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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C장조 op 15. 760 '방랑자 환상곡'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C장조 op 15. 760 '방랑자 환상곡'
  • 의사신문
  • 승인 2010.06.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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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음향과 색채를 총망라한 대작

슈베르트 자신의 가곡 `방랑자'의 선율을 사용하였기에 `방랑자 환상곡'이란 곡명이 붙여진 이 곡은 방랑하는 자의 마음을 잘 표출한 정열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그의 가곡 `방랑자'의 중심을 이루는 여덟 마디다. 이를 중심으로 선율이 펼쳐지는 이 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가운데에서는 보기 드물게 비르투오소적인 작품이다. 즉, `베토벤적'인 동시에 `리스트적'인 매우 웅대하고 기교적이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통해 웅대하고 자신감 넘치는 화려한 기교를 동원하여 자신의 한계를 실험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단일 주제를 놓고 작업한 작곡가가 슈베르트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처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단일한 악상에 기초하여 여러 악장을 구성한 작품은 없었다. 휴식 없이 연달아 연주되는 이 작품의 네 악장은 빈틈없이 통제된 대규모 형식으로 이루어진 경이적인 시도이자 피아노라는 악기의 음향과 다양한 색채를 총망라한 대작이다.

슈베르트의 기악 음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그 중 첫 시기인 1819년까지 다섯 개의 소나타와 여섯 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으며 그 중에서 `미완성 교향곡'을 포함해 열한 개의 곡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1822년부터 죽을 때까지 초기에 보이지 않았던 숙련된 모습의 기악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음악사적으로도 모차르트나 멘델스존을 제외하고 이렇게 슈베르트처럼 젊은 시절에 많은 걸작들을 쓴 작곡가는 없었다. 후기의 슈베르트는 대규모 형식의 음악을 아주 편안한 방식으로 작곡하는 사람이라는 친근한 인상을 주는데 1822년에 작곡한 이 `방랑자 환상곡'을 들으면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그를 생각하게 된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가 매독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으나 이 병으로 인한 충격으로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온 힘을 쏟아 붓는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기법은 베토벤에서 더 발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방랑자 환상곡'과 그 후의 소나타들을 들어보면 확실히 그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방랑자 환상곡'에서 피아노는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오케스트라화 되고 있다. 특정 악기들의 음색 뿐 아니라 전체 연주의 힘도 암시되고 있다. 처음에는 점차 증가하는 현악기의 트레몰로가, 후에는 모든 관악기의 연주가 연결되어 들려온다. 이 당시의 피아노로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을 연주해 본다면 슈베르트가 얼마나 더 미래형 피아노에 의존하였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작품과 같은 곡은 확장된 다이내믹 폭 때문에 더욱 견고한 피아노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 작품을 들려주면서 “이 작품을 제대로 연주하는 이는 악마일지도 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환상곡이 그의 장조 피아노곡 가운데 처음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엄청나게 화려한 기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훗날 리스트는 이 곡을 매우 사랑하여 강한 영향을 받게 되면서 편곡을 하였다. 아마도 이 곡은 리스트가 편곡한 모든 곡 가운데서 원곡보다 연주하기 더 쉽게 만들었던 유일한 작품일 것이다.

이 곡의 2악장에서는 가곡 `방랑자'에서 따온 주제 아다지오가 나온다. 시인 슈미트는 자신의 아름다운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 태양은 너무나도 차가운 듯 보인다. 꽃은 시들었고 인생은 늙었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허무한 말들 뿐. 나는 어디서나 낯선 사람이다”

■들을만한 음반 : 알프레드 브렌델(피아노)(Philips, 1983);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DG, 1973); 빌헬름 캠프(피아노)(DG, 1967);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EMI, 1963); 에드윈 피셔(피아노)(EMI, 1948); 에프게니 키신(피아노)(DG, 1990)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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