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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회 · 세상 주도 '변화추진자' 필요 <3>
의료사회 · 세상 주도 '변화추진자' 필요 <3>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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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 난데없는 질문 같지만 최근 `좋은 의사'를 앞세운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의학전문대학원 체제(흔히 말하는 `4+4 체제')로의 의학교육 학제개편 정책(비록 입시과열 잠재우기라는 이면의 목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2009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의사국시 실기시험 도입, 의사면허 갱신제도 도입의 모색 등이 그 예다. 4년제 졸업생이 의학교육을 받도록 하려는 학제개편은 의학도의 학문적 배경이 다양해야 의사의 질이 향상되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의사국시 실기시험 도입은 단순 지식을 측정하는 필기시험만이 아니라 실기시험을 보아야 더 좋은 의사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의사면허 갱신제도 도입은 의학지식의 빠른 반감기 때문에 정기적인 재훈련과 면허 갱신을 해야 좋은 의사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외 · 내부적 시각 주체적 충족 전제조건


예로 든 3개의 변화시도에서 나타나는 좋은 의사의 이미지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아주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의사에게 더 많은 능력과 소양, 자질을 요구한다. 한편에서는 `다양한(인문·사회적 소양을 포함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인격적으로 성숙한 의학도'를 요구하고 한편에서는 `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미래형 의사'를 요구한다. 또 한편에서는 `국경 없는 세계성'을 요구하지만 한편에서는 `국경 있는 과학자'를 칭송한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2005년 6월 3일 황우석 교수가 관훈토론회에서 `과학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한 말(이 말은 아마도 19세기 파스퇴르가 했다는 말을 재인용한 것일 것이다)에 언론은 얼마나 감격했던가? 어떻게 지성과 미모(?),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이성, 인문·사회적 소양과 첨단 테크놀로지 마인드, 세계적 사고와 애국심을 동시에 갖출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다양한 요구가 여러 방면에서 돌출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의학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상당한 혼란에 직면해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20세기 초 미국 의학교육 개혁의 원동력이 된 플렉스너 보고서나 1980년대 GPEP 보고서(Physicians for the Twenty-First Century)와 같이, `좋은 의사'의 총체상과 의학교육의 큰 판을 다시 그려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하는 질문에 다가가는 방법에는 사회(수요자)의 입장을 중시하는 외부적 시각과 의사집단 자신의 입장을 중시하는 내부적 시각이 있다. 외부적 시각은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하므로 당위이고 궁극적이며 또 강력하지만 집단의 비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흠이 있다. 반면에 내부적 시각은 집단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강조하므로 협소해질 우려가 있고 집단 내 여러 세력의 정치적 타협에 의해 형성되어 알맹이가 빠지기 쉽다는 문제가 있지만, 집단의 비전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성원들에게는 더 현실감과 구속력이 있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외부적 시각과 내부적 시각이라는 2개의 축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목적의식적 방황(purposeful wandering)을 통해서 구해져야 한다. 좋은 의사는 사회의 구미에 맞으면서도 동시에 의료발전과 의사 집단의 지위향상에 적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황의 주체는 바로 의료계가 되어야 한다. `좋은 의사'의 상을 정립한다고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어 이리저리 널뛰다 보면 스스로 전문직의 정체성과 변화의 이니셔티브를 상실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유능한 치유자등 '7C' 자질 고루 갖춰야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은 우리 의학계가 직면하고 있는 중차대한 과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내친 김에 필자의 짧은 소견을 제시해보자면 `21세기의 좋은 의사'는 유능한 치유자(curer), 창의적 과학자(creator)일 뿐만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환자를 돌보는 사람(carer), 진심으로 마음이 통하는 효과적 의사소통자(communicator), 집단구성원 간에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협력자(collaborator), 이질적인 인격과 직군을 조화롭게 이끄는 코디네이터(coordinator), 그리고 의료전문직 사회와 세상을 참된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 변화추진자(changer)가 되어야 한다. 요컨대 `7C'의 자질을 고르게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7C' 중 앞의 2개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나머지 `5C'의 정당성은 전인적 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갈망(carer), 의사 역할 중 질병예방과 만성병 관리를 위한 정보발신자 및 환자(사회)교육자로서의 역할 증대(communicator), 다양한 직군의 협력진료가 지배적 형태가 되고 있는 병원의 진료 양식(collaborator), 여러 직군간의 협력을 이끌어야 하는 의사의 역할(coordinator), 그리고 스스로 변화를 하지 않으면 프로페셔널로서의 지위와 자긍을 유지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사회 역동성(changer) 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겠다.

이중에도 필자는 특히 `changer'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과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 전문집단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자신의 변화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 맹자 `이루 상(離婁上)'의 글귀가 나오는데 이런 맥락에서 한번 음미해볼만할 것 같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은 공자가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집단도 스스로를 정돈하고 변화시키지 않으면 상대의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신좌섭 <서울의대 의학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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