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56 (금)
여든 살 소포클레스
여든 살 소포클레스
  • 의사신문
  • 승인 2018.09.10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늙음 오디세이아 〈45〉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그리스 비극문학의 새로운 개척자이며 완성자라 일컬어지는 소포클레스의 마지막 희곡이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다. 콜로노이는 그의 고향으로 아테네의 교외에 있다. 희곡의 주제는 죽음이다. 소포클레스가 자신의 죽음을 위한 문학 창작의 절차가 아닌가 평하기도 한다.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오이디푸스의 노정을 쓴 희곡의 줄거리를 간동그린다.

큰 딸 안티고네의 안내로 곳곳을 떠돌던 오이디푸스의 발걸음이 아테네의 콜로노이에 닿는다. 자식들을 만나보고 처남 클레온과는 지난날의 쌓인 갈등을 정리하며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죽음을 향한 마지막 여정을 아테나의 왕 테세우스의 도움을 받으며 계속한다. 오이디푸스는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거역의 몸부림을 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운명을 좇아 살 수 밖에 없어 생명의 종점을 향해 간다. 오이디푸스는 테세우스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무덤을 보는 것은 안 될 일이오. 이제 울음을 그치고 더 이상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시오. 우리에게는 살아내야 할 삶이 있소.” 이윽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동굴 속 자리를 영감으로 찾아간다. 지난날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쓸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불륜의 자식을 낳은 끝에 스스로 자신의 눈을 뽑아 장님이 되어 타국을 방랑한 오이디푸스. 죽음만큼은 신의 돌봄 속에서 맞는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의 한 사람이며 탁월한 정치가인 소포클레스는 여든 살에 자신이 쓴 어느 비극보다도 더 참담하고도 원통한 일을 겪는다. 소포클레스는 부유한 기사 계급출신의 무기 제조업자의 아들로서 사회적으로는 상층 계급에 속했고 용모가 뛰어났고 훌륭한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애국자였으며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손자에게 재산 상속이 넘어갈까 두려워한 장남 이오폰이 자신의 아버지를 금치산자로 소송을 낸다. 소장엔 `노망이 들었고 악마에 사로잡혀 재산관리 능력이 없다.' 당시 상황에 대하여 키케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나이가 많이 들어 비극을 썼지. 그런데 자기의 일에 대한 열성 때문에 그가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아들들은 그를 법정으로 소환했지. 우리의 관습에 따른다면 가족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에게 재산권 행사를 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망이 든 사람처럼 보이는 그가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재판을 건 것이었지.” -(`노년에 관하여', 키케로 저/오흥식 역)

소송의 발단이야 어떻든 여든 살 소포클레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침묵하고 인내하면 아들의 패륜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투자니 존경받는 대시인 대작가로서 아들과 법적 다툼을 하는 볼썽사나움이고. 소포클레스는 비장한 각오로 법정에 섰다. 소포클레스는 모든 모멸을 참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바로 시(詩)였다. 한낱 노망든 악령에 빠진 늙은이가 아니라 `내가 바로 위대한 비극의 시인 소포클레스'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작정했다. 키케로의 말에 의하면 그는 가장 최근에 썼기 때문에 사람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마지막 예술작품인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의 한 구절을 배심원들에게 큰 소리로 낭독한 후 그것이 미친 사람의 시처럼 보이느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노시인의 입술을 통해 울려나오는 소리는 변명도 억울함도 분노의 논리도 참담한 애원도 아니었다. 배심원들은 물론 법정안의 모든 사람들을 깊게 감동시켰다. “노망들고 악마 들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평온하게 낭송할 수 있을까?” “소포클레스는 노망도 아니고 악령에 빠진 것도 아니다.” “탐욕스런 이오폰의 음모다.”

스스로가 창작한 시를 소리로 바꾸어 읽어냄으로써 노망과 악령에 붙들려 있지 않음을 여러 사람 앞에서 증명하였다. 어쩌면 그는 그 자리에서 “만약 내가 소포클레스라면 내가 지적 무능력자일 리가 없다. 내가 만약 지적 무능력자라면 여기에 서 있는 나는 이미 소포클레스가 아니다.”라는 명언을 했는지도 모른다. 노시인의 자신의 재능과 자신의 예술 활동에 대한 자존심은 꿋꿋했다. 소송은 곧 중지되었고. 소포클레스는 석방되었다. 그의 나이 여든 살이었다.

어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소포클레스에게 성생활을 즐기느냐고 질문했을 때, “무슨 끔찍한 말을! 마치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나는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왔다네”라고 그는 대답하였지. -(`노년에 관하여', 키케로 저/오흥식 역)

갖가지의 욕망이 뻗치기를 그만두고 숙어지게 되는 그때에 소포클레스라고 서운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이 다가온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챙기는 게 더 낫다는 걸 깨달아 서운함을 못내 떼어버리려 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에 십 년을 더 살다가 아흔 살에 세상을 뜬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뚜렷이 알려진 바가 없다. 한 알의 포도로 숨이 막혀서 죽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안티고네'를 공연하던 중에, 또는 희곡 경연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에 지나치게 흥분해서 죽었다고도 한다.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의 활동에 몰두하다가 활동하던 현장에서 죽음을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후에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였고, 동상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드려 기념하였다고 한다.

일상에서도 자식들과의 관계에서도 법정에서도 서운함 대신에 자신의 능력에 더 충실하려 노력했을 소포클레스의 격담 하나를 더한다. “늙어 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