옛 날, 어딘가 머나먼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 같았다. 혹은 모든 것이 한참 나중에, 어딘가 머나먼 세계에서 일어날 일일 것도 같았다.”

여기서 나는 생각해 본다. 언제 어느 세계에서나 연기의 법칙은 여전히 작용할 것이다. “우주와 조물주의 원리나 뜻은 알 수 없으나 나에게 온 인연을 좀 더 좋게 바꾸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남길 수 있는 최선의 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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