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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무지식, 무도덕, 무윤리 자살예방 시범사업
[시론]무지식, 무도덕, 무윤리 자살예방 시범사업
  • 의사신문
  • 승인 2018.07.0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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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 의사평론가 이명진

WHO에 따르면 매년 100만 명이 자살로 죽는다고 한다. 이 추세로 나가면 2020년에는 20초 마다 한 명씩 자살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45년간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60%나 증가했다. 자살은 15세~44세 연령군의 3대 사망원인 중 하나다.

자살에 성공하기 전까지 20번 이상 자살시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은 모든 연령층과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갈등, 윤리적 갈등 문제 등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 통상 노년층에서 자살률이 높지만 젊은 층의 자살률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모든 자살의 90% 이상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과 약물남용이 관련되어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경제적 위기나 개인적인 위기와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발생된다. 대부분의 자살시도자들은 죽기보다는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갈등하고 있는 문제를 풀어 줄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자살자들은 자살을 암시하는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남기지만 주변인들이 자실징후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자살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들의 동반 자살을 발생시키고 정서적 외상이 매우 크다.

우리나라 경우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016년 25.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자살한 사람뿐 아니라 해당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사회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기에 자살을 막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과적으로 자살징후는 응급상황에 속하기에 입원치료하거나 집중관리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급기야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내어 놓고 있다.

2018년 7월부터 보건복지부가 민관자살예방사업의 일환으로 7월부터 약국 자살예방사업을 시행했다. 약국 자살예방사업은 대한약사회 산하 약학정보원에서 만든 프로그램에 탑재된 자살예방 프로그램과 자살위험약물 DB를 활용하는 것으로, 약국 250여 곳에 상담료 등으로 약 1억3천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사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마디로 총체적으로 잘못 설계된 사업이다. 정말 가당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적인 상담교육과 실무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을 위한 별도의 격리된 상담실도 없는 상태인데 설마 이런 황당한 사업을 추진할까 했는데, 진짜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연실색할 일이 벌어졌다.

일반 상담과 달리 자살이나 성과 관련된 상담,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상담은 전문지식과 전문 상담 훈련, 그리고 별도로 외부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격리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여건과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웃지 못 할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 자살예방시범사업은 무지식, 무도덕, 무윤리가 합쳐진 총체적 불량 사업이다.

첫째, 사업의 비전문성이다. 자살시도는 수많은 복잡한 상황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발생한다. 자살에 대한 정신과적 전문 교육이나 상담훈련도 없이,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램과 복용하는 약을 보고 환자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환자의 심리상태를 꿰뚫어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참 안일하고 무지식적이다.

둘째, 선의를 가장한 상업성이다. 자살을 암시하는 낌새가 보일 때에는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도와주면 족한 일이다. 능력을 벗어난 선의는 위험한 일이다. 게다가 위험에 빠진 이웃을 도와주었다고 돈을 요구하는 행태 역시 건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돈을 요구하는 도덕적 선행은 있을 수 없다. 무도덕적이다.

셋째, 자살예방 사업의 비윤리성이다. 자살 환자를 도와준다고 하지만 환자를 배려하는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살상담과 환자의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상담은 타인이 듣지 못하는 ‘격리된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자살이나 환자의 은밀한 프라이버시 내용을 상담을 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인 행위로 징계대상이다. 도무지 기본이 안 된 분들의 정책입안이다. 무윤리적이다.

이러한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정책을 시범 사업하겠다는 정책입안자와 예산 낭비 정책추진자들을 빨리 솎아 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비윤리적인 정책을 추진하거나, 무지식, 비전문성을 가지고 예산 몰아주기식의 정책을 입안한 사람들은 시범적으로 징계를 해보는 징계시범사업을 제안하고 싶다. 비윤리적이고 비전문적인 이번 시범사업은 환자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다.

능력이 결여 된 선의와 상업적으로 기울어진 정책은 시행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를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이 사업을 당장 전면 취소하고, 무지식, 무도덕, 무윤리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담당자에 대한 징계와 윤리교육을 실시하기 바란다. 보건복지부의 현명한 판단과 대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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