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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참새의 은혜 갚기
아기 참새의 은혜 갚기
  • 의사신문
  • 승인 2018.06.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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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87〉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한 대학원생이 밤늦게 집에 가다 인적이 뜸한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아기 참새를 발견했다. 가로수 가지 위 둥지에서 아래로 떨어진 것 같았다. 새끼손가락 만한 작은 새는 도움을 청하듯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위를 쳐다보니 저 높이 둥지만 조용할 뿐 어미 새를 찾을 수 없었다. 무성한 나뭇잎이 완충작용을 했던지 언뜻 보아 큰 상처는 없었다. 그냥 두면 길 고양이의 밥이 되거나 밤의 추위 속에 죽고 말 것이었다. 그는 참새를 안고 근처에 있는 친구 하숙집을 찾아갔다.

학생은 어려서부터 생명체에 관심이 많았다. 강아지는 물론이고, 햄스터, 토끼, 거북이, 달팽이 등 많은 동물을 집에서 키워보았다. 카나리아 같은 조류도 길렀다. 학교와 집 사이에 동물병원이 있었는데, 귀갓길에 그곳을 구경하느라 늦게 오기 일쑤였다. 때로는 애완동물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수의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대학입시 문턱이 높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황우석 교수가 국민영웅이 되어 이 분야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조류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보다 장래성 있는 직업을 원하는 부모의 희망에 따라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이런 그에게 애완 참새가 생긴 것이다. 좌우 입술까지 덮은 아기 참새의 노란 부리는 신기하고 귀엽기만 했다. 그는 아기 새를 반드시 살리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넷에는 경험담이 실려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조류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소화관이 짧아 두 시간마다 음식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급한 대로 미숫가루를 물에 녹여 작은 빨대로 입에 넣어 주니 허겁지겁 삼켰다. 몇 번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처져 있던 몸에도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시간에 맞추어 먹이를 주려면 낮에 아무도 없는 친구 집에 참새를 둘 수 없어 실험실로 데려갔다. 아예 조류용 이유식을 구입해 먹여주니 좋아라 하며 입을 크게 벌린다. 참새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 5일째에는 꽁지날개까지 생겼다.

주말이 되어 집으로 새를 데려가니 온 식구가 대환영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틈틈이 새장 앞을 기웃거리고 밥을 줄 때면 모여들었다. 특히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여자 조카가 좋아했다. 조심성이 많고 새침한 성격이지만 아기 새와 곧 친해져 손 안에서 이유식을 먹이고 배변을 받았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배설물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것이었다. 애정을 가지고 새를 기르니 생명 현상 하나 하나가 새삼스럽고 신비롭다. 먹이는 음식은 일정한데 그 속의 영양성분을 갈라 내어 내부 장기와 깃털, 발가락과 부리를 순서대로 만들다니! 과학자들은 이 모든 현상이 DNA에 의한 분자생물학적 작용이라는 사실과 그 상세한 기전까지 밝혀냈지만 근원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누가, 왜, 이런 형태와 방식으로 자연과 생명을 디자인했을까?” 과학만으로는 영원히 해결 못하는 숙제일 것이다.

이제는 새장을 집에 두고 온 가족이 돌보게 되었다. 두세 시간마다 밥을 주어야 하니 각자 스케줄을 맞추어 식사 당번을 정했다. 옆집에 사는 이모가 올 때도 있었다. 새는 웬만큼 자랐는데도 새장 벽을 잘 타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새끼 발가락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 조카는 엄마를 잃고 몸이 편치 않은 아기 새가 불쌍하다며 더욱 정을 붙였다. “앞으로 참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은 경쟁력이 떨어진 참새를 자연 속에 두면 살아가기 힘드니 계속 기르자고 애원했다. 여러 번 의논 끝에 참새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은 애착을 지닌 우리와 다른 마음으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사육당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보다 다른 참새들과 함께 있고 싶을 것이다. 새 자신을 위해서도 야성이 없어지기 전에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아이들도 결국 설득에 동의했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태도에 대해 따끔하게 공부한 셈이다.

참새를 기르면서 생긴 기쁨은 시작부터 괴로움을 잉태하고 있었다. 빨리 자랄수록 이별의 순간은 가까워졌다. 이제는 제법 커져 새장이 좁은 듯 퍼덕거리고 가끔 거실 안을 날아 다녔다. 방생을 하던 날 식구들은 번갈아 새를 손가락에 앉히고 만지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참새도 뭔가 느끼는지 가만히 있었다. 학생은 새를 처음 발견했던 가로수 근처에 갔다. 마침 다른 참새가 있어 날려 보냈다. 새는 고마운 듯 큰 소리를 내며 학생 주위를 한번 돌더니 다음 순간 무리 속에 섞여 무심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허탈해 져서 돌아온 연구실에는 텅 빈 새장만 문이 열린 채 남아 있었다. “혹시 부모와 형제 참새를 만났을까?” 저절로 두 눈에 물기가 돌았다. 흥부 이야기의 강남 제비처럼 선물로 가득 찬 박 덩어리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새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난 3주간 아기 참새를 키우면서 느꼈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행복감에 생각이 미쳤다. 가족들이 참새와 나눈 시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었다. 이런 인연 자체가 일종의 보은이다. 이제는 참새와 연결된 많은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관심을 통해 우리 삶을 더욱 살찌울 것이다.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은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뜻밖의 선물이 하나 더 있었다. 영특한 조카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순서를 정해 놓았다. 1번은 엄마, 2번은 아빠, 3번은 외할머니였다. 외삼촌은 10번이었는데 참새에게 해준 착한 행동 덕에 6번으로 크게 올린 것이다.

*이 글의 일부는 2017년 11월 호 〈착한생각〉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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