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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의 정열과 정욕
늙음의 정열과 정욕
  • 의사신문
  • 승인 2018.06.1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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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34〉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지금 조 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데 지나지 않았나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내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우수수 떨굴 비듬, 태산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곪, 아무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올린 진한 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 제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 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없는 잔소리, 백 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들이 너무도 빤히 보였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 한 사이가 아니면 안 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재고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불가능을 꿈꿀 나이는 더군다나 아니었다.' - 박완서 `마른 꽃'에서

조 박사는 작년에 정년퇴임한 지방대학교수로 전공을 같이하던 퇴직교수끼리 공동으로 조그만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삼 년 전 상처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며 1인칭 화자인 여성은 남편과 사별한 환갑을  바로 앞두고 있다. 지방에서 열린 친정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한복을 입은 그녀와 아콰마린 [녹주석, 의미는 용감, 필자 주] 반지를 낀 조 박사를 우연히 만나, 차차 가까워진다.

글머리에 인용한 대목은 둘 사이에 재혼 이야기가 오갈 때 재혼에 대해 지니고 있는 부정적 견해를 밝힌 것이다. 둘이 서로를 깊이 알아가면서 다음과 같이 토로한 그녀의 정서와 사뭇 판이하다.

`가슴이 소리 내어 울렁거렸다. 이 나이에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누가 믿을까.'

`댁이 어디시죠? 그가 물었다. 고덕 쪽이라고 대답했다. 이럴 수가.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동네였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을까? 가슴이 소녀처럼 발랑발랑 뛰었다.'

`서울 근교에 그렇게 좋은 곳이 많다는 걸 처음 안 것처럼 느꼈다. 강아지를 핑계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만큼 간사스러워진 후였다. 곳곳이 새로워 함부로 탄성을 지르지를 않나, 열여섯 살 먹은 계집애처럼 깡총거리지를 않나, 요즈음 신세대 탤런트의 연기를 톡톡 튄다고들 하는데 내 안에서도 뭔가가 핑퐁알처럼 경박하고 예민한 탄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걸 느꼈다. 뿐만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는 혐의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자신 속에서 느끼는 경박한 즐거움은 유희의 기쁨 같은 것이었으니까, 어차피 현실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뭐든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건 꿈속과 다를 바 없었다.'

노인의 재혼에 관해서는 개개인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주인공 여성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 정서적 소통 등은 젊은이와 다름없으나 재혼의 필요성은 부인하고 있다. 결혼은 정욕을 가지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짐승스러운 시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정열과 정욕을 나누고 연애와 재혼을 갈라`정열은 있으나 정욕이 없기 때문에 재혼은 아니다'라고 그녀의 생각을 간동그릴 수 있다. 달리 이르면 `굳이 재혼까지 안 해도 정서적 정열은 태울 수 있다'는 입장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거나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는 정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늙음의 내면적 균형 감각이 작동했을 것이다. 평론가 박혜경은 비평집 `오르페우스의 시선으로'에서 풀이하고 있다.

`완전하고 정형화된 도덕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삶이나 그 삶을 지탱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이해가 가닿을 수 없는 부조리하고 모순에 가득 찬 무수한 켯속들로 뒤얽혀 있다는 것 등을 작가는 문학으로 전해주려 한다.'

늙음은 부부간의 사별과 황혼이혼의 확률을 높여준다. 이는 노후 삶의 질과 직결되는 현상이다. 꽃이 말라가는 형편을 어찌 해보려는 의학적, 경제사회적 마련과 함께 마른 꽃이 제대로 말라갈 수 있는 늙음의 정열과 정욕에 알맞은 습도 조절도 관심 안으로 들여야 한다.

사족을 단다. `그냥 작가가 노년이라는 것 혹은 단순히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노인이라는 것 이상의 것, 즉 노인이기에 가능한 원숙한 세계인식, 삶에 대한 중후한 감수성, 이것들에 따르는 지혜와 관용과 이해의 정서가 품어져 있는 작품세계를 드러낼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노년문학'을 정의한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대표적 노년문학 작가로 박완서를 꼽았다. `마른 꽃'은 노년문학 소설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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