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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에 강제수사권 부여…신중해야
건보공단에 강제수사권 부여…신중해야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8.07.02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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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사무장병원’ 등 불법개설의료기관 단속을 위해 자신들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이하 특사경)’을 부여해 달라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는 모습이다.

특사경 제도는 형사소송법 제197조에 의해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아니지만 삼림, 해사, 전매, 세무 등 특정 분야 행정기관 공무원 등에게 예외적으로 소관 분야에 한해 사법경찰권, 즉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일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직무범위가 확대돼 보건의료 분야에서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등 의료법 관련 행정공무원에게도 사법경찰권이 부여됐다.

그러나 복지부가 인력 부족으로 특사경을 실제로 행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단은 사무장병원 단속의 실질적 역할을 하는 자신들에게도 특사경을 달라고 수차례 요구해 왔다.

복지부는 이미 현행법상 요양기관 현지조사 및 행정조사 권한이 있어 특사경 부여 당시 기존 권한과 중첩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이제 공무원도 아닌 준정부기관인 공단 직원들까지 기존에 실시해 왔던 현지확인으로도 모자라 강제수사권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공단에 강제수사권 부여 시 검사 지휘를 받아 체포·압수·수색까지 가능해지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근 검·경수사권 조정 급물살로 경찰에 수사권 독립 및 영장청구권 부여까지 논의되는 시점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국가기관 또는 지자체가 아닌 공공기관에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현재 정부 및 지자체를 제외하고 극히 일부 공공기관에만 특사경이 부여돼 있을 정도로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그만큼 수사권 남발로 인해 인권침해 등 더 심각한 문제 발생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강제수사를 위해서는 수사절차에 대한 전문성뿐만 아니라 높은 인권의식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문수사기관 인력들에게도 100% 기대할 수 없는 그런 높은 인권의식을 공단 직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가?

당장 공단은 현재 특사경을 통해 사무장병원 단속이 훨씬 더 용이해질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을 뿐, 이로 인한 인권침해 우려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모습이다.

최근 사망한 충북 제천의 정형외과 원장도 사망하기 전 실손보험사의 고발로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으면서 큰 심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말에도 강원도 강릉의 비뇨기과 원장이 공단의 현지확인 통보를 받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고, 7월에도 경기도 안산 비뇨기과의원장이 심사평가원 현지조사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본원, 권역별 6개 지역본부, 178개 지사 등 전국적으로 체계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1만 7천여 명의 소속 직원들이 남다른 유대감을 갖고 근무하고 있는 공단에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단순히 수사의 효율성만 따질 일이 아니다.

18세기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이 말해 오늘날 형사법 대원칙으로 자리 잡은 격언이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면 안된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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