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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기획] 공단, 경찰에 환자정보 제공 위헌…의료기관 경우는?
[법률기획] 공단, 경찰에 환자정보 제공 위헌…의료기관 경우는?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8.08.31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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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요양급여내역 제공 기본권 침해 판결…의료기관, 영장 없다면 자료 제출 거부 가능

건보공단이 수사를 위해 요양급여내역을 경찰에 제공하는 행위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미 타 자료를 통해 피의자의 위치추적이 완료된 상황에서 수사에 불가피하지 않음에도 불구, 2~3년 동안의 요양급여내역을 받았다는 점이 위헌판결에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또한 헌재는 경찰 측이 자료를 통해 요양기관명을 확인할 수 있어 피의자의 질병 종류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향후 보다 엄격한 요건 하에서 개인의 요양급여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중요한 판결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서울용산경찰서장에 대한 요양급여내역 제공행위 위헌확인 사건’에 대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헌임을 선고했다.

사건은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A씨와 수석부위원장 B씨가 국토교통부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반대하며 집단적으로 철도공사의 여객‧화물 수송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서울용산경찰서가 수사를 나서면서 시작됐다.

경찰 측은 수사과정에서 위치추적을 위해 건보공단에게 A씨의 3년간 상병명, 요양기관명, 요양기관주소, 전화번호가 담겨 있는 요양급여내역을, B씨에 대해서는 2년간 병원 내방 기록의 제공을 각각 요청했다.

이에 건보공단은 요청받은 요양급여내역을 경찰 측에 제공했고 A, B씨는 서울용산경찰서장의 사실조회행위와 건보공단의 정보제공행위가 그 근거조항들인 형사소송법 제 199조 2항,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8조 1항,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 2항7호에 따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핵심쟁점: 형사소송법‧경찰관 직무집행법 VS 개인정보보호법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형사소송법‧경찰관 직무집행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의 법적 해석이었다. 

형사소송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수사에 관해서 경찰서장은 직무수행에 필요하다면 공사단체에 조회해 필요한 사항의 보고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의 제공이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을 때에만 제공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이번 요양급여내역 제공이 경찰의 직무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닐뿐더러,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봤다.

경찰 측이 이미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위치추적 자료를 제공받아 B씨의 신원과 소재를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A씨의 경우는 위치추적 자료를 제공받지는 못했지만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대다수 피의자들의 위치가 파악된 상태에서 충분히 A씨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요양급여정보를 제공받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헌재는 제공된 자료에 전문의의 의료기관명이 포함돼 있어 피의자들의 질병 종류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2~3년의 누적된 데이터를 통해 건강 상태에 대한 총체적 정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고 해석했다.

즉 요양급여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사상의 이익이 거의 없거나 미약했기 때문에 직무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로 인해 정보주체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 최종 결론인 것이다.

이에 대해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 한별)는 “이번 헌재의 판결은 침해 최소성의 원칙을 강조한 사례”라며 “수사를 위해 해당 자료를 요청하는 것이 정당하며 다른 수단이 없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면 기본권 침해가 적은 최소한의 방법으로 자료를 제공받았느냐가 심사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 공기관이 아닌 일반 의료기관에 대한 경찰의 자료 요청 상황

한편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개인 의료기관에 경찰이 환자진료기록을 요청하는 경우에 대한 불안감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위의 사건과 비슷한 개념으로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및 형사소송법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 제21조(기록열람 등)에 따르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218조에서는 검사, 사법경찰관이 피의자 및 기타인의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점이 포함돼 있다. 

때문에 수사기관이 수사협조에 필요한 개별 환자 진료기록 사본을 영장 없이 요청하는 경우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가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 진료기록을 제출해도 되는지에 대한 해석이 모호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의료법 21조2항6호에 보면 법원의 명령, 압수수색 영장 이외의 형사사건 수사 협조 목적의 진료기록 사본 제공이 의료인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어 진료기록 제출 가능 기준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경찰의 영장에 의한 요구이거나 법원에 의한 압수 또는 제출 명령이 아니라면 꼭 진료기록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수사협조를 위한 환자의 진료기록 사본 제공 지침’을 통해 “법원이 압수 또는 제출을 명하거나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이 지방법원판사가 발부한 영장에 의해 압수, 수색 또는 검증을 하는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공문형태의 수사 협조 요청일 경우 의료인이 그 요청에 따를 의무가 없다”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단 진료 기록 사본 제공에 따르는 공·사익의 이익 형량을 의료인 스스로 판단해 공익을 위해 임의로 진료기록 사본을 제공하려는 경우에는 해당 환자의 이익 침해 정도를 검토해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제21조2항6호의 형사소송법 제218조를 근거로 수사협조 목적의 개별 환자기록을 임의 제출하려면 진료과목, 처치내용 등 당사자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내용은 의료법상 당사자의 동의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며 “개인정보보호법을 감안해 환자 이익 침해 여부에 관한 검토가 반드시 선행돼야 제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 한별)

그러나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는 진료기록을 수시로 요청하는 수사관행과 복지부의 떠넘기기식 가이드라인이 잘못됐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전 법제이사는 “개인의 진료정보는 매우 중요한 개인정보인데 수사기관은 소재파악이 안될 때마다 건보공단 및 의료기관에 환자진료 정보를 요청한다”며 “소재 파악을 위한 다른 방법들이 있기 때문에 진료정보는 부득이한 상황이 왔을 때 요청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지침에 대해서는 “의료인 스스로 공‧사익의 이익을 판단하고 환자의 이익 침해 정도를 검토하라는 가이드라인은 판단을 개인에게 미루는 행위”라며 “수사기관에서 자료를 요청할 때 이 자료가 왜, 무슨 근거로 필요한지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인 개인이 스스로 자료 제출을 판단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경찰 등 사법기관은 잘못된 수사관행을 개선하고 복지부 또한 환자의 진료기록 사본에 대한 지침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일반 의료기관들이 자료제출을 할 때에는 다른 부분은 가리고 요청에 대한 최소한의 부분만 제출하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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