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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새벽 등반 `풀벌레 소리·은하수'가 반겨
폭염으로 새벽 등반 `풀벌레 소리·은하수'가 반겨
  • 의사신문
  • 승인 2018.08.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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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기
박 석 준 마포구의사회장

서울시의사산악회에서 지난 7월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을 다녀왔다.

공룡능선은 설악산의 희운각 대피소에서 마등령에 이르는 능선으로, 울퉁불퉁한 바위산이 연달아 늘어서있는 모습이  등줄기에 연달아 뿔이 솟아 있는 공룡을 닮았다하여 공룡능선으로 불린다. 공룡능선은 그 자체의 경관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설악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후좌우로 설악산의 전경이 다채롭게 펼쳐지기 때문에 설악산의 진수로 불리기도 한다.

4년 전인 2014년 6월에 서울시의사산악회에서 공룡능선을 다녀온 이후 몇 차례 다시 공룡 산행 기회를 마련해보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이번에 혹서기지만 여러 회원들이 시간을 맞출 수 있어서 산행을 추진할 수 있었다. 
당초에 1박2일 일정으로 첫날 설악동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에 산행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여 일 간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계속되었고, 한낮의 산행이 위험할 것으로 생각되어 일요일 새벽 2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가능한 일찍 마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토요일인 21일 오후에 일과를 마치고 나섰는데 햇볕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고 며칠간 달궈진 아스팔트에서는 화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러다 산행 중에 더위 먹는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집합 장소로 향했다.

산행에 참여할 11명의 회원이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한 후 버스를 타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비선대 입산통제소에서 새벽 3시부터 입산을 허용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기에 오전 2시에 설악동에서 등산을 시작하기로 했고, 휴식도 취할 겸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린천 휴게소에서 버스를 주차하고 오전 1시까지 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동해고속도로를 거쳐 설악동에 도착하여 오전 2시경 산행을 시작했다.

매표소를 거쳐 설악산 품 속에 들어서니 모든 전등 불빛과 자동차 소리는 사라지고 주위에서 가느다란 풀벌레 소리만 들려왔다. 머리 위를 쳐다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은하수가 쏟아져 내릴 듯이 가득했다.
서울 생활에서 밤에 하늘을 쳐다볼 기회도 없지만 도시의 전등 불빛에 가려 볼 수 없었던 무수한 별들의 무리를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가 사는 한 평생이 얼마나 짧은 순간인지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비선대 입산통제소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르고 기다렸다가 입산 허용 시간이 된 후 헤드렌턴에 의지하여 산행을 계속했다.
깜깜한 밤 중이라  수려한 천불동 계곡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아무도 없는 한적한 설악산을 우리 회원끼리 오르는 정취는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양폭에 이르러서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물거품과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땀을 식히고 있으니 조금씩 동이 터오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날이 차츰 밝아오면서 산새들이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며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무너미 고개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다.

희운각 산장가는 길과 공룡능선이 만나는 삼거리에 이르니 완연한 아침이 됐고, 여기서 모든 회원이 모여서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하며 오늘 처음 공룡산행에 나선 문상은, 강승민, 황홍석 회원의 용기를 북돋았다.
본격적인 공룡능선에 접어드니 가파른 바위 암릉과 너덜지대가 나타나고 스틱을 잡고 오를지 양 손으로 잡고 오를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그러다 신선대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눈앞에 속초 앞바다와 청초호, 영랑호가 눈에 들어온다.
공기가 깨끗하고 하늘이 맑아서 동해의 파도가 보일 듯 하다. 그 옆에는 울산바위가 위세당당하게 솟아있다. 뒤를 돌아보니 용아장성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은 용아장성에 출입이 금지되어 가볼 수는 없지만 대학 시절에 암벽 장비를 갖추고 용아장성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공룡능선은 계단과 밧줄이 잘 설치되어 별다른 장비 없이도 산행이 가능하지만 원래의 공룡능선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더 험준하고 날카로운 모습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천불동 계곡 건너편에는 화채능선이 보인다. 이 능선 또한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아쉽긴 하지만 설악산의 모습을 설악산답게 유지하기위한 조치이나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해를 해야 하겠지.

산행을 계속할수록 공룡능선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이 보이는가하면 시루떡을 쌓아 놓은 듯한 모양의 바위가 있고, 햇볕을 피할 울창한 수풀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눈 앞에 새로운 봉우리가 나타나면 “이 가파른 봉우리를 올라갈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조금씩 오르다보면 어느새 봉우리의 꼭대기에 다다르고 동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개의 바위 봉우리를 지나며 산행을 계속하다보면 공룡능선에서 가장 높은 1275봉을 볼 수 있다. 이 봉우리는 뾰족한 산세가 장관인데 이에 걸맞는 아름다운 이름이 없이 무미건조한 높이 숫자로 1275봉이라고 불리고 있다.

사실 공룡능선에는 여러 개의 봉우리들이 각기 특색 있는 자태를 드러내고 있지만 번듯한 이름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번 산행의 메인코스인 공룡능선이 끝나고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하여 모든 회원이 모여서 간단한 점심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 여기서부터 오세암까지는 계곡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이미 긴 산행을 해서 다리에 힘이 많이 빠진 상태라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하산을 해야 했다.

오세암(五歲庵)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다섯살 먹은 아이가 사는 암자'이다. 이 암자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이 암자에 계시던 스님이 다섯 살 먹은 고아를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아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스님이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이 암자를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백담사에 오후 2시쯤 도착하니 다시 폭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2시에 산행을 시작했기에 다행이었지,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더라면 한낮의 폭염에 큰 고생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원통에 들려 간단히 목욕을 하고 저녁 식사 후 상경을 하는데 대구시의사산악회 김철수 고문님이 해외 산행 중 실족하여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대한의사산악회의 한 축을 담당하셨던 고문님을 애도하며 이 지면을 빌어 김철수 고문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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