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세 9개월. 1483년에 태어난 토마스 파(Thomas Parr)는 1635년 11월 14일 사망하여 다음 날인 11월 15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오래 살기로는 169세를 살아 현대판 므두셀라[필자 주.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969세까지 삶. 노아의 방주로 잘 알려진 노아의 할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젠킨스에 비할 바 없지만 토마스 파는 남다른 삶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 특히 남성들의 상상력을 끌어 `올드 파'라는 스카치의 브랜드 등으로 오래도록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명예로운 평판을 얻은 배경에는 런던의 뱃사공 시인 존 테일러의 기여가 크다. 테일러는 파의 일생을 `늙고 늙고 몹시 늙은 토마스 파의 나이와 매우 긴 삶(The old, old, very old man or the age and very long life of Thomas Parr)'이라는 제목으로 장편 서사시를 썼다. 테일러는 `단순한 시골 환경에서의 평범한 생활과 건강에 좋은 노동'을 파의 장수 비결임을 묘사하며 아울러 그의 도덕적 삶을 노래했다.
“녹색 치즈는 양파와 함께 가장 건강에 좋았다.
거친 메슬린[필자 주. 일반적으로 소맥과 호밀을 2:1의 비율로 섞은 것] 빵,
우유, 버터-우유, 물, 유장[필자 주. 우유가 엉겨서 응고된 뒤 남은 액체] 등
매일 쭉 들이켜기” - 존 테일러
“마늘을 즐겼다 베니스 당밀보다 더
또는 최상급 당과(糖菓)를”- 존 테일러
그는 잠을 매우 잘 잤고, 식이 요법과 관련한 별다른 규칙은 없었고 식사 시각도 규칙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먹을거리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지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나눌 준비가 돼 있었다.
올드 파(Old Parr)는 위대한 노동자였고 평생 절제를 통하여 순전한 남편이며 농부이기를 추구하였다. 130세에 도리깨로 옥수수를 탈곡할망정 선술집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은 생각조차 안했다.
“그에겐 낭비할 여유가 거의 없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쉬고
머리를 번잡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 존 테일러
파가 105세의 나이에 강간 혐의로 복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와전된 것이다. 아마도 마을의 한 처녀가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그 죄를 피하기 위해 생식능력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파를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것이 대체적으로 인정되는 이야기다. 그는 처녀의 간절한 사정을 딱하게 여겨 스스로 혐의를 대신 뒤집어썼고 마을 사람들도 사정을 이해하여 벌을 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신에 교회 기도실에서 혼자 참회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파는 원기왕성했다. 그의 부인의 전언에 의하면 100세 생일 이후에도 부부관계를 했다고 한다.
여든 살에 결혼한 파는 아내 제인 테일러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낳았으나 둘 다 영아기에 죽었다. 따라서 후손이 없다. 그러나 관례에 따라 장수한 사람들을 한 무리의 가계로 간주하여 아들은 113세, 손자는 109세, 증손자 중 한 명은 124세, 증손녀로 일컬어지는 캐서린 파는 103세까지 살았다고 이야기를 엮어 전한다. 아마도 오래 산다는 것의 현실화를 어떻게든 끊이지않고 확인하고 싶어 하는 갈망의 표현방식일 것이다.
사망 당일 챨스 1세는 희귀성을 생각하여 당시 왕 주치의인 윌리엄 하비 (William Harvey)[혈액순환 발견으로 유명하다]에게 부검을 명하였다. 하비는 `머리부터 발뒤꿈치 까지 빨리 그리고 짙게 자라는 타고난 털로 온통 덮여있는' 파의 시신을 부검했다. 그 결과는 `De ortu et natura sanguinis(기원과 혈액의 본질)'에 게재되었다. 모든 내장 기관은 완벽한 상태였다. 명백한 사망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불의의 죽음은 파가 “사방이 트이고 햇볕이 잘 드는 건강한 시골 환경의 샐럽[필자 주. Salop, 영국 잉글랜드 서부의 주]에서 답답하고 폐쇄적인 런던으로 갑자기 옮겨지면서 생긴 변화 때문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부검 결과에 대한 현대 의학적 분석에 따르면, 파의 몸은 70세 미만으로 추정되었다. 의학적으론 152세의 몸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파의 기록이 할아버지의 기록과 혼동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었다. 아니면 늙음은 의학적으로 측량할 수도 판별할 수도 없는 의학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부검 후 올드 파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남쪽에 묻혔고, 1881년에 다시 새겨진 비문엔 이렇게 적혀 있다.
“샐럽 카운티의 토마스 파. 1483년에 태어났다. 열 명의 왕 통치 아래 살았다. 에드워드 4세,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 헨리 7세,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제임스 1세, 찰스 1세. 152세에 여기에 묻혔다. 1635년 11월 15일.”
지금, 그의 묘비석은 마치 실험노트처럼 숫자로 가득 채워져 있고, 수염 가득한 그의 초상화는 슈루즈베리 박물관과 미술관 벽에 스카치 병의 상표처럼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