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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과 렘브란트의 자화상
주름살과 렘브란트의 자화상
  • 의사신문
  • 승인 2018.07.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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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37〉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바로크 시대 예술의 특징은 무수히 많은 주름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 바로크 화가 중의 한 사람인 렘브란트는 일생 10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렘브란트 자화상의 위대함을 명문장으로 찬양한 적이 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갖는 위대함은 자신의 얼굴에 내재한 삶의 굴곡을 거침없이 드러내었다는 점에 있다. 이 굴곡은 다름 아닌 주름이며, 이 주름은 하나의 뚜렷한 실선이 아닌 무수히 많은 미세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그린 〈자화상〉에는 뚜렷한 실선으로 구획된 실루엣보다 삶의 애환을 담은 주름의 중첩만이 발견될 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담긴 렘브란트 자신은 하나의 무한한 존재가 된다. 이때 무한한 존재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삶의 무게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 무게에 짓눌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흔적을 담고 있는 존재이다. 기쁨과 분노, 환희와 절망, 공포와 용맹과 같은 세계의 모든 속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로 접근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무한한 주름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초월적인 의미에서 무한한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적인 무한의 존재이다.”(박영옥,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들뢰즈는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 바로크의 주름을 독일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라이프니츠의 모나드(monad)에 잇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포함하여 만물을 실재하게 하는 궁극적인 구성 요소인 형이상학적 단자(單子)가 바로 주름이라는 들뢰즈의 주름 칭송이다.

주름살로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피부를 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악명 높은 네로 황제의 처인 포페아는 나귀 젖이 주름살 펴는데 좋다고 해서, 틈만 나면 나귀 젖 목욕과 세수를 즐겼는데, 이 나귀 젖을 대기 위해 오백 마리의 나귀를 길렀으며 여행할 때면 화장용 나귀를 수백 마리씩 끌고 다녔다고 한다. 고운 피부를 갖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1세기경의 백과사전격인 프리뉴스의 `박물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부인들이 흰 피부를 유지하고 주름살을 없애는 데는 송아지의 발굽 뼈와 쇠갈비 뼈를 사십 일간 주야로 고은 아교질 즙이 좋고, 암소의 분을 볼에 바르면 장밋빛 피부색이 영롱해지는데 악어 창자를 구해 바르면 더욱 좋다.”

의학이 빛나게 발전하는 지금도 살갗에 쌓인 세월을 가리고 떼어내겠다고 비타민도 바르는 시대, 쭈글쭈글한 주름살도 레이저로 펴주는 시대다. 그러나 애꿎게도 나이를 거스를 순 없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나이가 들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탄력이 떨어지며 잔주름이 생긴다. 생각보다 빨리 피부는 늙는다. 스물다섯 살쯤부터 건조해지고 탄력이 떨어지며 잔주름이 생기고, 피하지방이 줄어드는 오십 세 이후부터는 보다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피하지방이 쉰 살 무렵부터 감소하는 이유는 일광노출에 의해 자외선에 의한 산소 라디칼은 증가하는데 산소 라디칼을 없애주는 수퍼옥사이드 디스무테이즈 효소의 감소로 광노화와 함께 전신상태, 특히 영양, 정신적 스트레스 등의 요인이 노인에서 가중되기 때문이다. 얼굴과 목 부분에 주름살이 많은 이유는 다른 부위보다 햇빛 노출이 많고 다른 부위에 비해 이곳의 근육이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주름살의 원인은 크게 내인성과 외인성으로 나뉜다. 내인성 노화는 그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타고난 유전적 체질에 의해 늙는 것으로 연대기적 노화라고도 한다. 이에 반해 외인성 노화는 환경외부 인자들 특히 이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장기간의 태양에 노출됨으로써 오는 자외선 자극으로 인한 광노화이다. 외인성 노화의 뚜렷한 한 증거는 도시에 사는 노인들보다 농촌이나 어촌에 사시는 노인 분들이 유난히 더 주름살이 많은 것이다. 햇빛을 많이 받은 탓이다.

혼자 음악을 감상하는 찰나, 생각에 잠긴 찰나, 글을 짓거나 세차게 운동을 하는 찰나, 긴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주름이 접히고 펴기를 반복한다. 때론 세미하게 때론 두드러지게 거듭하면서 주름은 흐릿하게 또는 깊게 파인다. 무슨 생각 어떤 몸짓을 하는가에 따라 주름은 다른 모양을 낸다.

어느 번화한 도시, 쌓여가는 시간이 죄다 주름으로 보이던 깊은 밤을 불면으로 새운 적이 있다.

“바람의 방향으로 / 낙엽이나 흰 눈은 / 난분분 쌓이고 // 지난밤 / 창 넘어 마주 선 / 도시에서 / 빛나던 불빛 좇아 /뭉쳤다 흩어지던 얼굴들 / 간간한 리듬으로 / 손풍금에 흐르다 고인 말들 // 커튼 더 꾸겨져야 / 가렸던 창 밖 환히 보이듯 / 풍금 소리가 들리고 / 옛 얼굴들이 나타나 // 계절처럼 다가서며 / 살갗 서로 맞대어 /바람 다 소진한 부챗살처럼” (유담, `주름살' 전문)

렘브란트의 주름살 단자가 난분분하고 손풍금 소리 은은한 얼굴들. 손풍금과 부채, 그리고 커튼은 제대로 접혀야 그 몫을 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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