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0:31 (목)
빅토르 위고의 비밀 기호 `toda'
빅토르 위고의 비밀 기호 `toda'
  • 의사신문
  • 승인 2018.07.23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늙음 오디세이아 〈39〉 
유 형 준 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빅토르 위고가 68세인 1870년 여름에 자신의 활동을 적은 메모다. 

“7월 29일: 페르멩 베이, 융, 알리스 콜의 밤, 난로와 숯. 7월 31일: 다리, 난로, 스위스. 8월  2일: 페르멩 베이, 융, 스위스, 다리 성자들. 8월 3일: 페르멩 베이. 8월 4일: 아침에 강제로 출발, L.Y. 9월 10일: 프로쇼트가 3번지에서(마리를 위해), 메라에게 원조비 5프랑. 9월 13일: 앙졸라 n을 봄. 9월 17일: Pros. 베르테에게 원조비 피갈 9가, n. 2프랑. 9월 19일: 고트 부인을 봄, 난로, 몽토방에서 Sec. Hebe. n. 10프랑. 9월 21일: 메라에게 원조비. 여자용 잠바 2프랑. 9월 23일: 에밀 타파리, 시르크가 21번지, 7층 1호. Osc. 9월 27일: 20년 후에 다시 봄, A. Piteau, toda. Sec. 조에톨로제에게 0프랑 50. sec. 루이즈 랄리에, n. 2프랑. 9월 28일: 엘라브르 톨로제 n. sec. 5프랑. 9월 30일: 외젠, 눼브 데 마티르가 9호. n.sec. 3프랑. 10월 11일: A. C. 몽토방, sec. 10프랑. 10월 15일: 올랭프 오두아르 부인, 가슴의 끝. osc. ------” - (`노년' 시몬느 드 보부아르 / 홍상희·박혜영 번역)

난로는 체모, 스위스와 성자들은 여자 가슴, n은 나체, toda는 완전한 나체, osc는 키스, pros는 매춘부를 의미한다. 위의 기록은 바로 빅토르 위고가 다양한 여자들을 찾아 즐긴 쾌락(快樂)메모다. 위고의 메모를 연구하여 책을 출판한 기유맹(Guillemin)의 분석에 따르면 위고는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벗은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녀를 애무하고 껴안는 것을 가장 즐겼다고 한다.

메모를 작성했던 시기는 위고가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 등의 명작을 쓰는 데에 영감을 준 뮤즈였던 쥘리에트 드루에와 살던 때다. 그는 29세인 1831년, 네 살 아래인 여배우 드루에를 만나 1883년 그녀가 세상을 뜨기까지 근 반 세기를 함께 살았다. 쥘리에트 드루에는 위고가 하녀와 바람을 피우자 도저히 못 견뎌 집을 나간 적이 있다. 위고는 미친 듯이 그녀를 찾았고 간신히 화해를 하고 돌아온다. 이러한 곡절 등으로 위고는 그녀의 눈치를 몹시 살펴 자신의 쾌락편력을 비밀기호로 작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더라도 보부아르의 표현대로 `수치스러운 연애사건'들을 구체적 사항까지 기록으로 남기려한 것은 무슨 심리일까? 샤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도 유명한 보부아르의 의견을 빌린다. 

“위고의 눈에 늙음이라는 것은 결함이라기보다 명예였다. 늙음이란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 숭고한 것, 그리고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결합되는 것이었다. 위고는 확실히 어떠한 열등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중략〉---`나는 사람들이 여러 번 쳐낸 숲과 같다. 그래서 어린 싹들은 점점 더 견고하고 생명력이 강해졌다.' 그리고 또 아름답고 젊은 여자들이 그를 사랑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가 그 여자들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위와 같음)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적지 않다. 우선 1869년 1월 7일, 위고의 나이 67세에 쓴 편지의 한 구절은 노년의 사랑이 차지할 당위성을 지지하고 있다. 

“오! 내가 늙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영혼의 증거인가! 나의 육신은 쇠약해지고, 나의 사고는 성장한다. 나의 노년에 일종의 개화(開花)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위와 같음)

실제로 노년에 위고는 자신의 작품들을 친구들에게 읽어주면서 “여러분, 나는 일흔 네 살입니다. 나의 활동은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74세에 위고는 의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성공적으로 지속적으로 왕성한 의회 활동을 했다. 동시대 소설가로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그의 작업 능력은 줄어들지 않았고 여전히 명랑하고 쾌활하고 그의 눈은 마치 즐거움의 불꽃처럼 그 주위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고 평한 바 있다.   문학적 창조는 일종의 열성이라고 부르는 공격적 성격이 요구되며 그 성격은 생물학적으로 리비도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던 플로베르의 눈에 사실주의의 대척에 놓여 있는 낭만주의의 대가인 빅토르 위고는 성욕과 창작력의 상관성이 가장 극명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 보였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만큼 자신의 작품에 `늙음'을 많이 다룬 작가도 드물다. 평자들은 `늙음'은 그가 즐겨 그리고자 했던 환상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승에서 83년을 향유한 위고는 `신은 위대한 시인이며 늙은 시인은 신이다.'라고 표현하며 자신 넘치는 환상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넘치는 자기만족은 자신의 생애를 사랑하고 자랑스레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실현 불가능한 노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환상을 사용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환상에 관한한 그는 모든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보부아르의 추론에도 공감한다. 위고에겐 비밀기호도 환상적 늙음의 무기 중 하나였을 거라 짐작하면서, 창작활동이 한창 때였던 50대에 쓴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80세 질노르망을 빌려 드러낸 그의 속내를 되읽는다.

“은총이 주름 사이사이에 섞일 때 늙음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것. 만개한 늙음에는 뭔지 모를 새벽의 빛이 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