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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의 오월(五月)
흘림골의 오월(五月)
  • 의사신문
  • 승인 2010.06.0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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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성북 이정균내과의원장>

▲ 이정균 원장
폭우와 수해의 깊은 상처 위에 피어난 설악, 수줍게 드러낸 설악의 `속살' 그곳은 만물상과 칠형제봉 사이에 꼭꼭 숨은 골짜기 흘림골이다. 누룩덤 같은 흘림골 입구 돌무더기, 처음부터 길은 가파르다. 탐방로 입구부터 곧바로 나무와 쇠로 짜 만든 데크 계단길이 시작된다. 우람스런 바위전시장, 산괴불주머니가 곳곳에 피어있다. 다람쥐 재롱도 즐겁고, 칠형제봉의 위용에 쌓여 걷는 길, 생강나무, 단풍나무, 신갈나무, 박달나무들은 연록색등을 켜고 반겨주니, 깊은 숲 속 걷는 길 피로를 잊는다. 먼 옛날 불제자 일곱 형제가 선녀탕에서 목욕하던 선녀를 훔쳐보다가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일곱 봉우리, 칠형제봉은 필레약수터를 지나, 한계령 쪽으로 방향을 틀면, 그 오른쪽 가파른 산길 따라 혼을 뺏는 봉우리들을 감상하는 것도 산행의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자연재해든 인공재해든 쓰러진 나무들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면서 등산길을 만다는 것이 친환경적이고 자연사랑 숲 교육 실험장이 되지 않겠나? 아름드리 주목(朱木)과 피나무들이 친절하게도 톱으로 잘려 바둑판처럼 쌓여 있거나 풍수해 수목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의 위용은 비록 목숨을 다한 뒤에도 위풍당당 서 있는 자세에서 칭송되는 문귀가 아닐런지….

흘림골 입구에서 약 800m전진하여 첫 번째로 만나는 비경은 여심폭포(女深瀑布), 그 이름처럼 폭포의 모양새가 여자의 음부를 꼭 닮아 처음 보면 민망할 정도다. `차마 볼 수 없는 곳 여심폭포', 계곡 안쪽에 살포시 숨어 있어 무심코 지나가면 놓칠 수도 있어 더 신비하다. 높이 30m 절벽타고 쏟아지는 폭포수 앞에 서면, 서늘한 냉기가 온몸을 감싸온다.

60∼70년대 설악산은 신혼여행지로 인기 높던 곳이었다. 그래서 신혼부부들의 필수 방문코스였다.

성리학(性理學)이 지배하던 조선왕조에서는 성(性)을 천대시, 여성의 성기(性器)를 공문서에 기록하는 것조차 곤란하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조선왕조 선조때 아내의 간통을 적발한 남편이 아내의 심처(深處)를 돌로 쳐서 죽인 사건 때문에 조야(朝野)는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공문서엔 이무방지(以無方之) 타살불인견지처(打殺不忍見之處) `모나지 않는 돌로 차마 못 볼 곳을 때려 죽였다'로 기록했고 `불인견지처'는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한 모양이다.

옛날 신혼여행을 온 신부들은 모두 한복차림이었고 신랑과 함께 사이좋게 여심폭포에서 물을 받아먹었다고 하였고, 그래야만 아들을 낳는다고….

남아선호사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나 지금 우리 현실에서 다출산국의 신화를 창조하는 여심폭포였으면….

여심폭포에서 1km쯤 깔딱고개를 올라가면 정상이 바위로 이루어진 등선대가 나온다. 신선(神仙)이 오른다(登)고 해서 등선대라 이름 붙은 봉우리는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남설악 만물상(萬物像)의 정상이다. 신선이 오른다하여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바위정상 사방은 천길 낭떠러지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남설악의 전망은 압권이다. “끝내준다”그 때문이다. 칠형제봉, 만물상, 등선대, 기기묘묘한 봉우리…. 아! 저것은 신선처럼 생겼다. 선녀처럼…. 망부석처럼 생겼다 했지만 신세대들은 정보화시대 문명의 이기나, 과학기구 이름을 거명하고 있었다. 아니 위인처럼, 장군처럼…. 원숭이나 탱크 닮지 않았어요!

정상은 그리 넓지 않아 겨우 한번에 10여명 안팎, 앉을 수 있고, 모양이 의자처럼 생겨 의자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그곳에 앉으면, “정승자리를 준대도 내주지 않는다” 할 만큼 기막힌 풍경이 시야를 메운다. 왼편엔 구불구불 이어지는 한계령이, 오른편으로는 동해바다와 함께 겹겹이 펼쳐진 산등성이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멀리 동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저 멀리 대청봉, 귀때기 청봉, 끝청까지 설악의 서북주릉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등선대에서 내려서면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 따라 물소리가 커지며 가깝게 들린다. 십이폭포(十二瀑布)의 굵은 물줄기와 진청색의 소(沼)가 출현한다. 경사면 바위를 타고 부드럽게 내리는 물길은 이곳저곳에 작은 폭포를 만들어 놓고 있지만 몇 번의 수해로 굴러 내린 바위들이 이곳저곳을 가로 막아설 때마다 폭포의 숫자가 달라지기 일쑤다. 그러나 폭포구간마다 십이폭포를 흘러 내려온 물은 용소폭포에서 물이 매끈하게 흘러내리는 장관은 놀이동산 워터슬라이드를 닮았다. 내린 물과 Y자로 만나서 몸집을 불려, 흘림골 냇물이 끝나고 주전골과 토킹하는 구간이 된다.

용소폭포를 지나, 오색마을까지의 주전골 계곡길은 단풍이 천하일품이란 찬사를 토해내게 만드는 곳이다. 주전(鑄錢)골의 이름은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를 가장한 도둑무리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오고 있다.

청록색 물길 따라, 줄곧 벼랑을 내려가는 연녹색 숲 탐방로 길은 바위벼랑에 낮게 붙인 나무데크 방석길이다. 오색약수터 찾아가는 길은 왼쪽엔 벼랑이고 오른쪽 귀는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는 길이다.

성국사는 주전골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 절간에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을 피우는 신비한 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이곳 지명이 `오색리'가 되었다. 제2 오색약수는 수해에 기능을 잃었다. 한때 폭우로 초토화되었던 신비한 전설의 계곡이 빠른 시일에 스스로 치유해가고 있는 모습은 우리들의 희망이다.

이정균<성북 이정균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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