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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제14번 D단조 .810 '죽음과 소녀'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제14번 D단조 .810 '죽음과 소녀'
  • 의사신문
  • 승인 2010.07.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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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남모르는 고뇌ㆍ체념 담겨

슈베르트가 죽기 2년 전인 29세에 완성한 이 현악사중주는 기존의 다른 14개의 현악사중주가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의 소규모인 것과 달리 사색적이고 성숙된 그의 음악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과 비교하여 심각한 철학이나 인생관보다는 슈베르트만의 낭만적인 요소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다. 

현악사중주 제14번이 `죽음과 소녀'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는 제2악장이 슈베르트 가곡 `죽음과 소녀'의 반주부분을 도입하여 그 음울한 선율을 바탕으로 한 변주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가곡 `죽음과 소녀'는 마티우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죽음이 임박하여 병상에 누워있는 소녀와 그녀의 목숨을 거두려고 문 칸에 지켜선 죽음의 사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아직 어려요. 부디 다가오지 마세요.”라는 소녀의 간절한 소망에 죽음의 사자는 “나는 친구란다.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니야. 편안한 마음으로 내 팔에 안겨 꿈결같이 편히 잠들어라.”고 달래면서 그녀의 영혼을 데려가 버린다는 내용이다. 제2악장은 마치 죽음의 신이 행진해 들어오는 듯 묵직한 4박자의 선율을 주제로 사용하면서 음울한 분위기를 구사하고 있다.

슈베르트는 죽기 전 병석에 누워 있을 때도 좀처럼 안경을 벗질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부는 그가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한밤중에 문득 악상이 떠오르면 일어나는 대로 작곡을 하기 위해서였다. 끊임없이 샘솟는 악상은 불과 14년이라는 기간에 1200여 곡이나 되는 곡을 창작하게 되고 그 중에는 짧은 가곡 뿐 아니라 9곡의 교향곡, 피아노삼중주, 15곡의 현악사중주, 많은 성가곡, `로자문데'와 같은 무대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명곡들을 쏟아냈다. 이는 1주일에 2∼3곡씩 작곡을 했다는 의미로 그의 작곡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는 작곡을 시작한지 2년이 지나서야 완성을 했으니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작곡이 지연된 이유는 그해 여름 세레스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와 절친했던 소프라노 가수 테레제와 함께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우연하게도 베토벤은 현악사중주 작품 131을 완성하였고 그 전 2년 동안 작품 127번, 작품 130과 작품 132을 썼다. 이 시기 3년 동안 불후의 현악사중주 6곡이 완성되어 발표된 것이다. 가히 `천재의 시대'라 할 만하다.

제1악장: Allegro 마치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이나 피아노소나타 `열정'처럼 정열적인 주제가 중심이 되어 치밀하고 엄격한 고전적 조성으로 전반적으로 죽음과의 투쟁을 간결하게 나타내고 있다. 제2악장: Andante con moto 슈베르트의 남모르는 생의 고뇌와 체념이 흥건히 넘쳐흐르면서 어둡고 우울한 악상은 그의 아픔을 엿보게 한다. 죽음의 사자가 나타날 때 그 우울한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고 바이올린의 자유로운 노래로 주제가 하늘로 날아가면서 마치 꿈과 같이 아련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제3악장: Scherzo: Allegro molto 신코페이션의 특이한 리듬과 악센트가 마치 죽음의 무도가 벌어지는 환상에 젓게 만든다. 그 사이사이에 나오는 트리오의 부드러움은 슈베르트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제4악장: Presto 타란텔라 무곡풍의 피날레는 소녀에게 남아있는 생명의 마지막으로서 광란하는 죽음의 춤 후에 오는 어둡고 침울한 그늘이 깔리면서 마지막을 향해 다가간다. 동시에 소녀의 생명도 끝을 맺는다.

■들을만한 음반: 부슈 사중주단(EMI, 1936); 알반베르크 사중주단(EMI, 1984);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Westerminster, 1950); 이탈리아 사중주단(Philips, 1979); 보로딘 사중주단(Teldec, 1995); 스메타나 사중주단(Denon, 1978)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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