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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세 그녀의 사생관(死生觀)
103세 그녀의 사생관(死生觀)
  • 의사신문
  • 승인 2018.09.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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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46〉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인생은 혼자서도 재미있어'란 부제를 붙여 〈103세가 되어 깨달은 것〉을 쓴 일본의 현역 미술가 시노다 토코는 현재 105세다. 이 책은 104세가 되는 해에 출간되었다. 마땅한 번역서를 찾지 못하여 원본을 구했다. 색다른 깨달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조심스레 책을 펼친다. 호흡을 멈추게 하는 제목과 본문의 첫 문장.

“나에겐 사생관(死生觀)이 없다.”
“지금까지 나는 장수를 바란 적이 없다.”
당혹감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깊게 가다듬어 다시 이어지는 글.

“죽음을 의식하고 산 적도 없다. 담담하게 살아왔다. 아직까지도 죽을 때 이렇게 하자, 죽을 때까지 이런 일을 하고 싶다 등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 죽는다 해도 좋다'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어떤 것도 일체 생각하지 않았다. 일전에 사생관은 나이와 함께 변하는가를 젊은 친구에게 물었다. 나에겐 사생관이 없다고 답했다. 그녀는 대단히 놀라워했다.”

`죽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진리에 다가설 수 없어 일절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나에겐 사생관이 없다”고 한다. 사생관이 무엇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고 나면 어떻게 되나 등으로 죽음을 통한 삶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이 아닌가. 살아 있는 동안에 미처 알리지 못한 이들 중에 더러 자신의 묘비명에 써놓기도 하는 사생관. 그런데 103세에 이른 이가 사생관이 없다니.
현역 화가로서 지금도 신작 발표회를 열고 있는 그녀는 1913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스물 넷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지금까지 혼자서 살고있다. “결혼은 제비뽑기다. 그래서 난 혼자 산다”는 확고한 신념을 충실히 실천해오고 있다.

마흔 두 살에 훌쩍 그것도 홀몸으로 뉴욕으로 건너갈 때엔 무슨 별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불쑥 한사람이 나타나 `당신 작품을 미국에 소개합시다'라는 말만 믿고 따라갔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꼼꼼한 계획도 없다. 목표를 세우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목표를 위해 멋진 것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싫었다.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는 대신 자유를 원하는 마음이 내가 가야 할 길을 만들었다”는 나름의 방식에 절절하게 몰두하였다. “인생은 어차피 예측해봐야 소용없으니 결과에 맡기라”고 제언한다. 상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백세가 넘도록 건강하고 활발하게 현역으로 살고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의무도 책임도 없어 홀가분하다. 자유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스스로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고독하다는 생각은 없다. 스스로에게 의지하면 인생은 최후까지 내 것이 되므로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미술가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채 혼자 작품 활동을 해 왔다고 한다. 세상에서 자기 혼자 제일 잘났다고 뽐내는 유아독존도 오랜 세월 내공이 쌓이면 젠체하는 건방짐과 초연한 고상함 사이에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동질성의 다리를 놓고 적절히 오고가는 것 같다. 그러면 상식을 따르지 않는 홀가분한 사생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생각해본들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게 없다. 실제로 나에게 무엇인가 생각이 있어 태어난 것은 아니며, 내가 그러고 싶어 세상에 나와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의 계획에 의한 것으로, 사람의 지능 밖의 일이며,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되도록 아프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죽지 않게 하려고 생각해도 죽게 되어 있다. 죽은 뒤 영혼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생전에는 확실한 것은 모른다. 사람의 영역이 아니어서 진리에 접근 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매일 매일 자연체처럼 흐름에 거슬림이 없이 헛된 황당함도 지나침도 없이 살 수 있도록 유의할 뿐이다.”

그런데, 잠깐 따져보자. 지금까지 말한 이야기가 사생관이 아니고 무언가. 속내를 표현하는 수사법의 차이일까. 어쩌면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나름대로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남이 하는 방식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자 사생관이란 단어도 쓰기 싫어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자신의 사생관은 다른 이들이 쓰는 사생관이란 용어와 다른 뜻으로 읽혀지길 바라는 터라 사생관이 없다고 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렇게 평범한 걸 피해 살면서 백세를 넘긴 그녀의 당당한 사생관을 대하면 대할수록 보스턴 대학의 토마스 펄스 교수의 견해가 떠오른다. 그는 100세 이상 노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째 `생존자'로 80세 미만에 노화 관련 주요 질환 진단을 받고 병치레 하면서도 오래 산 사람들이고, 둘째는 `지연자'로 80세 이후에 노화 관련 질환에 걸렸지만 잘 치료해가며 오래 산 사람들이다. 셋째 그룹은 큰 병 없이 100세를 산 사람들로 펄스 교수는 `회피자'[마땅한 번역이 만만치 않다. 영어로 escaper]란 명칭을 붙였다. 질병 등을 피해 다니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일반적 평범을 피해 오래 오래 살고 있는 시노다 토코는 또 다른 의미의 회피자에 속할 것이다.

독한 회피 속성도 100년이 지나면 순해지는 모양이다. “이 나이가 되니 누구와 대립할 일이 없고, 누구도 나와 대립하려 하지 않는다. 백세는 이 세상의 `치외법권'이다. 백세를 지나니 관혼상제 모임에 안 가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만약 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매우 기뻐한다.” 피할 것만 피하면서 103세 현역 화가는 하루하루를 오래오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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