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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에 서서
문턱에 서서
  • 의사신문
  • 승인 2018.07.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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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38〉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스티브 잡스에게 담당 비뇨기과 의사가 병세를 알렸다.

“췌장 신경 내분비 종양입니다. 간단한 병은 아니나 아직 전이가 안 되었고 수술로 잘라내면 완치율도 높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거부했다. 결국 9개월이나 더 지난 뒤에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딱했다. 향년 56세. 건강에 관한 개념과 지식이 모자라는 건강 문맹자였던 것이다. 혹시 삶에 대한 독한 애착, 죽음에 관한 과소평가 등도 작동하지 않았을까. 아울러 삶 자체보다 삶의 기술에 치우쳐 편협하게 익힌 인문학적 오류 때문은 아닐까.

기자가 물었다.

“`목숨 걸고 둔다.'고 했었는데 요즘도 그렇게 임하나요?”
바둑 입단 50주년을 맞은 조치훈 9단은 웃으며 또렷하게 답했다.

“패하면 너무 슬프니까요. 하지만 전과는 좀 달라요. 젊을 적엔 지면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나이 먹으니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어요. 죽음이 멀리 있지 않으니까.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질지언정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요.”

예순 두 살의 조9단은 말을 이었다.
“저는 지난 일은 잊어요. 과거의 영광을 생각할 만큼 늙지는 않았지요. 미래의 희망에 부풀만큼 젊지도 않고요.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만 생각해요.”

증명이나 설명이 필요 없이 그 자체만으로 명백하면 `자명하다'고 말한다. 가장 자명하면서도 자기 스스로에겐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 말 하나가 있다. `인간은 죽음에 붙여진 존재(Sein zum Tode).' 하이데거의 말이다. 무의식 속의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본능적 신념 탓이라고 한다. 이는 임종 연구의 개척자인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의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자신의 불사불멸을 믿는다. 내 이웃의 죽음, 교통사고와 전쟁과 자연재난으로 죽는 사람들의 소식은 믿긴 하지만, 그런 사건들은 도리어 나는 불사불멸하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뒷받침할 따름이며, 저 밑바닥에서 “다른 사람이 죽지 나는 안 죽어!” 하는 은근한 기쁨을 맛보게 한다.”(`인간의 죽음', 퀴블러 로스 / 성염 번역)

`코스모스'의 저자인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90년 2월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찍어 보내온 지구의 모습을 보고 느낌을 적었다.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연인들, 어머니와 아버지, 희망에 찬 아이, 부패한 정치가, 슈퍼스타들, 위대한 지도자들,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다 이 우주에 뜬 먼지 같은 이곳에서 살다가 갔다.”
칼 세이건은 1996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트로이'에서 브래드 피트가 맡아 열연한 아킬레스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을 질투하지. 인간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은 더 아름다워.”
“이제 나는 떠날 허락을 받았으니, 나의 형제들이여,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해다오! 그대들 모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는 이제 길을 떠나련다.

여기 내 집의 열쇠들을 돌려주마. 나는 내 집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자 한다. 그대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다만 마지막 정다운 작별의 말뿐!

우리는 오랫동안 이웃해서 살았고, 나는 내가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대들에게서 받았지. 이제 날은 밝았고, 내 어두운 구석을 밝혀 주던 등불도 꺼졌구나. 소환장이 도착했고, 이제 나는 떠날 채비가 다 되었다.”(`기탄잘리'93,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장경렬 번역)

퀴블러 로스는 그녀의 저서 `인간의 죽음'에서 `순응'장의 머리글로 이 시를 인용하고 있다.

죽음과 관련된 이승의 일들을 삽화적으로 실었다. 좀 더 솔직하게 이르면, 죽음에 관한한 삽화적으로 인용하여 담을 수밖에 없다. 모두 다 체험의 범주를 넘어 있는 것들인 탓이다. 다만 삽화를 17세기 영국의 시인이며 정치가로서 81년을 살았던 에드먼드 월러의 음조로 되읽는다.

“사람은 약함에 의해 더 강해지며 더 지혜로워지나니, / 그들의 영원한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그러하리라. / 그들이 한때 보았던 낡은 것을 떠나며 새로운 것의 문턱에 서서 / 양쪽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며.” (`책의 마지막 구절들', 에드먼드 월러)
`늙는다'는 `죽음에 가까워진다'와 동의어다. 노인에게 죽음은 막연한 추상명사가 아니라 꽤 현실적 구체적 명제다. 늙음은 슬그머니 이쪽과 저쪽의 양쪽 세계를 어렴풋하게나마 바라볼 눈을 얻게 한다.

어느 이의 말처럼 `인간은 유한하므로 행복하다. 유한을 철저히 깨닫고 최선을 다하는 행복이야말로 진정 만끽할 값어치가 있다.' 독실한 믿음의 사람에겐 그 유한이 절절하여 무한으로 연속된다. 무한을 향하든 유한을 향하든 양쪽 세계가 멈추지 않고 근접하고 있는 문턱에 서서, `나이 먹어 죽음이 가까우니 승부에 지더라도 더 살고 싶다'는 조 9단의 말에도 `삶이 소중한 까닭은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는 카프카의 생각에도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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