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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과 의료소송, 이것만은 알아두자
의료분쟁과 의료소송, 이것만은 알아두자
  • 의사신문
  • 승인 2018.08.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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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8〉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패트릭 스웨이지라는 배우가 있었다. 과거 많은 히트작을 낳은 흥행배우였는데(모른다면, 당신은 청년의사!), `더티 댄싱', `사랑과 영혼', `폭풍 속으로' 등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영화 중에서 `시티 오브 조이'를 가장 인상 깊게 보았다.

위독한 소녀를 수술실에서 살리지 못한 미국인 의사 맥스는 슬픔과 무력감에 빠진 채 휴식을 위하여 인도의 캘커타에 오게 되고, 우연히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슬럼가(`아난드 나가르', 즉 시티 오브 조이)에 소재한 무료진료소와 인연을 맺게 되지만, 의사로서의 본분을 저버리고 진료를 거부한다. 하지만 그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진료에 나서게 되고, 여러 위기를 넘기고 무료진료소에서 환자들을 돌보면서 사람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영화에서, 진료소를 운영하는 의사가 아침에 진료소에서 눈을 뜬 맥스에게 진료를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만, 자포자기 상태였던 맥스는 이를 거절하고 호텔로 돌아가 버리는 장면이 있다. 한국에서라면 위험한 행동이 아닐까? 자칫 의료법위반이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위반의 책임을 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 법은 의료인에게 진료 여부를 선택할 권리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진료에서 일정한 비율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악결과에 대하여는 선택권과 무관하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 즉 의무적으로 진료를 하게 한 경우나, 의료인의 선택으로 진료를 하는 경우나 이른바 의료과실의 판단에 있어서는 구분을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나오면 의사라고 나서지 말라'는 어이없는 농담이 괜히 생겼겠는가?

이야기가 조금 다른 길로 흐른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의료분쟁 및 의료소송에 관하여 알아 두어야 하는 내용들을 알려드리겠다.

먼저 법적으로 `의료과실'이란 무엇인가?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수행함에 있어서… 이런 머리 아픈 법적 정의는 생략하고 쉽게 말하면, `그 환자에 대하여 같은 과 전문의들이라면 하였을 만큼의 진료를 하지 않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환자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둘째 의료과실에 따른 분쟁 현황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1년간 급여청구건수는 9억 건 이상으로, 여기에는 비급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급여, 비급여를 포함한 전체 의료행위 중 1년에 1만 건 남짓의 의료분쟁이 발생하며, 그 중 2/3 가량이 화해(이른바 `합의')로 종결된다. 나머지 1/3 중 다른 방식으로 종결된 경우를 제외하고 1년에 1100여건 정도의 민사소송이 제기되므로, 의료분쟁 중 10%가 최종적으로 소송까지 가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1년 동안 의료분쟁이 생길 확률은 약 0.0011%, 의료소송까지 갈 확률은 약 0.00012%이다.

셋째 우리 법원은 의료분쟁을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우리 법원은 의료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의료기술적 과실이 있는가?' 및 `설명의무 위반이 있는가?'라는 2가지 기준으로 판단한다. 설명의무에 관하여는 전회에 다룬 바와 같다.
의료기술적 과실과 관련하여 기억할 것은, 의사간의 `수평적' 업무 분담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신뢰의 원칙(다른 의사가 내린 선행 판단을 신뢰하고 후행 진료를 행하였는데 선행 판단의 오류로 후행 진료에 착오가 생겨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원칙적으로 후행 진료 의사의 과실은 인정하지 않는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환자의 용태를 볼 때 신뢰하기 어려운 검토 결과를 통지받았음에도 이에 상식적인 의문을 갖지 않고 후행 진료를 한 경우 후행 진료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할 경우도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참고로 의사와 간호사와 같이 `수직적' 업무 분담의 경우에는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넷째 급여와 비급여에 따라 의료과실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반드시 필요한 수술이 아닌 경우라면, (의료기술적 과실은 인정되지 않고) 설명의무 위반만 인정되는 경우에도 신체손상에 대한 전체 손해를 배상하게 한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고주파치료기계를 이용한 종아리 퇴축술을 받던 중 외측 족저 경골신경다발 손상을 입은 사건에서, 법원은 `이 시술은 치료목적이 아닌 미용목적의 시술임에도 불구하고 위험부담이 큰 수술이며,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의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뿐만 아니라 환자의 재산상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치료목적 수술과 미용목적 수술을 구분하여 판단하기도 하였다. 다만 확립된 법원의 입장은 아니다.

다섯째 만약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어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사건에서 공평의 이념에 근거하여 환자의 기왕증이나 체질적 소인을 감안하여 의사의 책임을 제한하는 `책임제한의 법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위자료도 다른 손해배상 사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게 산정하는 경향이 있다. 뉴스에 보도되는 손해배상액수에 놀라 법원이 의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법원이 의사의 과실에 대하여 다른 직종에 비하여 더 가혹하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혀 아니며, 오히려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것은 의사가 진료기록부를 위·변조하거나 은닉·훼손·제출기피하는 경우 법원은 이를 입증방해행위로 보아 의사의 과실을 그대로 인정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진료기록부의 위·변조 행위는 그 자체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므로, 이러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진료 목적으로 추후에 진료기록부에 가필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료법에 규정된 의무적 기재사항을 제외한 `기재사항' 및 그 `작성방법'에 관하여는 의사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 즉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사실, 진료 이전의 환자의 기왕증 등을 상세히 기재해 놓아도 상관없고, 진료에 필요한 내용을 추후에 보충 기재하여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의료분쟁 발생 시 아직도 민사소송과 동시에, 또는 민사소송에 앞서서 형사고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는 일반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는 비율과 의료소송에서 환자가 승소하는 비율이 크게 차이가 없음에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민사소송을 통하여 구제받기 힘들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최근의 연이은 의료진 폭행 사건도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연장선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개선이 단시간 내에 이뤄지기는 어렵겠지만, 얼마 전 의료진 폭행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5만 명의 국민이 동참하여 준 것을 보면, 충분히 희망을 가질 만한 것 같다. 의사를 보호하는 것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위한 국민청원이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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