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56 (금)
“무면허 의료행위로 자살예방사업?…제 정신인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자살예방사업?…제 정신인가?”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8.07.02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원협회, 의료인 아닌 약사의 자살예방 중재는 무면허 의료행위

보건복지부가 의료인이 아닌 약사의 자살예방 상담을 가능케 하는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의료계의 공분이 커지는 가운데 대한의원협회(이하·의원협회)도 사업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는 2018년도 민관협력 자살예방 사업 중 ‘약국을 활용한 빈곤계층 중심 노인 자살예방사업’의 수행기관으로 대한약사회를 선정, 1억3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키로 했다.

이는 지난해 9월 2017년 민관협력 자살예방 사업 중 민간부문 자살예방 사업 활성화 부문(사업명: 지역 자살예방 게이트 키퍼로서의 지역약국 참여 활성화)의 수행기관으로 선정한 데 이어 두 번째이다. 

지난 6월 25일 대한약사회가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올해 7월부터 12월까지 250개 약국에서 시행하는 2018년 사업의 주요 목표는 △약사 대상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교육 실시로 지역약국을 자살예방기관으로 양성 △약국 전용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활용한 자살예방 사업 추진 △복약순응도 제고, 지속적 환자관리, 자살위험 환자 조기발굴, 고위험환자 자살예방센터 연계 등이다.

이와 관련 의원협회는 2일 성명을 통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2위를 기록한 가운데 대책수립 및 사업시행 필요성은 적극 지지하지만 검토 결과 본 사업이 무면허 의료행위임을 확인했다”면서 “약사는 의료법상 의료인이 아니며, 약사법상 약사(藥事)에 관한 업무인 의사의 처방에 의한 조제 및 복약지도, 일반의약품 판매만 할 수 있음에도 약사회 브리핑을 보면, 약사의 직능 규정을 벗어난 부분이 너무 많았다”고 지적했다.

당장 의원협회는 약사회가 밝힌 사업의 자살예방프로그램 체계도에서 중재방안으로 첫 번째로 약국을 방문한 환자가 우울증이나 자살위험이 의심될 경우와, 두 번째로 자살위험약물이나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환자에 대한 것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의원협회에 따르면 첫 번째의 경우 환자의 동의하에 모니터링 도구를 활용하여 위험도를 체크하고, 만약 중간이나 높은 위험도이고 환자가 상담에 동의할 경우 지역자살예방센터에 연계하고, 그 환자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지지(support) 및 복약순응도 제고를 위한 상담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니터링 도구란 우울증을 선별하는 설문지를 의미한다.

또 설문도구를 활용하여 자살위험도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신보건센터에 연계하거나 운동 및 생활 요법, 모니터링(들어주기, 조언하기), 정신보건센터 정보제공 등의 중재(Intervention)를 시행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환자가 우울증이나 자살위험이 의심될 경우는 바로 의료행위의 진단방법 중 시진과 문진에, 설문지를 통한 자살위험도 평가는 바로 문진에, 모니터링 도구 평가에 따른 환자 중재(지지 및 상담)는 의료의 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의원협회는 지적했다.

의원협회는 “약사법에는 약사가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에도 진단적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 사업에서는 시진, 문진, 설문도구 등을 통해 환자의 우울증이나 자살위험을 평가하여 그 위험도에 따라 지지요법이나 상담 등의 중재를 시행하고, 상담 건당 7,000원의 상담료를 총 10회까지 지급하겠다고 한다”며 “결국 이 사업은 의료법과 약사법의 규정을 전면 위반한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꼬집었다.

의사-환자 불신 조장하고, 환자 자살 오히려 더 부추길 수 있어

의원협회는 또 본 사업이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여 자살예방에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원협회는 “체계도의 두 번째 경우에는 자살위험약물이란 개념이 나온다. 약사회는 2017년도 사업에서 약학정보원과 협력하여 자살 위험성이 있는 약물을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약학정보원의 약국청구프로그램인 ParmIT3000에 탑재해 환자를 상담하고, 위험환자를 발굴해 지역자살예방센터에 인계하고 다시 피드백 받아서 상담할 수 있는 구조로 기획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의원협회는 “진통제, 항경련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호르몬제, 항고혈압제, 스테로이드제제 등의 일부에서 약물 부작용으로 자살 생각이나 우울증을 일으키는 약물들이 보고됐고, 심지어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해열진통제인 부루펜 계열 약물도 극히 드물게 부작용으로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약사회는 자살 위험성이 있는 약물이 처방될 때마다 환자에게 자살위험을 고지하고 지지요법 및 상담을 시행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오히려 자살 생각이 전혀 없던 환자가 자살을 생각하게 만들고, 이런 약물을 처방한 의사를 불신하게 함으로써 의사-환자 관계까지도 훼손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의사로부터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는데, 약을 조제하러 간 약국에서 복약순응도 측정과 지지 및 상담치료를 받으라고 할 경우 환자는 아예 항우울제를 복용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어 결과적으로 약사의 자살예방사업은 환자의 민감정보를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오히려 적절한 우울증 치료를 방해하여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개연성이 아주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의원협회는 또 “환자들로 북적대는 약국 카운터에서 약사가 환자에게 설문지를 통해 질문한다면 환자는 자신이 자살위험 환자로 낙인찍힌 것에 분노와 좌절을 느껴 오히려 자살위험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본 사업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등이 불법 의료행위라고 지적하며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하자 복지부와 약사회는 이 사업이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보다는 자살충동을 자극하는 약물의 위험성을 알리는 복약지도에 초점이 맞춰졌고 의사단체의 반발이 약국 자살예방사업이 일부 부풀려진 채 알려진 탓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특히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약국에서 자살 충동 약물에 대한 복약지도를 철저히 하고 자살 고위험군을 정신과 등에 연계하는 것이며, 상담료는 수가 개념이 아니라 지역 약국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인센티브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어 표현을 정정할 계획”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의원협회는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보다는 자살충동을 자극하는 약물의 위험성을 알리는 복약지도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기존 복약지도료로 충분한 것을 왜 건당 7000원의 상담료를 책정하여 1인 환자 당 최대 10회의 상담이 가능하게 한 것인가”라며 “무엇보다 사업의 책임자인 약사회 간부는 의료행위에 속하는 질병과 건강에 대한 상담행위를 약사의 직능으로 확대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속내를 아주 용감하게 거듭 밝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원협회는 “약사회가 약사의 업무를 규정한 약사업이 아니라, 보건의료기본법에서 약사가 상담행위를 할 수 있다는 근거를 대고 있는 것도 결국 의료법과 약사법 규정에서 약사의 상담 행위가 적법하다는 근거가 전혀 없음을 약사회 간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약사회의 주장대로라면 의사도 보건의료기본법의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약을 조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의원협회는 “본회는 본 사업이 불법의료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업 시행으로 환자들의 자살을 오히려 부추길 수 있어 적극 반대한다. 복지부는 당장 약사회 수행기관 선정을 취소하고 선정 과정에 불법성이 없었는지 감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하며 “그럼에도 본 사업이 강행된다면 법적 수단을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문제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