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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초당 연수원에서
강진 초당 연수원에서
  • 의사신문
  • 승인 2018.08.0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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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91〉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우리 암연구소 분자영상치료연구실은 정기적으로 전남의대 범희승, 민정준 교수의 분자영상연구진과 연례 합동 workshop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 7월 중순에 전남대 주관으로 전라남도 강진에서 모임을 가졌다. 장소는 거대한 인공 조림지 안에 있는 초당(草堂)연수원이었다.

강진은 약 200 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온 지역이다. 젊어서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다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해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평가되는 그가 정조의 죽음과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한반도 끝인 이 지역에 유배 온 것이다. 무려 십팔 년을 이 지방에서 지내는 동안 학문을 갈고 닦아 500여 권의 책자를 저술하고 조선 실학사상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강진에서 위인으로 기리는 정약용 선생은 호가 많아 다산(茶山)외에도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탁옹(퀺翁) 등 20개가 있다.

나는 초당도 그 중의 하나라고 짐작했지만, 사실은 이 지방의 유지인 백제약품과 초당제약 창업자 김기운 명예회장의 호였다. 1921년에 무안군에서 태어난 그는 젊어서 의약품 사업으로 입신을 한 후 50년 전부터 조림사업에 투신하여 약 1000 ha(약 320만 평, 여의도 3배)의 초당림(草堂林)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국가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우리가 어릴 당시,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 산에는 나무가 없었다. 중학교 교과서에 김동인의 단편 소설 〈붉은 산〉에서 `삵'이라는 주인공이 죽으면서 고향의 붉은 민둥산을 보고 싶어하는 장면이 실릴 정도였다. 석유는 없고 석탄 산업이 미진하여 옛날부터 땔감으로 나무를 무분별하게 짤라 사용하고 여기에 한국전쟁의 여파로 전국 산림이 유실된 것이다.

1960년 대부터 본격적인 조림 사업이 시작되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의 성과로 집권을 합리화 했고, 나무로 우거진 산도 그가 제시한 미래의 모습이었다. 봄비가 자주 내리는 4월 초에 휴일로 식목일을 정하고 〈메아리〉, 〈나무를 심자〉 같은 동요를 교과서에 실어 보급시켜 산에 나무를 가꾸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산림을 지키는 노력도 병행해 나무를 훼손하면 범죄에 해당되었다. 이 결과로 산은 점차 푸르러졌으나 부작용도 있었다. 실적주의의 폐단으로 빨리 자라나지만 재목으로는 가치가 적은 아카시 같은 나무들이 주를 이룬 곳도 많았다.

초당 김기운 회장도 녹화 사업의 일환으로 1969년에 강진 칠량면에 널려있는 벌거벗은 돌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무 생육에 필요한 지식이 부족해 한파, 가뭄, 산불 등으로 처음 심은 50만 그루의 반이 죽는 악몽 같은 시련과 고통도 있었다. 근본적으로 경제성이 없는 즉, 돈이 되지 않는 조림사업에 주위에서 모두들 비판적이었으나 그에게는 숙명적인 애국의 길이었다. “어려서 산길을 넘어 초등학교에 다녀서 지금도 달콤한 산 냄새에 짙은 향수를 느낀다. 숲은 고향이고 나무 하나하나가 자식과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일생을 넓고 긴 안목을 가지고 조림사업에 투신하였다. 방충, 방재, 비료, 가지치기 등 생육의 적절한 관리법을 꾸준한 공부로 터득하고, 우리나라에 맞고 목재로 유용한 나무를 연구하였다. 수많은 실패의 탐구 끝에 적절한 테다소나무, 삼나무, 측백나무 수종을 찾아내고, 특히 고급 목재 수종인 백합나무의 대량 식재에 성공했다. 산림청에서는 백합나무를 산림 권장 수종으로 지정해 전국 산야 수만 ha에 식수하고 있다.

현재 450만 그루의 산업용 수목이 있어 국내 최대의 인공조림지가 된 초당림을 50년 동안 가꾸면서 200억의 사비가 들어갔다. 김회장은 “내가 오직 꿈꾸는 것은 푸른 산, 푸른 국토, 아름다운 금수강산이요, 미래의 국가 재산이지 내 생전의 돈이 아니다.”라고 남다른 육림의 사명을 밝혔다.

잔 나무가 아닌 목재용 나무로 가득 찬 수풀을 꿈꾸었던 그에게 초당림은 이제 종교적 성지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그가 먼저 찾아가 슬픔을 위로 받은 곳도 이곳이었다. 그 후 교육사업에 사용하고 남은 개인 재산은 모두 사회에 기부하고, 2014년부터 초당림을 외부에 공개하였다. 숲길 트레킹, 숲 속 음악회, 계곡 수영장, 목공예 익히기 등 자연과 어울려 우리 몸과 마음을 함께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Workshop 참석자도 저녁식사를 마치고 숲 속을 산책하였다. 특이하게도 숲 속에 임도(林道)를 확실하게 만들었다. 차 한대가 돌아 다닐 수 있을 만한 길로 각 나무에게 접근하기가 쉽고 비료 운반, 인부 이동, 목재 운반이 용이하다고. 산불 났을 때 소방차도 다닐 수 있는 초당림 임도의 길이는 총 50㎞! 자연히 좋은 산책로가 되었다. 4대 수종을 심은지 40∼50년이 지난 지금, 30m 높이에 내 허리 정도의 굵은 나무로 자라 훌륭한 재목 감이 되겠다.

자연히 숲이 깊어져 새소리, 물소리에 간혹 알 수 없는 짐승 소리도 들린다. 밤에는 박쥐 떼도 만난다고. 마침 그믐날이어서 한밤중에 연수원 옥상에서 별구경을 하였다. 우리나라 전국이 전기 불로 뒤 덮여 별을 보기 어려운 요즘, 여기는 칠 흙 같이 어두웠다. 전인권 가수와 같이 음악 활동을 하던 김천기 선생의 감미로운 기타 노래를 듣는 행운을 즐기면서 북두칠성, 카시오피아, 은하수와 간간히 떨어지는 별똥별을 밤 늦게까지 감상하였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사람을 치료하는 의약품을 판매하던 초당 김회장이 혼신의 노력으로 백세가 가까운 나이에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숲을 완성한 것이다. 그가 천수를 다하고 이 세상을 떠날 때 `붉은 산'이 아닌 `숲으로 가득 찬 푸른 산'을 그릴 것이며, 우리는 다산 정약용 선생에 더하여 초당 김기운 회장을 강진의 큰 인물로 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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