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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만에 일반인에 개방 `미지의 세계'로 초대
40여년만에 일반인에 개방 `미지의 세계'로 초대
  • 의사신문
  • 승인 2018.05.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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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교수의 걷기 예찬 〈28〉  한라산 `동백길'

때 이른 무더위로 연일 낮 최고 기온이 하루가 멀다 하고 경신되는 뉴스를 접하니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하는 시름이 앞선다. 아무리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작열하는 태양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자외선까지 감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마침 뜨거운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멋진 숲길이 있어 가보기로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40여년 만에 개방되었다는 한라산 동백길이다.

■아픔 간직한 둘레길, 제주의 또 다른 비경
아침 일찍 동백길의 시작인 법정사로 향한다.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에 걱정하다 안개비를 만나니 처음에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안개를 너무 무시했던 건가? 한라산 중턱으로 갈수록 안개가 더욱 심해져 여정이 끝날 때까지 나의 주변을 맴돌아 시야를 흐렸다. 물론 그 덕에 이번 걷기에서는 색다른 분위기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한라산의 둘레길은 해발 600∼800m의 국유림 일대에 조성돼 있다. 둘레길은 동백길을 시작으로 수악길, 사려니숲길, 아숲길, 돌오름길로 이어져있다. 코스를 따라 한라산의 오름이나 생태 숲, 휴양림을 둘러보고 역사와 산림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아름다운 섬 제주를 알리는 또 다른 아이콘으로 비상하고 있다. 그 중 동백길은 시작 지점인 법정사에서 동쪽 돈내코 계곡까지 13.5Km 구간이다.

지금은 한없이 아름답지만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스며들어있는 길이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의 울창한 산림과 표고버섯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참로 `하치마키 도로'와 임도, 표고버섯 운송로를 연결해 만든 총 80Km의 길이 지금의 아름다운 둘레길이다. 동백길의 시작인 법정사도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전국 최대 규모의 무장항일운동이 일어났던 법정사는 항일지사들의 체포와 동시에 일본에 의해 불태워졌고 지금은 축대 등 건물의 일부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들의 넋을 기리는 항일 기념탑을 지나면 한라산의 동백길을 알리는 진입 이정표가 있다.

■울창한 숲이 우산이 되어주는 환상 속 동백길
이정표를 지나 숲길에 들어서니 동백길의 첫인상은 `환상 숲길'이다. 자연의 길을 그대로 살리면서 오솔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자연과 하나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다. 이정표를 최소화 하다 보니 가끔씩 방향이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나뭇가지에 달린 예쁜 리본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 자연에 심취돼 걷다보니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울창한 수풀이 거대한 우산이 되어 비를 막아준다.

이윽고 다다른 곳은 우리나라 최대의 동백나무 군락지다. 길을 따라 드문드문 붉게 핀 동백꽃들이 이곳에는 확연히 많아졌다. 뽀송뽀송한 흙이나 미끈미끈한 자갈들이 그대로 보존돼 걷는 길에 맛을 더해 준다. 길의 중간마다 크고 작은 하천들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다. 검은 바위들과 울창한 숲 사이로 비치는 계곡의 풍경은 그야말로 별천지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표고재배장 안내판을 보고 아쉽지만 이번에는 여기서 돌아가기로 했다.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면 지루할 수 있지만 햇빛의 각도에 따라 자연은 또 다른 색깔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푸르름이 더해지고 오면서 길 찾느라 놓쳤던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여유로움까지 더해졌다. 물고기 머리를 닮은 바위, 마치 뱀처럼 나무를 휘감아 오른 나무 넝쿨, 원숭이 얼굴을 한 나무줄기 등등. 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질 즘 황홀했던 환상 숲길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Tip.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은은한 숲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편백나무 숲의 시오름 구간을 지나 전체를 걷고 되돌아오는 것도 좋다. 되돌아오는 길이 부담스럽다면 콜택시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라산 둘레길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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