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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재산, 사위와 형제 중 누구에게?
내 전재산, 사위와 형제 중 누구에게?
  • 의사신문
  • 승인 2018.10.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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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6〉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법대학생 시절 상속법 수업시간이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에게 상속이란 말은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왼쪽 귀로 들어와서 오른쪽 귀로 흘러나갔던 것만 기억나지만, 교수님의 강의 중에서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속은 피에 대한 권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상속받을 정당성이나 그 이유를 묻지 않고, 피를 나눈 사람은 누구나 상속권자가 된다는 취지이다. 배우자나 입양관계를 제외하고는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은 상속을 받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이혼 후 한 쪽이 외동자식을 키우다가 불의의 사고로 아이가 사망하여 보험금이 나오는 경우, 자식을 한 번도 찾아와 보지 않던 부모 한 쪽도 불쑥 나타나 보험금의 `절반'을 가져간다. 홀로 남으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던 착한 막내아들과 술과 도박에 빠져 살던 장남의 상속분은 (예외적으로 기여분이라는 것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같다.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지만 이것은 사회구성원들의 오래된 관념이 법제화된 것이다. `상속은 피에 대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30대 이상이라면 1997년의 괌 여객기 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미국령 괌행 모 항공 여객기가 착륙 시도 중 괌의 니미츠힐에 추락하여, 8시간의 화재 끝에 탑승인원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이 사고를 기화로 한 수사에서 탈세 혐의가 인정되어 해당 재벌그룹의 회장이 구속되기도 하는 등 사회적인 여파가 컸던 사건이었으나, 정작 이 사건은 뜻밖의 이유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의사가 사건 당사자였던 사건이기도 하다.

추락한 괌행 여객기에는 모 상호신용금고 회장 일가가 가족 여행을 위하여 탑승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아들과 딸을 자녀로 두었는데, 아들 가족(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은 모두 동행하였지만, 딸 가족 중에서 모 사립의과대학교 신경과 교수였던 사위는 일이 바빠 함께 하지 못하였고 딸과 외손녀만이 동행하였다. 즉 이 가족 여행에는 의사 사위를 제외한 회장의 직계혈족 전원이 모두 동행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괌행 여객기는 추락하였고, 8명의 가족들은 모두 사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슬픔은 슬픔이고 법은 법이므로, 혼자 남은 사위는 장인이 소유한 상호신용금고와 35곳의 부동산 등 1천억 원대의 장인의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등기하였다. 이에 장인의 형제 7명은 이에 반발하여 사위를 상대로 위 재산에 대한 상속권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수년간의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은 형제들의 상속권을 부인하고 사위의 상속권을 인정하였으며, 따라서 장인의 모든 재산은 사위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앞에서 `상속은 피에 대한 권리'라고 하였는데, 왜 법원은 피를 나눈 형제들이 아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위의 손을 들어 준 것일까?

그 이유는 법원이 사위에게 민법상 `대습상속'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민법상 대습상속이란, 쉽게 말하여 아버지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신 경우, 어머니와 자신(손자)이 나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상속분을 상속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과거에 며느리가 아들(남편)의 사망 이후에도 재혼하지 않고 시댁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식을 키우고 있음에도, 시부모가 사망하여 상속이 개시된 경우에 남편이 먼저 사망하였다고 하여 다른 시형제들과 달리 시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여 그 며느리와 손자들의 생계에 큰 위협이 되었던 사례들이 있었으므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입법된 것이다.

이렇게 처음에는 며느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입법된 것이었으나, 시대가 흘러 `남녀평등원칙'에 따라 위 사건에서는 사위에게 그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위 상속 사건에서 대법원은, 먼저 ① 대형 항공사고로 항공기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회장의 가족들의 사망시각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회장의 가족들이 모두 `동시에' 사망하였다고 추정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② 아내가 장인보다 먼저 사망하면 사위는 장인의 재산을 앞에서 본 `대습상속'으로 상속받고, ③ 장인이 아내보다 먼저 사망하면 장인의 재산은 일단 아내에게 상속되었다가 아내의 사망에 따라 사위가 `본위상속'으로 상속받는데, 아내와 장인이 동시에 사망한 경우에만 사위가 상속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대습상속을 입법한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상속인이 상속 개시 `전에' 사망한 경우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망한 경우 역시 대습상속을 인정하였다(아들 내외와 친손자녀들은, 모두 장인과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아예 상속을 받지 못한다).

위 사건은 판결이 내려진 이후에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위가 물려받은 재산은 2천억 원대로 불어났고, 사위가 상속받은 지 5년 후에 사위를 납치하여 재산을 빼앗으려고 시도한 일당도 있었다. 또한 사위는 위 상속 재판 당시 `상속을 받게 된다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장인의 생전 의사에 따라 그 상속재산을 불우이웃을 위한 자선병원과 장학재단설립 등으로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이후 이 약속의 불이행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만약 내가 죽고 내 전재산을 상속해 주어야 한다면, 당신은 사위와 형제 중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유사한 설문조사에서 70%가 넘는 응답자들은 `형제'를 선택하였다. 외동딸인 경우 데릴사위를 들여 가업을 승계시키는 경우가 흔한 일본과는 달리, 강한 부계혈족 관념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성이 다른 데릴사위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인식에서 여전히 사위는 `백년지객'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은 다른 여러 나라들에도 있다. 하지만 사위의 상속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 하는 우리나라의 피는 다른 나라들의 피보다 훨씬 더 진한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사위인가 형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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