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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전제 없는 법정 진흙탕 공방 
기본 전제 없는 법정 진흙탕 공방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8.09.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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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오계(五戒) 중 첫 번째 계명은 불살생이다. 즉 무위자연을 강조하며 생명을 함부로 헤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생명의 존엄성은 어려서부터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듯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종종 이것을 잊고 산다. 생명에 대한 존엄을 생각하기에 앞서 당장 눈앞에 닥친 여타 요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의료인을 바라보는 대중적 시각이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예전부터 존경과 더불어 닮고 싶은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허나 최근 돌아가는 의료계 상황을 바라보면 답답한 일들과 왕왕 대면한다. 응급실에서 의료인을 대놓고 폭행하는 일은 다반사고 이제는 진료 중 과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까지 발의되고 있다.

의사라고 해서 일반 업종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명을 다루는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전 국민의 주치의로서 소명의식이 대단하다. 이는 오래전 ‘인간은 왜 존엄한가’라는 칸트의 물음에 몸소 실천으로써 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주 나흘간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에 대한 법정공방이 진행됐다. 공판의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의료인들의 감염관리 소홀, 즉 업무상 과실에 대한 갑론을박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담당 검사는 실제 재판장에서 의료진들의 주사제 준비과정을 재연한 영상을 증거자료로 제출하며 증인으로 출석한 질본 의료관리감염과장에게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행동에 대한 감염관리 소홀의 가능성에 대해 질의했다.

아무리 오랜 현장 경험으로 숙련된 인력들이라고 하지만 신생아가 사망한 직후 경찰관 여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찍은 영상을 보며 잘잘못을 따지고 실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 어떤 강심장이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손이 파르르 떨렸을 것이다.

이 같은 공판 내용에 덩달아 언론도 이번 사태에 대해 의료인 개개인의 잘잘못 여부에 중점을 둬 보도하고 있는 상황. 정확한 사인과 의료과실 여부를 묻고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국민의 눈과 귀가 한쪽으로 편향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의사들이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선한 의지에 기반해 진료한다는 기본 전제는 항상 이 같은 진흙탕 법정공방에 뒷전으로 물러서 있다는 점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공판에 앞서 병원과 피해자 가족들은 의료인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를 성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디 이번 사건이 생명 존엄에 대한 거시적 관점에서 의료인 처벌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닌 전국 NICU의 환경 개선을 이룰 수 있는 교훈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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