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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小確幸),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강박증
소확행(小確幸),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강박증
  • 의사신문
  • 승인 2018.09.1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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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의사의 영화 이야기 〈3〉

이 형 중
한양대병원 신경외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어느덧 `행복'은 삶의 과정 중에서 얻는 전리품이 아닌, 그 자체로서 인생의 목표인 옥상옥(屋上屋)이자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1886년 7월 `한성주보'에 국내 최초로 등장한 `행복'은 발없는 말처럼 실체도 없이 끝없는 변신과 진화를 거듭한 결과 2018년 지금 세속종교로 신화화하여 우리를 옥죄고 있다. 수많은 멘토들의 다양한 힐링 레시피는 오히려 `행복'이라 쓰여진 단어를 `스트레스'라고 발음하게 만들고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심리의 바탕은 불안에서 비롯된다. 뼛속부터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개인적, 공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재조명하며 인정받기를 무의식적으로 희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하거나 의미부여가 영구적이지 못할 때, 혹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열등하다고 느끼게 되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비록 온전히 개인적인 노력으로 습득하긴 어려워 보이지만 `행복'은 어느 정도는 스스로 그 의미를 만들고 가꾸는 것이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인 듯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혹시 이런 단어를 본 적이 있는지. floccinaucinihilipilification. (floccus + naucum + nihil + pilus = 양털 한 무더기 + 하찮은 것 + 아무 것도 아님 + 머리 한 가닥=경시(輕視), 무가치 혹은 무의미하게 여김). 40년 전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에서 처음 접했던, 전투에서 탈탈 털린 조조가 뜬 구름을 보고 읊조린 말풍선 속의 단어이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발하여 삭발하고 승려가 되어 유유자적한 생육신 김시습이 속세를 떠나는 심정이 이럴 것이다.

소확행(小確幸)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6년 수필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자기위안적인 성향은 몇 년 전 유행했던 미국 힙합가수 Drake의 노래 The Motto의 한 구절인 “인생은 한번 뿐이야. 이게 인생의 진리지. 욜로”(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YOLO!)의 뒤를 이어 30년이나 지난 지금 대한민국 문화계의 주류가 되었다. 경기침체와 불황 속에서 앞날이 불투명해진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처럼 고생 끝에 낙이 있다는 비현실적인 잠언을 부정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재의 자신의 삶에 더 충실하자는, 미래를 저버리고 회피하는 무책임한 일탈이 아닌, 현재의 나를 적절히 위로하는, 그래서 더 바람직한 나로 재정비할 수 있도록 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을 일컫는 내면의 외침으로 해석된다. 소확행 역시 YOLO의 토대 위에 성장하게 되었으며 큰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살아 있다는 기분을 만끽하며 존재감을 고양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모두 아우르게 되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두 이모와 함께 살게 된 폴은 과거 어느 시점부터 기억이 사라진 상태이다. 그로 인해 그의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모든 일에 무덤덤해지게 된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 사진〉은 화려한 색채로 꾸며진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보는 듯, 몽환적이다. 마들렌 과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완역자 이외에는 읽기가 불가할 정도로 난해하고 장구한 7편의 연작소설로서 텍스트의 의미인 `직물' 그대로 촘촘하게 소설 한 권에 인생의 모든 것(자아 회복, 의미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끝없는 구도)을 기억의 회상으로 구현하여 담으려 하였다. 프루스트는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라고 정의하였다. 우연히 이웃집 프루스트 여사의 집을 방문한 폴은 신비스러운 정원에서 자신의 성장을 멈추게 했던 과거 기억과 맞서게 된다. 의식 밑바닥에 흐르는 기억이란, 진정제 역할도 하지만 때로는 독약처럼 작용하기도 하므로 인지의 표피로 분출시켜 다시금 판단하여 그때그때 굳건히 버티는 정신적인 근력이 필요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부모의 사고사에 기인했던 과거를 털어버린 폴은 혼자 힘으로 관계를 맺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 “Vis Ta Vie(네 인생을 살아라).” 아름다운 기억은 그 자체가 힐링 포인트가 된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명의 노인이 2인용 병실에서 만난다.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은 사업가 에드워드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카터 역시 같은 선고를 받고 망연자실한다. 일과 결혼한 사업가와 아내의 빠른 임신으로 공부를 접어야 했던 정비사. 이 둘은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뜬 눈으로 새는 밤이 많아지며 서로 친해지기 시작한다. 자동차 정비사 카터가 45년 전 대학신입생 시절 철학교수가 내주었던 과제를 회상하며 적었던 버킷리스트를 보게 된 에드워드는 리스트에 몇 개를 추가하고는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아직 증상이 심하지 않고 육체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으니 지금이 기회라고 말하면서. 〈버킷리스트, 2007〉는 〈노킹 온 헤븐스도어〉의 헐리웃 버전으로 희망과 할 일이 남아 있는 한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최고의 루왁 커피가 고양이가 먹은 원두를 배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울음이 나올 때까지 웃던 둘과 카터가 죽기 직전 부탁하여 오랜 기간 연락을 끊던 딸과 만나며 예쁜 손녀딸과 키스를 하던 에드워드, 그리고 마지막 장면 화장된 채 캔에 밀봉되어 히말라야 정상에 놓인 둘의 버킷리스트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그의 삶을 말해주므로 남겨진 사랑이 있는 한, 두 눈은 감겨도 가슴은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치열하게 살다보면 간과하게 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어떻게'라는 방법론에만 매몰되다 보면 `왜'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은 잊게 된다. 전화 한통이나 스마트폰 앱 터치 한번이면 금방 배달되는 음식들. 그러나 친환경 재료로 정성껏 다듬은 먹을거리 한 점은 준비과정 자체가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신 된장국의 향내는 80을 바라보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모든 것에 지친 혜원은 마치 패배자처럼 귀농하지만, 생명을 품은 청정한 시골풍경과 더불어 어릴 적 친구들과의 교감, 시간이 제법 드는 요리준비, 그리고 어머니와의 클리쉐같은 대화들. 〈리틀 포레스트, 2018〉는 “나를 위한 소중한 한 끼”를 준비하는 주인공의 유유자적한 모습에 보는 내내 배가 고팠다. 그러면서 가진 게 많아질수록 불행할 수도 있고, 버릴 줄 아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천해보게끔 자극하는 매우 비자극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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