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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증후군 - 새로 읽는 늙음의 인문
노인증후군 - 새로 읽는 늙음의 인문
  • 의사신문
  • 승인 2018.04.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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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26〉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인문은 인간의 무늬다. 하늘의 무늬[천문]를 연구하는 학문이 천문학이듯 사람의 무늬[인문]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내면의 씨알, 생각이 드러내는 무늬를 살펴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부연하면 글로, 호흡으로, 소리로, 몸짓으로, 걸음걸이로, 손짓으로, 색깔로, 눈빛으로, 양미간의 찌푸림으로 또한 그것들로 육신, 감성, 이성, 지성, 영성을 살펴 강구하는 학문이며 통로다. 의학 역시 인간의 무늬에서 시작하고 완결되는 분야다. 의학적 증상과 징후 역시 몸 안팎의 병적 변화가 드러내는 무늬다. `노인의학(geriatrics)'이라는 용어를 제창한 내셔(Nascher)는 늙음을 `낡은 배와 선원의 가죽 잠바의 낡은 무늬'에 비유하여 기술한 바 있다. 늙음은 노인이 되는 과정이며 동시에 노인이 드러내는 인문이다. 노인의학에선 다양한 노인의 인문들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노인증후군'이란 개념과 용어를 이끌어내어 연구와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노화는 항상성과 그 예비능을 떨어뜨린다. 이에 따라 기관기능의 감소가 생긴다. 여기에 여러 위험인자들과 만성질환 등에 의해 질병다발성, 다약물복용이 보태어진다. 긴 세월 동안 여러 질병에 걸려 어떤 병은 낫고, 어떤 병은 만성화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만성질환은 급성질환과 기능장애에 이환되기 쉽고, 혹시 완전 치유가 되었다고 청·장년기에 판정을 받았던 병이라도 노인이 되어 기능장애로 다시 나타나는 수도 있다. 여기에 노인성 치매를 비롯한 노년기 특유의 질환이 더해지면서 한 사람이 몇 가지의 질환을 함께 갖고 있게 된다. 이를 `질병다발성'이라 한다. 이러한 의학적 요인 이외에도 노인의 4중고[질병, 가난, 역할 상실, 우울과 소외]로 요약되는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이유들 까지 보태어져 얽히고 설켜 노인의 질병은 그 증상과 징후가 애매모호하며 복잡하다. 이러한 까닭에, 현재의 질병분류, 진단, 치료 및 예방 체계로는 그 실마리를 풀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노인병 표현의 특성인 기능쇠퇴를 포함한 노인증후군이다.

일반적으로 `증후군'은 `함께 모여 한 가지 질병분류학적 실재적 특징을 이루는 증상 징후 발현의 합체(合體)'를 일컫는다. 반면에, 노인증후군은 고전적 증후군과 달리 다발성 원인의 병태기전이 상호 영향을 끼쳐 대개 단일 증상을 발현한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노인증후군은 `노인(특히 노쇠노인)에서 잦고 삶의 질에 충격을 주며 실제로 무능(disability)하고 다발적 원인이 관여하는 소견'을 보이면서 딱히 기존의 질병 범주에 넣기 어려운 상태들을 일컫는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노인증후군을 `노인에서 여러 장기의 장해가 축적되어 상황도전에 취약한 다발 원인적 건강상태'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는 여러 원인들이 관여하여 하나의 소견으로 드러난다는 점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질적 요소들과 다양한 특성의 혼합인 노인증후군은 몇 가지 공통 소견을 보인다. 첫째, 노인, 특히 노약한 노인에서 유병률이 높다. 둘째 삶의 질과 기능에 상당한 충격을 준다. 셋째 여러 원인이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노인병학회의 교육위원회는 의과대학에서 흔한 노인증후군(치매, 부적절한 처방, 실금, 우울, 섬망, 의인성 문제, 낙상, 골다공증, 청각 시각 포함한 감각변화, 유지실패, 거동과 보행 장애, 압창, 수면장애)을 필수 교육 내용으로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증후군을 두루 종합 정리하면 수십 가지가 넘을 정도로 그 범주가 아직 불명하다. 노인증후군을 연령 구분하여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주요한 급성질환에 수반되는 증후로 청장년과 비슷한 빈도로 발생하지만 대처방법은 청장년과 달리 별도의 수련이 필요하다. 둘째로 주된 만성질환에 수반되는 증후로 65세 이상의 노인에서 서서히 증가한다. 세 번째는 75세 이상에서 증가하는 증후로 기능의 저하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개호가 필요한 일련의 증후군이다.

노인증후군은 치료와 개호 측면에서 `노인에서 흔하면서 그 원인이 다양하고 치료와 동시에 개호가 중요한 연속된 증상, 소견'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골절은 골다공증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나 뇌혈관장애, 당뇨병에 따른 하지혈관장해, 기립성저혈압 등에 의한 보행불안정과 현기증 등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일단 골절이 생기면 와상상태가 되어 개호부담이 발생한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낙상을 예방하면 넘어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면 골절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낙상'이라는 노인증후군을 핵심으로 예방과 치료 및 개호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일련의 활동은 노인증후군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노인 의료개호의 한 본보기다.

이와 같이 노인증후군은 노인의 질환의 특성을 이해 파악하는 하나의 중요한 개념 용어이며 동시에 노인병의 범주에 속하는 실용적 부분이다. 아직 정의의 표준화, 측정도구의 개발, 경비 고려, 환자의 개념과 의료체계의 변화 추구 등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인증후군은 노인병을 노인병학의 본질에 기초하여 파악할 수 있는 가장 노인의학적 개념이며 아울러 노인증후군은 진단분석의 지침, 교육도구 및 임상적용에 유용한 실용이라는 점이다.

“젊음이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시들게 되어 있는 한 송이 꽃에 불과하다.”고 팻 테인은 적고 있다. 따라서 원래 노인병 치료의 기술이란 병리학적 범주를 넘어 늙어가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힘 -필자는 이를 `늙을 힘'이라 부른다- 으로 욕망을 조절하고 일상의 자리를 변환 조율하여 삶을 재배치하는 인문학적 기법을 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노인증후군을 올바로 읽어내는 참다운 연구 노력은 노인의학의 이론적 및 실용적 정체성을 견고하게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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