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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늙음
아름다운 늙음
  • 의사신문
  • 승인 2018.05.2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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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31〉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아름답다'는 두 가지 뜻을 지닌다. 하나는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만하다'고, 다른 하나는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이다. `아름다운 늙음' 역시 두 가지의 의미를 안팎으로 모두 품고 있다.

사물에는 `낡다'를 쓰고 사람엔 `늙다'를 쓴다. 영어의 `늙다(old)'는 어원이 `자라다, 위로 잡아당기다, 영양을 공급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먹여 살리다, 키우다(alere)'에서 파생한 라틴어 `높다(altius)'와 연관되어 본디는 긍정적 의미다.[채영희, `인문학자, 노년을 성찰하다'(송명희 등 저)] 한자를 만든 중국인들은 한 분야의 최고봉인 사람의 이름 앞에 늙을 로(老)를 붙여 `老OOO'라 불러 존경하고 칭송한다. 우리도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을 `원로(元老)'라 불러 귀하게 대한다. 이른바 노년 소설의 전형이라고 일컬어지는 박완서의 단편소설 `마른 꽃'에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 정서적 교류에 대한 열망 등을 지닌 젊은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서의 노인들이 등장한다.[송명희, `인문학자, 노년을 성찰하다'(송명희 등 저)]

그러나 늙음이 낡음, 쓸모없음, 폐기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도 뚜렷한 현실이다. 의학적 측면에선 더욱 그러하다. 세월이 쌓임에 따라 수많은 곡절들이 곧 수 없는 자극이 되어 늙음의 낡음은 점점 기세등등하여 사람의 각 장기들은 그 항상성이 점차 줄어 쇠퇴하고 자기 자신을 지탱하기 어려울 만큼 망가져 간다. 항상성은 여러 가지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생명현상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 또는 그런 현상이다. 쇠하는 항상성은 질병, 기능 이상 및 약물 부작용으로 더 흔들리고 생리적 예비능의 감소와 함께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 긴 세월 동안 여러 질병에 걸려 어떤 병은 낫고, 어떤 병은 만성화되어 지속된다. 만성질환에 급성질환과 기능장애가 보태지기 쉽고, 혹시 완전 치유가 되었다고 청장년기에 판정을 받았던 병이라도 노인이 되어 기능장애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에 노년기 특유의 질환이 더해지면서 한 사람이 몇 가지의 질환을 함께 갖고 있게 된다. 이를 `질병다발성'이라 한다. 세월은 질병을 쌓아가므로 늙음은 질병 다발성이며 결국 `노인은 질환의 축적 속에서 살아간다.'

아름답게 늙는 길을 찾아내려는 수많은 연구논문들의 결과는 똑같다. 뾰족하고 신기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생명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영양과 운동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운동을 활동으로 바꾸어 불러도 전연 틀리지 않는다. 장수촌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하버드의대 리프 교수의 `노동과 행복한 결혼이 장수의 열쇠이다'라는 말에 보태어 한 노인의학자의 견해를 섞어 간동그리면 다음과 같다. “적절한 영양과 운동을 밑바탕 삼아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늙음의 방법이다.”

아름다운 늙음은 젊어서부터 챙겨야한다. 예를 들어 나이 들어 골다공증이 오는 뼈가 가장 튼튼한 나이는 30세이다. 따라서 뼈의 튼튼을 위한 충분한 영양섭취, 운동 등의 노력은 그 이전, 어려서부터 다져져야한다. 술, 담배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어떻게 먹는 게 좋은가. 먹는 양과 영양소 구성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로 먹는 양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과식을 안 하면 된다. 아직도 무조건 적게 먹는 게 이롭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다음으로 영양소 구성은 편식을 피하여 골고루 먹으면 된다. 자신의 입맛에 붙게 경제 형편에 맞게 골고루 먹으면 된다. 즉, `알맞게, 골고루, 제 때에 먹기'다. 그리고 운동은 어떻게 하나. 젊어서부터 운동을 해왔다면 열심히 계속한다. 그러나 나이 들어 갑자기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해롭다. 어떤 경우든 노인에선 운동 감당 능력을 따져서 시작해야한다. 무슨 운동이 좋다. 얼마나 하는 것이 좋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노인에선 위험하다.

그렇다고 노인이 되어서 해야 할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병적 노화를 최소한으로 예방하여 줄이고 쓸모 있는 부분을 최대한으로 수정하여 활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팡이, 안경, 보청기, 운전 중 안전벨트를 보다 철저히 활용하는 기계적 노화 수정[도구와 기물이 노화의 불편을 바로 잡아준다는 뜻을 담은 필자의 표현]이다. 활동, 운동, 비만 방지, 정신적 여유를 유지하는 순응과 화목은 값진 생활패턴 수정이다. 이와 함께 적극적 질병 치료로 병적 노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저명한 노인병학자인 베스딘 박사의 말을 옮긴다. “노인은 늙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아파서 아픈 것이다.” 노인이 아프면 병에 걸렸을 가능성을 먼저 살피는 게 순서다.

프랑스 인구통계학자 알프레드 소비는 “현대의 모든 현상들 중 그 과정에 있어서 가장 이론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며, 오래 전부터 사전 예측이 가장 용이하고, 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인구의 노화”라고 설파한 바 있다. 가능한 병에 시달리지 않는 아름다운 늙음을 소망한다는 현상 또한 가장 확실한 과정이다. 그러나 늙음이 지니는 평범하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한 속성들은 아름다움을 위한 지침의 도출을 어렵게 한다. 이 어려움의 틈새를 늙음의 의료화(medicalization)만으로 메우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다. 의료적으로 제대로 정립된 것을 적극 활용하여 늙음을 생로병사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서 순리대로 매만지는 수정이 보다 순리롭다. 세월의 축적에 담긴 경험은 풍죽(風竹)처럼 오랜 세월 풍상에 시달릴수록 숙달되고 깊어진다. 사람도 그렇다. 그 너비와 깊이를 아름답게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늙음의 갸륵한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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