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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앤포커스] 지속되는 ‘의사폭행 잔혹사’
[이슈앤포커스] 지속되는 ‘의사폭행 잔혹사’
  • 송정훈 기자
  • 승인 2018.07.03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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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서울시의사회 등 의료계 분노 극에 달해…“솜방망이 처벌이 원인”

“의사는 진료할 때 항상 문 가까이에 앉고 환자는 안쪽에 둬라, 웬만하면 문은 살짝 열어 두고”

한 의사는 대학 본과 2학년 시절 정신과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정신과 환자의 특성상 환자가 갑자기 난폭해질 때 몸을 피할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 두라는 이 핵심 명제는 현재에도 유효한 듯 보인다.

지난 1일 전북 익산시의 한 응급실에서 만취한 환자가 당직 의사의 웃음을 보고 분노해 그의 얼굴과 다리를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잔혹한 주먹질과 함께 대한의사협회와 서울특별시의사회까지 성명서를 발표했고 의료계는 드디어 폭발했다. 

의료계의 폭발은 마치 ‘휴화산’ 같았다. 응급실 의사의 폭행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응급의학과 전문의 3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문의 총조사’ 자료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이 환자 및 환자의 보호자에게서 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했고 80.7%는 폭언을 들었다고 답했다.

대한응급의학회지의 논문에는 폭력을 휘두른 사람 중 97.4%가 남성이었고, 연령별로는 30~40대가 62.6%로 가장 많았으며 폭력을 휘두른 사람의 절반 이상(51.3%)이 ‘주폭(酒暴)’이었다. 이는 정신질환자(3.6%)나 약물을 복용한 상태(1.8)보다도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5월 19일 창원지방법원 형사 4단독 이창경 부장판사는 의사를 폭행한 혐의로 받았던 A(39)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이 부장판사는 “응급의료를 제공하는 의사를 폭행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며 반성도 하고 있지 않다”는 질책을 쏟아냈지만 “다만, 어린 자녀의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의사에게 따지던 중 흥분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보이며 폭력의 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우발적으로 국민의 진료권 훼손을 한 것에 비하면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이번 전북 익산의 응급실 의사폭행 사건과 유사한 사건도 지난해 9월 21일 오후 6시 광주에서 발생했다. 당시 사건도 주폭에 의한 의사 폭행 사건으로 술에 취한 B(62)씨가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가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폭행한 것이다.

광주지방법원 형사 9단독 김강산 판사는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를 폭행한 B씨에게 징역 4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만취한 상태에서 치료를 빨리 해주지 않는다며 저지른 폭행이긴 하나, 범행 내용이 불량하고 과거 병원에서 의사를 폭행한 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의사 폭행으로 실형을 받은 사건이지만, 당시 몇몇 의사들은 판결 내용에서 ‘만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폭행이긴 하나’라는 점이 석연치 않다고 했다. 그들은 “‘술 문화에 너그러운 한국’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B씨가 과거 병원에서 의사를 폭행하지 않았다면 실형 판결이 나왔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12월 18일 청주에 위치한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도 의료진이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한 환자가 의사를 폭행했다. 당시 그 환자는 응급환자들이 주위에 있음에도 고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던 것으로 알려지며 같은 해 4월 13일 또 다른 청주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도 임신 9개월째인 응급구조사가 환자에게 얼굴 부분을 수차례 맞았다.

당시 청주시의사회는 성명서를 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일벌백계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병의원, 경찰서 간 핫라인인 폴리스콜 제도를 확대하라”는 분노를 표출했다.

지난 2016년 8월 23일에는 진료를 받던 C(86)씨가 계명대동산병원 한 내과의사(36) 가슴과 복부 등을 칼로 찔렀다. 당시 피습당한 의사는 한 언론사 기자와 만나 “장 천공에 출혈과 기흉, 혈흉이 있어 사고 직후 많이 힘들었다. 이번 사고로 앞으로 환자를 보는 게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경북 고령군에서도 한 환자가 A병원 내과 과장의 복부를 칼로 찔러 해당의사는 소장 일부를 잘라냈다. 당시 치료를 맡았던 관계자는 “소장을 10cm정도 잘라냈다. 통증이 심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의료진 폭행사건은 하루 이틀 일어난 일이 아니다. 반복적인 의사폭행 사건은 '솜방망이 처벌'이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 의료계 인식으로 의사들은 현재 익산의 폭행 가해자에게도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

지난 1일 전북 익산에 위찬한 응급실에서 발생한 의사폭행

한편, 2015년 1월 28일 개정한 응급의료법을 살펴보면 응급의료종사자의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이송·응급처치를 방해하거나 진료 중 폭행, 협박 등의 방법으로 방해,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시설, 의약품 등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으며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처해진다.

아울러, 계속되는 의료진 폭행으로 지난 2016년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인 폭행방지법이 시행돼 응급실 등 진료공간에서 의료인 등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처벌받을 수 있지만 주폭들은 현재 폭력행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응급실 등 의료기관에서의 의사 폭행은 진료기능을 상실하게 하면 이는 응급진료 폐쇄라는 결과까지 초래한다. 현재 국민의 진료권 훼손과 더불어 국민의 생명 보호, 국가 응급 시스템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고 있는 의사 폭행에 대한 근절을 위해 국민적 관심과 국가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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