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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과 비틀
아이폰과 비틀
  • 의사신문
  • 승인 2010.07.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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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발상과 컬트, 언젠가 세상을 바꾼다

얼마 전 인사이트라고 하는 회사에서 책을 선물 받았다. Geeks라고 하는 책으로 매킨토시 컴퓨터의 탄생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매킨토시는 요즘 주가가 한창 오른 애플을 애플답게 만든 제품이라고 보아도 좋다. 초기의 맥은 요즘의 아이폰 못지않게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던 제품이었다고 보면 된다. 나중에는 흔해져서 디자이너들이나 뮤지션들이 한 두개 씩은 갖고 있다시피 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충격적인 컬트 제품이었다. 초기의 클래식 매킨토시는 작았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컴퓨터의 역사에서 보면 오늘날의 윈도같은 WISWIG 환경의 시작이었다.

분명히 매킨토시는 사람들이 원하던 무엇을 사람들의 책상위로 가져다 주었지만 정작 처음에는 만드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몰랐다. 대략 이래야 할 것이라는 거친 스케치만 있었던 것이고 그 다음의 세세한 미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계속 새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일종의 도박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디자인 컨셉의 승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초기에는 애매한 개념과 조잡한 주변 기술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기술의 발생학이라는 것은 대략 이렇게 출발한다.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하는 데 구체적인 것은 없고 주변 기술은 조잡하다. 그리고 만들겠다는 충동만 있다. 주변의 소프트웨어도 없다. 그렇다고 아주 처음도 아니다. 다른 선구적인 업적들이 있어서 참조는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상태에서 구체적인 무엇이 나오기는 나와야 한다. 안 나오면 실패이고 나오면 다른 일들의 시작이 된다.

자동차 컬럼에서 이런 글을 적고 있으니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컴퓨터가 손바닥위로 올라와 아이폰으로 변한 것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엉뚱한 것에 있다. 만약 변신을 하지 않았다면 속도는 무척 빨라져 있겠지만 결코 편하지 않은 컴퓨터들만, 작아지기는 해도 사람들과의 인터페이스는 아직도 많이 불편한 컴퓨터들만 주위에 널려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라고 주문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지 좋은 물건이 나타나면 열심히 사주고 재미있게 놀아줄 수는 있다. 그러면 시장과 기술이 변한다. 매킨토시는 시장 자체를 굴절시켰고 얼마 후에는 윈도우라는 경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변했다. 만든 사람들이 예측할 수도 없을 만큼 변했다.

요즘의 자동차에 대한 필자의 짧은 생각은 이렇다. 사람들이 어떤 차를 원하는지 메이커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복잡해지는 차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콘솔을 가득 메운 장치들을 싫어할 수도 있으며, 140마력이나 되는 준중형차가 전혀 필요 없을 수도 있고, 전자장치에 둘러 쌓인 느낌을 싫어할 수도 있다.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고 너무 디자인이 요란해지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

어쩌면 폭스바겐 클래식 비틀이 다시 나타난 것처럼 엔진도 너무 간단하고, 미니멀리즘을 최대한 반영하여 꼭 필요한 장비만 있고, 디스플레이도 단순하고, 망가질 부분도 없으며, 가격도 싸고 디자인도 단순한 차가 나온다면 아주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높은 연비와 안전한 것은 당연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너무 단순해서 사람들이 차를 꾸미고 싶어하고 잔재미를 위해 차와 장난치고 싶어 할 정도로 텅 비어있는 느낌의 차 같은 것을 원할지도 모른다. 장난감처럼 보일 수도 있을 정도다. 사실은 이런 차는 정말이지 만들기 어렵다. 메이커로서는 옵션 같은 것을 붙여서 팔수도 없기 때문에 악몽과 같은 차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거나 많아질지도 모른다. 컬트 제품을 좋아하는 필자는 아주 적극적인 잠재 고객이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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