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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의사 보건소장직’ 우선임용은… "불평등 아닌 ‘상식’"
[이슈]‘의사 보건소장직’ 우선임용은… "불평등 아닌 ‘상식’"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8.06.26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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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정부 및 법제처에 ‘울분’… 전문지식 갖춘 의사가 ‘당연’

보건소장 임용 시 ‘의사’를 우선적으로 임용하도록 규정한 현행 법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의료계의 울분을 사고 있다. 

최근 법제처는 '불합리한 차별법령 정비계획'을 발표하면서 정부 19개 부처 소관 65개 차별법령을 정비과제로 선정했다. 이 중 31건은 올해 안에 정비가 추진된다.

특히 법제처는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을 보건소장으로 우선 임용하도록 하고 있는 현행 지역보건법 시행령도 차별법령이라며 중장기 검토과제로 선정했다. 치과의사나 한의사, 간호사 등 의사면허가 없는 의료인에게 과도한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의료계는 보건소의 주된 업무가 국민건강 증진과 전염병 등 각종 질병의 예방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곳인만큼,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의사’를 보건소장으로 임명하는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사실 '보건소장 의사 우선 임용' 논란은 10여 년전부터 나왔었다.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보건소장 자격기준 차별 관련 진정사건에서 보건복지부에 보건소장 자격을 ‘의사의 면허를 가진 사람이나 보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인력 등’으로 개정할 것을 권고했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2015년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대한간호사협회를 비롯해 경상남도,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소속 공무원들도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지역보건법 시행령 제13조 1항에서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보건소장으로 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사면허가 없는 의료인과 보건의료 업무 담당 공무원에 대한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인권위는 지난해(2017년)에도 보건소장 임용 시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 것은 특정 직종을 우대하는 차별행위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보건소의 업무가 국민건강증진·보건교육-구강건강 및 영양개선사업, 전염병의 예방관리 및 진료, 공공위생 및 식품위생 등 의학뿐만 아니라 보건학 등 다른 분야와 관련된 지식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각 보건소에는 보건소장을 제외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이 배치되어 있어 의료 활동을 하고 있고 보건소장은 보건소의 업무 관장과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이 주 업무이므로 의사면허를 가진 자를 보건소장으로 우선 임명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보건복지부는 “보건소장은 보건소가 수행하고 있는 보건의료 업무 전반에 대한 종합적 이해도를 갖춘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을 우선 임용도록 하는 현행 법령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 예외조항 ‘삭제’로 임용원칙 ‘강화’해야 

의료계는 법제처 발표에 대해 "보건소 업무의 전문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린 무지한 결정"이라며 철회 및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보건소장 의사 우선 임용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비의사 출신 보건소장 임용의 예외 조항'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법제처 발표와 관련해 "황당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보건소장의 의사 우선 임용은 혜택이 아닌 업무의 특성상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지역민의 건강과 보건을 책임지는 보건소장 업무의 특성상 의사 임용이 우선돼야 하는 것은 의사라는 특정 직종에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며 "차별이라는 말로 해석하는 것에 경악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고 보건소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면 오히려 현재의 비의사 출신 보건소장 임용의 예외조항을 없애 전문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과 보건을 염려한다면, 단순히 법률상 과도한 진입장벽 차원에서 논할 것이 아니라, 보건소장이 공공의사로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신분 안정을 보장해주고, 보다 전문적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라남도의사회도 보건소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보건소장으로 의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성 있는 의사가 임용돼야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이라며 법제처 발표에 반대하고 나섰다. 

의사회는 “보건소는 일반 행정 기관과 달리 주된 업무가 전염병 등 각종 질병의 예방과 만성질환의 효율적 관리와 같이 현대의학과 보건의료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 애초에 보건소를 설립하고 그 관리자의 자격 요건을 법률에 정함에 있어 의사의 우선 채용 조항을 명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건소장의 역할은 지역주민의 건강 및 생명과 직결되는 전문영역으로 임용자격이 더욱 엄격해야 하지만, 현실은 전체 보건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 보건의료기관의 전문성을 점차 강화하는 국제보건의료체계의 흐름에도 역행하며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불과 3년전 메르스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역 보건소장의 의학적 판단과 결정에 전문성이 결여됐다면 그 결과는 끔찍한 비극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의사 보건소장 임용원칙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법제처는 이번 결정을 철회하고, 국민과 의사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 의료의 전문성을 갖춘 ‘의사’가 적임자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 역시 “현행 법령을 보면, 보건소장 임용은 ‘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단, 의사를 임용하기 어려운 경우 관련분야 비(非)의료인을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현재 전국 일부 지역의 경우 비의사가 보건소장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것이 과연 차별행위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보건소장 채용 시 의사를 우선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는 만큼 ‘의사’가 지원했을 경우 당연히 의사가 우선적으로 채용돼야 한다”며 “타 의료인이나 비의료인이 보건소장직을 하면 안 된다는 것보다는, 보건의료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하면서 책임질 수 있는 '의료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즉, 보건소는 행정업무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의 예방은 물론 감염병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예방의학적 측면이 중요한 만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예로 들었다. 당시 보건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의사’가 아닌 ‘보험전문가’가 맡다보니 전문적인 시각에서 명확한 결단을 내리지 못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박 회장은 “보건소장은 지역주민의 건강관리 및 예방사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의학지식 뿐만 아니라 의료에 대한 흐름을 알아야 주민의 건강도 책임질 수 있다”며 “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한 채 보건소장의 역할을 행정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전반적인 관리 및 예방 역할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서울시 25개 지역 보건소는 의사가 보건소장직을 맡고 있다. 그 결과 서울의 경우 지역주민의 건강관리와 예방 및 감염 관리 등이 효율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다”며 “지역적으로나 근무조건이 열악해 보건소장을 의사로 임용하기 어려운 곳에 타 의료인이나 비의료인을 채용하는 것은 차선이지 최선책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최근 종로구 보건소장에 비의료인 채용 공고가 발표됐지만, 서울시의사회는 종로구청장에게 보건소장에 의사가 임용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 결국 의사가 보건소장으로 채용됐다”며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자리라는 것을 잘 이해해준 결과였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국민들에게 '당신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소장이 의사가 아닌 비의료인'이라고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보건소장 의사 임용은 불평등도 정의도 아닌 ‘상식’으로, 법제처 발표는 단순히 탁상공론식 논의와 시각에서 나온 정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보건의료를 ‘포퓰리즘’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최근 보건지소 확대와 관련해 그는 “의료계는 지역 주민의 보건의료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자칫 퍼주기식 정책을 펴다보면 질이 낮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가 보건지소를 만드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게 아니라,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기능이 국민건강 관리와 예방인만큼 진료영역을 확대해 질이 떨어지는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포퓰리즘식 정책'이 아니라 원래 보건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박 회장은 “서울시 보건당국과도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원래 기능에 충실하자'는 것에 핵심을 두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앉아서 오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주는 선심성 행정이 아닌 예방사업 및 감염 관리 등 보건영역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나라는 지역에 병의원이 없는 곳이 없다. 전국은 물론, 특히 서울시 25개 보건소장은 의사가 임명될 수 있도록 서울시 및 정부와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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