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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7번 Bb장조, 작품번호 595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7번 Bb장조, 작품번호 595 
  • 의사신문
  • 승인 2018.10.2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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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55〉

■암울한 시기에 나온 천의무봉의 실내악적 협주곡
모차르트의 대부분 작품들은 천재적인 경이로움이 있지만 이 마지막 피아노협주곡에서 마주치게 되는 경이는 좀 더 각별하다. 얼핏 그저 수수하고 담담하게 스치듯 흘러가는 선율 같지만, 그 안에는 실로 형언하기 불가능한 무수한 감정과 생각의 편린들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좀 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이들에게만 슬며시 아주 비밀스런 속삭임으로 스며든다.

최근 연구에서 이 협주곡의 첫 부분이 쓰인 오선지가 모차르트가 1788년경 자주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시기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곤궁했던 시기였다. 1790년 초 신작 오페라 〈코지 판 투테〉가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의 위촉자였던 황제 요제프 2세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공연은 중단되고 말았다. 후임 황제인 레오폴트 2세는 모차르트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아 궁정음악가였음에도 대관식에 초청조차 하지 않아 자비를 들여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알현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건강도 나빠지면서 일 년 중 절반 가까이를 작곡 및 연주 활동을 전폐하다시피 한 말년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는 뜻밖에 새로운 희망과 더불어 밝아 오고 있었다. 새 제자들이 생겼고, 뜸했던 작곡 의뢰도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고 연주회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져 갔다. 바로 이 시기에 이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곡의 전반적인 이미지는 구김살 없이 맑고 투명하며,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들뜬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다만 제2악장을 중심으로 시종 지속되는 겸허하고 정제된 표정과 어조에서 그가 고달픈 나날들을 겪으며 얻었을 깨달음과 말년의 성숙미가 감지된다.

시적인 아름다움과 영적인 숭고함을 동시에 지닌 이 피아노협주곡은 모차르트가 그리 길지 않았던 생애를 마감한 해인 1791년 초 완성된 후 3월 궁정요리사 이그나츠 얀의 집 음악회에서 초연되었는데, 이 음악회는 모차르트가 피아니스트로서 협연한 마지막 무대였다. 그 무렵 그의 삶은 겨우 11개월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3년 가까이 곤궁한 생계를 이어오던 때였다. 그의 모든 협주곡 중 가장 차분하고 내성적인 이 작품은 얼마 후 다가올 자신의 최후에 대한 예시를 하고 있는 듯하다.

모차르트는 이 곡에서 팀파니, 트럼펫, 클라리넷을 빼고 비교적 간소한 실내악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사용했다. 그 대신 오케스트라 속의 악기들, 특히 목관 파트와 피아노 사이에 더욱 긴밀한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하였고, 무엇보다 현악기들이 빚어내는 단정한 흐름 위로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독주 피아노의 울림, 그리고 섬세함과 친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피아노와 목관악기의 화음은 가히 천의무봉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주요 선율들이 한껏 머금은 영롱함과 정겨움이 가미된 이 작품은 진정한 `실내악적 협주곡'이다.

△제1악장 Allegro 물결치는 듯 현악으로 시작하며 주제 선율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제1주제는 차분하면서 친근한 인상을 주며 싱커페이션 리듬의 제2주제는 조금 더 경쾌하다. 이들이 기분 좋은 대비를 이루며 온화하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그 속에 모차르트 완숙기의 특징인 다채로운 조바꿈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모차르트 전기 작가 생 푸아는 그 탁월함에 대해 “모차르트는 그 주제가 무지개와 같이 모든 색채를 통하여 진행되도록 만들었는데, 변화된 세계에서 자신이 간직한 내면의 시를 초라하게 만드는 일도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라고 극찬하였다.

△제2악장 Largetto 우수 어린 표정을 띠면서 차분한 흐름 속에 우미하고 고상한 느낌으로 리드미컬하다. 특히 주제 선율은 피아노협주곡 제20번, 제23번, 제26번의 제2악장 주제들을 연상시키지만 고도로 정제된 표현과 오묘한 여백의 미는 이전 작품들을 능가하는 경지이다.

△제3악장 Allegro 명랑한 사냥 음악풍으로 시작과 함께 피아노가 연주하는 주제는 마치 가볍게 춤을 추듯 경쾌하고 사랑스럽다. 제2주제 역시 명랑하게 춤을 추는 듯 피아노독주가 더 화려한 움직임을 보인다. 주제는 이 협주곡이 완성된 직후에 만들어진 가곡 `봄을 기다림'의 선율과 일치하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오라, 사랑스런 5월이여, 나무들을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여다오, 시냇가의 작은 제비꽃들도 나를 위해 만발하게 해다오!'

■들을 만한 음반
△프리드리히 굴다(피아노),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75)
△로베르토 카자드쉬(피아노), 조지 셀(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CBS, 1962)
△클라라 하스킬(피아노), 페란츠 프리차이(지휘), 바이에른 국립 오케스트라(DG, 1965)
△빌헬름 바크하우스(피아노), 칼 뵘(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ecca, 1955)
△알프레드 브렌델(피아노), 네빌 매리너(지휘), 성 마틴 인 더 필즈 아카데미(Philips,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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