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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안전사고 보고 의무화… 행정 부담만 가중시키는 ‘악법’"
"환자 안전사고 보고 의무화… 행정 부담만 가중시키는 ‘악법’"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8.06.1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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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환자안전법 개정안 '반대'

환자가 사망하거나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등급 판정을 받는 등 안전사고를 당한 경우 병원장이 정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법률안에 대해 서울시의사회가 반대하고 나섰다.

환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시설과 인력 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법이 시행되면 행정적인 부담만 가중시키는, 실효성 없는 '악법'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은 지난달 28일 이 같은 내용의 환자안전법 개정안(일명 '환자안전사고 패싱 방지법')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사망이나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등급 등에 해당되는 환자 안전사고가 일어난 경우 해당 의료기관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사고 사실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존 '자율보고' 제도를 '의무보고' 제도로 바꾼 셈이다.

특히 개정안은 의무보고제 도입에 따른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칙 및 과태료 규정까지 추가했다. 환자 안전사고 발생 사실을 보고를 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사고 사실을 누락·은폐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보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의료기관장이나 의료기관장의 보고를 방해하는 사람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이는 환자 안전에 대한 체계적이고 총괄적인 관리를 위해 지난 2016년 7월 29일부터 환자안전법이 시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고나 서울 JS의원의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C형간염 집단 감염 사고, 가수 신해철씨의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 등 아직까지 환자 안전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더욱이 현행 법이 환자안전사고를 발생시켰거나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된 보건의료인, 의료기관, 환자 등을 통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그 사실을 보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온전히 자율에 맡겨져 있어 보고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환자안전법 시행 이후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200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 207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 환자안전사고 발생 사실을 보고한 의료기관은 16.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보고 이유로는 '환자안전사고 보고가 의무사항이 아니라서'가 36.1%로 가장 높은 응답을 차지했다.

또한, 환자안전법 시행일부터 올해 4월까지 보고된 6755건의 환자 안전사고 중 가장 많은 사고유형은 48.1%를 차지한 낙상(3247건)이었고, 다음으로 투약(1805건, 26.7%), 검사(414건, 6.1%), 진료재료 오염 불량(234건, 3.5%) 순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의사회(회장·박홍준)는 환자 안전사고라는 개념이 불명확하고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주체에 따라 달리 인식될 수 있다며 개정안에 대해 '의료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의사회는 “현행 환자안전법이 환자 안전사고의 발생에 대해 임의적 보고만을 규정할 뿐 모든 사고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하지 않은 이유는, 환자 안전사고는 ‘보건의료인이 환자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환자안전에 일정한 위해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고’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개정안이 기존의 ‘자율보고’와는 별개로 환자 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무보고’를 신설하는 동시에 처벌 및 과태료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법안에서 의무보고사유로 정하고 있는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 1급 중 일정한 경우’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상 의무조정 개시 사유로, 의무조정이 개시돼 최종적으로 조정결정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이의가 있는 일방 당사자는 여전히 정식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다툴 권리를 가진다"며 "개정안은 의료분쟁조정법상 의무조정 개시 사유를 '의무보고 사유'로 그대로 차용하면서 의무 위반 시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고의도 아닌 과실에 대한 제재를 위해 민사적인 수단을 넘어서 법의 최후 수단인 형사처벌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서울시의사회는 “사망이나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등급 이상의 안전사고에 대해 보고 의무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사망을 제외한 다른 판정이 내려지기까지 최소 1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장애등급 판정은 환자의 회복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보고 의무화의 실효성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고를 의무화함으로써 환자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이 법안의 주된 내용이지만, 환자 안전을 위한 설비 설치와 직원 교육, 인력 확보 등 예산의 추가적인 투입이 없으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정부에 대한 보고 의무화는 행정적인 부담만 가중시키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서울시의사회는 “의무보고 제도 시행 시 소요될 예산에 대한 비용추계나 조달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개정안에서 이에 대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며 “환자안전관리료 신설 및 시설 투자에 대한 보전책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이 추가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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