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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대학 설립…`충분한 논의' 거쳤나 
공공의료대학 설립…`충분한 논의' 거쳤나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8.07.23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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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에서 공공의료대학 설립 추진을 발표한 가운데 의료계가 기자회견을 열고 반발한 일이 있었다.

정부가 공공의료대학의 설립을 서두르기보다는 공공의료 취약성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위해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우선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취지의 자리였다.

사실 현재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이미 국내 의료서비스에 대한 방향성은 확정된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비급여 항목의 건강 보험 적용을 공약으로 포함시킨 바 있고 현재까지도 일명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선 박근혜 정부 또한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건강보험의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단계적 보장성 강화, 의료서비스의 불평등 완화를 위한 낙후지역 국공립의료시설 확충 등의 공약을 내세우며 의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를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방향성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것과 달리 의료서비스 제공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책임과 역할 구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 국내 의료전달체계에서 일선 현장과 법률사이에 간극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료법 33조에 의하면 영리법인은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의료법 시행령 제20조에는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의료법인과 비영리법인은 영리를 추구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국내의 모든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건보 적용을 받고 있다. 

즉 다시 말해 한국은 법률에 의거해 의료의 공공성을 명확히 하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의료서비스의 공급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은 미비한 상태다. 대부분의 의료 공급은 민간 영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의 급진적인 공공성 확대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현실과의 괴리로 인한 의료계의 강한 반발이 야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높은 공공의료 국가로 대표되는 영국은 한국의 경우와 좀 다르다. 영국은 2차 대전을 겪으며 대규모 재정 지원으로 전쟁사상자를 위한 응급병상을 운영했고 이로 인해 일반 병원들의 자체 생존이 어렵게 돼 병원의 국유화가 가능했다.

또한 영국은 보건의료 무상서비스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1948년 국가보건서비스체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가 정식 운영된 이후 영국은 현재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세부법률이 폐지되고 수정되는 변천과정을 겪었다.

물론 정부의 공공보건의료의 강화에 대한 필요성과 취지에 동의하지 않는 의사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점진적 변화 과정을 거친 영국의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섣부른 판단으로 자칫 의료계 자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망한 나라가 어디 한둘인가.

때문에 이번 공공의료대학 설립 추진과 관련해서 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나 정치적 논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 개선과 이를 위한 의료인 양성에 대한 교육 차원의 체계적인 검토가 우선돼야 한다.

아울러 의료 현장에 대한 넓은 시각을 위해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도 있다. 정부 관료들의 시각과 현실 의료현장의 괴리를 극복하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의학자 및 의료 전문가들의 견해가 올바른 정책 수립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이 있다. 한번 잘못 만들어진 정책은 다시 수정하거나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공공의료대학 설립에 정부가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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