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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목청
소크라테스의 목청
  • 의사신문
  • 승인 2018.07.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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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36〉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출퇴근 전철 안에선 신속한 이동만이 값어치가 있다. 젊음과 늙음의 구분을 비롯해 다른 모든 가치는 빼곡한 땀내에 묻혀버린다. 헝클어진 값 매기기를 마뜩찮게 여겨 귀퉁이 경로석에 앉아 있던 늙을 힘이 `이러는 게 아니야'라고 돋우려던 목청을 주변의 눈치를 지레 채고 슬그머니 낮추며 소크라테스와 젊은이들을 생각한다.

“아니,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

기원전 399년, 독배를 선고 받고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변론을 한다. 그의 나이 칠십 세. 소신껏 살았다는 자신감일까?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는 델피 신전의 신탁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지독하게 노력했던 자의 참 지혜일까?

자유 민주주의를 누렸다는 아테네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뽑힌 삼십 세 이상의 남자 삼백 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일흔이 다 된 한 초고령 노인[고대 그리스인의 평균 수명은 18세이고 서기 10년경 로마인의 평균 수명은 25세였다]에게 왜 독배를 주었을까? 그의 수제자인 스물일곱 살 플라톤도 다수의 관중 속에 섞여 지금의 시민법정과 유사하게 열리고 있는 스승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원 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전기 작가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소크라테스에 관한 공소기록을 담고 있다.

“이 고발과 진술서는 피토스이 멜레터스의 아들인 멜레터스가 알로페의 소프로니스쿠스의 아들인 소크라테스에 대해 서약되었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한 신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였고 새 신들을 도입한 죄가 있다. 그는 또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거리에 나서기 시작한 건 나이 40세다. 불혹이 되어서 그는 왜 거리에 나섰을까? 아테네가 몰락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서막이었던 포티다이아 전투에서 돌아와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라는 신탁을 들은 그의 눈앞에는 아테네 성안에 넘치는 피난민과 역병의 질고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병자들이었다.

그 후에도 전투는 이어져 45세와 47세에 각각 델리온 전투와 암피폴리스 전투에 참전한다. 델리온 전투에선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잠시 휴전 중 50세 나이에 크산티페와 결혼을 한다. 대단한 만혼이다.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그 어려운 중에 자식들이 겪는 어려움을 육친의 정으로 느꼈을 것이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는 전반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부패하던 시기였고, 이로 인한 개인윤리가 몹시 타락한 시대였다.
60세에 현악기 리라를 배우기 시작하고 신탁의 의미를 구하기 위해 거리에 맨발로 나설 정도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그는 젊은이들에게 애국심과 청년기 교육의 가치를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질문을 통해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하였다.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절제·용기·경건'을 강조하며 `선'을 중시하여 토론 과정에서도 이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던졌다. 스스로도 도덕적이고 금욕적 삶을 추구하였고 자신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청년들을 무료로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일부 제자들이 일으킨 민주정 전복과 공포 정치는 소크라테스를 더 이상 사랑스러운 괴짜나 거리의 철학자로 여기지 않게 만들었다. 그의 냉철한 논리는 다만 국가를 해치고 타락시키는 선동일 뿐이었다. 그저 젊은이들을 부추겨 잘못된 소크라테스화하는 불경스런 죄인이었다. 동시에 그의 사상은 정치적 오해를 부를 여지가 많았다.

예를 들면 `현자의 정치', `자기 무지에 대한 자각', `덕과 앎의 일치' 등은 전체를 나누어 갈라 시비를 부를 여지가 적지 않았다. 이 여지 속에 담긴 모호함은 그를 재판정에 세웠고, 그는 변론을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고발한 사람에게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고발자는 `국법, 재판을 맡은 배심원, 평의회 의원, 국민의회 의원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를 반박하고 말(馬)을 훌륭하게 하는 것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임을 역설한다. 즉 지혜와 덕을 법이나 의결기관과 같은 제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혹은 소수가 정신적으로 열망한 결과라는 주장이다.”(박홍순, `사유와 매혹')

젊은이들의 미래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세상의 앞날을 짚는 지팡이로 지하철 바닥이라도 두들겨야 한다. 맨발로 나설 담력으로 거리에서 외치진 못하더라도. 그래야 진짜 늙을 힘이다.
경로석에 눌러 앉은 열망은 `그래, 열망을 식히는 것도 늙을 힘'이라고 자기 목청이 `소크라테스답지 않음'을 `소크라테스의 목청과 다를 뿐'이라고 위로한다. 아, 때론 칼보다 붓이 더 힘세다는 수사에 기대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기울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던 이색의 충정 깊은 한탄을 떠올려 경로석의 어느 늙음은 간신히 함호한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험하구나
반겨 줄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이색, `백설이 잦아진 골에', 고려 말)

결단을 못 내려 입속에서 우물우물 웅얼거림을 함호(含糊)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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