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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원 스프링클러 의무화는 `행정 폭력' 
병·의원 스프링클러 의무화는 `행정 폭력'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8.08.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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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이 30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과 입원실을 운영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지난 6월27일 입법 예고함에 따라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배려한 조치라는데 그렇다고 아무런 보상책도 없이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 영세한 동네의원에 대해 이렇게 무리한 부담을 줘도 되는 것인가?

스프링클러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수압계, 배관, 비상전원, 배수구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물탱크 등 건물 전체 차원의 공사가 필요한 사항으로 업계 관계자들에 의하면 적게는 5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까지 공사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에는 총 3만1447개의 `동네의원'이 있다(8월8일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 중 대부분은 소규모 상가에 입주한 임차인이다. 수억 원을 들여 건물차원의 공사가 필요한 스프링클러 설치의무를 임차인인 의원급 의료기관에 돌린다면 당연히 임대인이나 건물주와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지 않겠는가?

이는 입원실 운영을 포기하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공무원들의 `탁상행정'도 아니고 `폭력행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가 없는 소방당국이 왜 의료기관에만 화재예방 책임을 떠넘기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일까?

이는 최근 몇 년간 잇따라 발생한 `병원화재' 사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서 화재사태가 발생하면 관할 지자체나 소방서 등 당국에 관리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공무원들이 향후에 책임질 일이 발생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애꿎은 민간 병의원에 막대한 재정적, 행정적 부담을 떠넘긴 것이다. 이번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방안이 단순히 환자안전을 위한 대책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어차피 행정당국은 손쉽게 규제만 신설하고 그 뒷감당은 민간이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부담도 없다. 더해 집합건물 전체에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달랑 의료기관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됐다고 화재를 완전히 예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화재사건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의료기관 점포 하나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할 게 아니라 집합건물 전체에 설치를 의무화하되 설치비용은 정부나 지자체가 부담하는 등 보다 실행 가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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