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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네브로(Dannebrog)의 왕국
단네브로(Dannebrog)의 왕국
  • 의사신문
  • 승인 2018.07.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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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風書風 〈73〉

박 송 훈
대한공공의학회 대의원


빨간 바탕에 흰색 십자가, 단네브로는 13세기에 덴마크 왕가에 의해 제정된 세계 최초의 국기이다. 바이킹의 나라, 데인(Danes) 족의 왕국은 당시의 스칸디나비아 지역뿐만 아니라 영국의 중북부, 아일랜드까지 점유하고 있었다. 지금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깃발이 서로 색깔만 다를 뿐 노르딕 십자의 디자인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과거 북유럽 전체를 지배했던 단네브로의 영향으로 보인다.

16세기 중반까지 덴마크는 스웨덴, 노르웨이와 연합관계(칼마르 동맹)를 유지해 왔지만 1523년 스웨덴이 먼저 떨어져 나가고, 나폴레옹의 프랑스 측에 섰던 덴마크는 1814년 킬 조약에 의해 노르웨이마저 스웨덴에 빼앗겼다. 1864년에는 남쪽의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지역이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에 할양되면서, 덴마크는 영토와 인구의 1/3과 잠재적인 소득의 절반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의해 아이슬란드마저 국토에서 분리되었다. 800년에 걸친 역사의 우여곡절 끝에 덴마크 제국은 윌란(유틀란트) 반도와 질랜드 섬, 그리고 주위의 부속 도서만 남았다.

19세기 초반, 전투의 패배와 영토의 상실로 자긍심을 잃은 덴마크 인들을 일깨웠던 정신적인 영웅들이 있었다. 민족시인 홀스트(H. P. Holst)의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시구(詩句)가 국가적 금언(金言)이 되었으며. 신학자이자 민중교육가인 그룬트비(Nikolaj Grundtvig)는 `부자가 적고, 가난한 사람은 더 적을 때 우리 사회는 참평등을 이루는 것이다.'라는, 덴마크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우고 있을 정도로 복지와 평등을 골자로 한 사민주의(社民主義)의 바탕을 열었다.

이들의 영향으로 달가스(E. M. Dalgas)는 윌란 반도의 히스(heath)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였으며, 애국청년들은 협동조합 운동을 일으켜 덴마크가 모범적인 낙농국가로 나아가는 기반을 만들었다. 그룬트비는 국민고등학교를 설립해 청년들에게 조국사랑, 국토사랑이라는 공동체주의, 민족주의 정신을 불러 일으켰으며, 차후 100년의 사회 경제적 발전을 이끌어 갈 복지국가의 초석을 세웠다.

얼마 남지 않은 영토와 문화적, 경제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모두가 합심 단결하여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면서부터, 덴마크 제국의 상징이었던 단네브로가 왕가가 아니라 단일민족, 민족중흥의 깃발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유리컵에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았다.'라는 자존감은, 현실에 대한 긍정적 타협주의와 루터교의 금욕주의가 결합한 붉은 색의 열정과 프로테스탄트의 십자가, 단네브로 정신이었다.
덴마크 인들의 국기사랑은 지나칠 만큼 각별하며 국기 게양의 의무도 성문화 되어 있다. 단네브로는 국경일이나 왕가의 경축일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일이나 소규모 단체의 모임에도 항상 등장하고, 주택 내부의 가구 장식과 상업적 마케팅의 도구로 사용되며, 심지어 상품의 포장지에서도 단골 메뉴로 나타난다. 단네브로는 사회적인 의식(儀式)인 동시에 의례(儀禮)적인 것이며 덴마크의 국민들에게 일상화 되어 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덴마크 인들의 단네브로에 대한 이 같은 감성적인 인식은 그들의 삶과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 정신을 대변한다.

`해피 대니쉬(Happy Danish)', 덴마크 사람들의 별명이다. 행복은 은유이며 여러 가지 대상에서 느끼는 복합적이며 주관적인 은유다. 그러나 집단이나 국민 대다수가 행복감을 느낀다면 객관적으로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게 마련이다. 〈덴마크 사람들처럼〉의 저자 말레네 뤼달(Malene Rydahl)은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 10가지를 정리해서 소개했다. 그중 하나는 `휘게(Hygge)'였다. 휘게 외에도 신뢰, 꿈과 끼를 키워주는 교육, 자유와 자율성, 기회균등, 현실적 기대, 공동체 의식, 돈에 초연한 태도, 겸손, 남녀평등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다양한 연구자와 기관들의 행복도 조사를 보면 지금도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며, 덴마크인 스스로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자부한다. 개인과 가정의 편안함, 안락함을 의미하며 생활화 되어 있는 휘게 라이프(Hygge Life), 공동체 정신과 집단 대중문화를 지칭하는 폴켈리 문화(Folkelig culture), 그 이면에 자리하는 `모두가 평등하며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얀테(Jante)의 법칙은 단네브로 행복의 구심점이다. 무뚝뚝한 북유럽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덴마크 인들은 라틴 문화권의 그리스나 이탈리아인처럼 대단히 사교적이고 친절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단네브로의 민족적 국수주의는 역사적으로 악연인 스웨덴과 독일을 싫어하고, 무슬림 난민 문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배타적이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또한 그들의 불편한 진실이다.

유럽에서 가장 긴 보행자 거리인 고풍스럽고 상가가 밀집한 코펜하겐의 스트뢰에를 걸으면서, 재기발랄하며 위트가 넘치는 작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은, 그의 저서 〈발칙한 유럽 산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이토록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북유럽의 한구석에서, 덴마크 인들의 삶에 대한 느긋한 태도는 신선하다 못해 놀랍기까지 하다. 덴마크 사람들에게서는 삶의 기쁨이 넘치다 못해 뚝뚝 떨어진다.'

국민의 대부분이 평등하며 모두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덴마크, 빌 브라이슨의 90년대에는, 밀레니엄의 초반까지는 그랬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포함하는 폭넓은 사회보장제도로 국민의 삶 전체가 조화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성공적인 복지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 출신의 영국 작가인 마이클 부스(Michael Booth)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에서, 덴마크 성공 신화가 이루어진 근본 바탕에는 시민 상호 간에 존재하는 정직과 믿음에서 비롯하는 사회적 신뢰와 결속력이 있었다고 했다.

마이클 부스가 글을 쓴 2010년대 초반에는 덴마크의 모든 내외적 환경과 상황이 엄청나게 바뀌어 있었다. 물가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고, 소득세를 포함한 직간접세로 평균 60%를 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 광범위한 공공 부문과 거대한 관료제, 이미 갚을 능력의 한도를 넘어서버린 개인의 부채, 직업은 편안한 걸 고르고 일은 되도록 적게 하는 게 좋다고 믿는 국민들, 전 직원의 동의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으려는 `합의'에 대한 강박 등, 시대적 변화에 발 빠르게 순응하는 스웨덴의 수정주의 복지와는 달리 가뜩이나 비효율적인 덴마크의 경제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덴마크의 경제를 `호박벌 경제'라고 부른다. 딱 봐서는 절대 못날 것 같은 데 잘 날아다니는 호박벌 같다는 얘기다.

불평등의 사회가 치르는 물질적, 정신적 비용은 대단히 크지만, 반대로 평등의 사회가 지불하는 사회적 대가 역시 만만치는 않다. 덴마크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생산적인 공공 부문에서 일하거나 사회보장 급여의 형태로 재정 지원을 받기 때문에 감세 정책은 정치적으로 이슈화 할 수 없으며, 높은 세율로 인해 암암리에 벌어지는 탈세와 지하 시장의 행태 또한 문제다. 가구당 평균 부채와 낮은 저축률을 보면 소비는 거의 대출에 의존하는 듯하다. 또한 부실한 무상 교육의 질과 공공 서비스로서의 의료와 교통 시스템의 현실은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행복도가 세계 최상인 국가에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10%나 되고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의 처방율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덴마크 인들의 비만율과 암 발병률은 주위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기대수명은 유럽 선진국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도시화에 밀려 윌란 반도의 시골 지역은 젊은이들이 빠져 나가면서 이주 실업자와 노인들만 남았다. 도시들 중에서도 코펜하겐만이 새로운 일자리의 75%와 GDP의 절반을 차지한다. 세계 최고의 풍력발전국가(인구별)지만 원자력 발전을 허용하지 않는 덴마크는 생산되는 에너지의 반 이상을 석유와 석탄의 화력 발전에 의존함으로서 1인당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 미국과 함께 OECD 최상위권에 속한다.

삶의 작은 기쁨에도 감사하고, 행복에 대한 높은 기대를 자제하는 만족감과 낙관주의. 덴마크 사람들의 휘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이른 퇴근을 위해 점심시간 자체가 없고, 주 37시간의 짧은 근로 시간조차도 줄여 나간다. 자기만족 행복의 이면에는 높아만 가는 범죄율, 마약과 음주, 가계 부채의 증가, 세대 간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태어나기에 가장 좋은 국가가 덴마크라면, 젊고 야심찬 젊은이들이 독일이나 영국으로 떠나는 곳도 덴마크다.

지난 해 11월, OECD가 삶의 만족도를 정량화하여 `Better Life Index 2017'을 발표했다. 노르웨이에 이어 2위인 덴마크는 삶의 만족도와 개인 소득(세전 소득), 사회적 유대 관계와 짧은 고용 시간의 개별 항목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한국은 29위). 반면에 2017년 미국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80개국을 대상으로 여행환경, 시민의식, 문화 수준, 사업 용이성, 전통문화자산, 발전 가능성, 친기업 환경, 국력, 삶의 질과 같은 9가지 항목을 조사해 점수를 매긴 결과는 덴마크가 1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한국은 23위). 부와 연관된 부분을 제외한다면 아시아의 소국인 부탄이나 남미의 칠레 같은 나라도 삶의 만족도 지수가 1위일 수도 있듯이 행복이란 주관적이며 수치화,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이다.

발트 해의 짓궂고 음울한 날씨, 스트뢰에 상점가 골목에 사시사철 걸리는 빛바랜 단네브로를 본다. 루터교는 세속화 되고 도시화가 가속화되며 사회적 신뢰가 예전 같지 못한 이 나라에서, 개혁보다 현실 안주를 더 바라는 사람들에게 복지모델의 운명은 어찌될까. 행복의 상징인 단네브로가 비바람에 젖고 있다.

태극기를 생각한다.
태극기의 상징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일제 식민 지배체제 하에서는 자주 독립, 전후의 역동적 시기에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부흥, 오늘날에는 아마도 평화와 안정, 국민의 행복일 것이다. 경축일이면 집집마다, 거리마다 바람에 나부끼던 태극기를 기억한다. 2002년 월드컵 축제의 광화문 거리에는 태극기가 물결처럼 흘러 넘쳤다. 그러나 요즈음 태극기 게양의 현실은 몹시 씁쓸하기만 하다. 호국의 달 6월, 현충일의 아파트 베란다 창가에는 몇 안 되는 태극기로 썰렁하고, 나부끼는 깃발조차도 왠지 쓸쓸하기 그지없다.

천박한 정치적 포퓰리즘에 의해 사회적 프레임과 시스템이 스러지면서 희망이 사라져가는 사회, 장마철의 우울한 날 아침에 단네브로와 태극기를 비교해 본다. 덴마크 인들에게 무한한 단네브로 사랑은 뿌리 깊은 역사적 정체성과도 같은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에게 과연 태극기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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