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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길<10>
의사의 길<10>
  • 의사신문
  • 승인 2010.06.3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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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사실 천문학과를 졸업해서 별을 보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시절 읽은 어린왕자란 소설에 너무 큰 영향을 받아 소혹성 B612호를 찾아서 거기에 사는 어린왕자와 장미를 보고 싶어 천문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과를 선택하면 의대, 문과를 선택하면 법대를 가야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 후 대학입시를 앞두고 잠시 고민했지만 별을 보고 싶은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아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의대로 갔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의대가 다른 과 보다 2년을 더 다녀하는 것도 모를 정도로 의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은 동기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의대를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의사란 직업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으나 아직 의사란 직업에 대해 그리 명확한 사명감을 갖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졸업 후 전공의 생활을 시작한 후 의약분업 사태가 일어났고 전공의 파업을 경험하며 의사란 직업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의사란 직업의 길이 명확히 보이지는 않았고 사명감을 갖기에는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암울해 보였다.

성애병원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병원을 거쳐 간 많은 전공의들을 보았고, 그들 또한 의사생활을 하며 여러가지 가치에 관심을 두며 의사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다. 몇 년 전 의대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재미있는 얘기를 하였다. 개원해서 큰 성공을 한 그 친구는 자기를 원장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였다. 사장이라 부르라 하였다. 자신은 돈 많이 버는 사장님이 더욱 듣기 좋다고 했다.

얼마 후 의국 선배를 만났는데 그 선배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의사란 직업을 선택했다면 돈과 명예 둘 중 하나는 성취해야 성공한 인생이라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유명한 교수가 되던지 개업을 했다면 돈을 많이 벌어야 성공한 의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돈 못 버는 의사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선배의 얘기를 들은 후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성공한 의사가 아니었다.

돈과 명예 어느 것도 얻지 못한 의사였다. 나는 고민했다. `나는 왜 성공하지 못한 의사가 되었을까?' `성공한 의사들은 많은 것일까?' `선배의 성공 기준은 옳은 것일까?' 답이 없는 고민이었다. 지금은 그저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저 내가 선택한 의사의 길을 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의사란 직업을 선택한 후 자존심으로 끝까지 간직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직업이 의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목사님보다 스님보다 신부님보다 다단계 회사의 건강식품 판매원보다 한의사보다 약사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보다 보건복지부장관보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의사라고 확신한다. 

조재범<성애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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