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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의사를 뭘로 보고!
성추행? 의사를 뭘로 보고!
  • 의사신문
  • 승인 2018.09.0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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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9〉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고대 그리스 신화의 로맨스들, 중세의 기사도 전승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대표되는 고전 희곡들, 그리고 현대의 영화와 드라마들까지, 인간이 문자를 가진 이래로 우리는 남녀관계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고, 기록하고, 전해왔다. 남녀관계에 관한 그 수많은 이야기들의 줄거리는 여자의 이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잡아 봐∼라”

여자에게 반한 남자가 여자의 마음의 울타리를 넘어 손을 맞잡게 될 때까지의 `밀당', 이것이 남녀관계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물론 요즘에는 반대 경우도 꽤 있지만.

그러나 남녀의 의사소통 방식은 너무도 다른 것 같다. 그 의사소통 방식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도 있으나, 변호사 업무상 만나게 되는 회복불가능해진 부부들을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운 듯 싶다. 예를 들어, 남자는 `실제 상황은 언급보다 심각할 것 같은데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여자는 `자신의 불만과 불이익을 과장하여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남녀 간과 마찬가지로, 의사와 환자 간의 의사소통도 항상 원활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명시적 차이가 있는 경우 다툼이 묵시적 차이가 있는 경우 오해가 발생한다. 진료행위는 대부분의 경우 신체접촉을 전제로 하므로, 진료를 위한 신체접촉의 필요성에 관하여 남자 의사와 여자 환자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 다툼이나 오해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때 환자의 의사에 대한 성추행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관하여 남자 의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반응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당연한 진료행위인데도 요즘 여자 환자들이 과민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아', 둘째 `그렇게 얘기가 나올 정도라면 의사가 뭔가 잘못한 거지', 그리고 셋째 `나는 신체접촉할 일이 없는 과라서…'
그러나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진료의 특성상 신체접촉이 전혀 없기는 어렵다. 따라서 남자 의사라면 언제라도 위와 같은 다툼이나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얼마 전 `진료행위에서의 신체접촉'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는데, 기존 법원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판결로 보인다. 실제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그 판결의 의미를 확인해 보자.

피고인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자신이 근무하는 소아과 진료실에서 ① 교복치마를 입고 의자에 앉아 진료를 받던 14세인 여자 환자를 진찰하면서 다리를 벌리고 진료의자를 움직여 환자에게 다가와 환자의 무릎에 자신의 성기를 밀착시키고, ② 복부 촉진이 필요함을 이유로 환자를 진료 침대에 눕게 한 후 손으로 환자의 배꼽 주변을 누르다가 환자의 팬티 안에 손을 넣어 음모가 난 부위를 만짐으로써, 치료를 빙자하여 위계로써 청소년인 환자를 추행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었다.

위 내용만 보면 볼 것도 없이 유죄인 것 같다. 하지만 위는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의 내용일 뿐이다. 만약 유죄가 확정되는 경우 이 의사는 당시 법에 따라 10년간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의료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의사는 제1심부터 일관하여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하였다. 아래에서 각급 법원의 판단을 보자.

제1심은 ① 환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② 환자에게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의사를 고소할 특별한 동기가 있다고 보이지 않으며, ③ 환자가 의사에게 합의 등을 요구한 적도 없는 점 등을 들어 환자의 증언 등을 신빙하면서, 또한 굳이 복부 촉진이 필요하였는지 의문이 들고 설령 필요하였다 하여도 통상적인 복부 촉진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의사의 행위는 추행에 해당하고 의사에게 추행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아 의사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별론으로, 성범죄 사건에서는 위 ①, ②, ③과 같은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증언을 그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특히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면 더욱 그렇다). 만에 하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진짜로 억울한 경우라면, 이것만큼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없다(죽고 싶다고 말하는 의뢰인도 보았다). 따라서 초동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피해자 진술을 반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유죄 판결에 의사가 항소하여 계속된 제2심은 ① 환자는 자신의 무릎에 딱딱하고 뜨거운 것이 닿는 것을 느꼈다고 하여 의사의 발기된 성기가 무릎에 닿았다는 취지로 진술하나, 의사는 당시 청바지를 입고 있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환자의 느낌이 객관적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② 보통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진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복부 촉진에 대한 환자의 진술이 수사기관-제1심-제2심에 이르면서 점점 묘사가 풍부해지고 단정적으로 변화한 점, ③ 제2심의 전문심리위원(전문의)은 당시 진찰되었던 환자의 증상들을 고려할 때 복부 촉진의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출한 점 등을 들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의사의 행위가 추행에 해당한다거나 의사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었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위와 같이 제1심과 제2심의 판단이 엇갈렸으나, 대법원은 2년 가까운 심리 끝에 ① 의사의 행위가 진료에 필요한 행위였다면, 이로 인하여 환자가 다소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이를 추행행위로 평가할 수 없고 의사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② 진료과정에서 이루어진 의사의 행위가 정당한 진료행위임에도 환자의 인식 여하에 따라서 추행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것이 진료와 무관하거나 진료의 범위를 넘은 추행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검사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최종적으로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의사는 3년의 형사소송 끝에 의사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부 의사들은 환자의 성추행 주장이 있는 경우 사건 자체가 주변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섣불리 합의를 시도하거나, 또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이혼 앞의 다른 남자들처럼)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별다른 숙고 없이 대응함으로써, 추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에 매우 불리하게 고려될 정황을 자초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미봉책은 절대적으로 피하여야 한다. 오히려 환자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부드럽게, 하지만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그 진료행위의 필요성을 설명하여야 한다. 또한 오해 방지를 위하여 샤프롱 제도(Chaperone, 내밀한 진료시 보조인을 입회시키는 제도)의 도입을 고려할 수도 있다. 여성의사임에도 샤프롱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경우도 보았다.

위 대법원 판결의 ①, ②와 같은 당연한 원칙을 재확인하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피의자이자 피고인으로서 의사가 받았을 심리적 고통을 생각해 보라. 진료 중의 신체접촉으로 인한 다툼이나 오해에 대하여, 치료보다 예방이 먼저라는 의학 격언과,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는 고사성어를 상기하면서, 번거롭다 생각 말고 선행적이고 예방적인 대처를 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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