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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에서 생각한 무소유
불일암에서 생각한 무소유
  • 의사신문
  • 승인 2018.03.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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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83〉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인 법정스님은 입적한 지 8년이 지났어도 아직 우리 가슴에 남아있다.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스님을 생각하면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하여 온 ‘무소유’가 자연히 떠오르고 생전의 말과 글에서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과연 무소유를 진실로 원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은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돈을 좀 더 벌고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다. 어떤 이는 소유물이나 재산을 자기 성취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무소유’에 대하여 보통은 두 가지 형태의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스님의 순수한 마음은 존경하지만 실생활에서 따르지는 않는다.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수도 생활 만 하는 고승에서나 해당되는 가치로 여긴다. 두 번째는 우리가 빈곤할 때 그 말씀을 위안으로 삼아 듣는 것이다. 성경에도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런 말씀에 마음의 평안을 얻고 부자들이 불행하다면 통쾌감까지도 느낀다.

올해 갑상선학회가 여수에서 열렸다. 이 기회에 나는 법정이 머물던 순천 송광사와 불일암(佛日庵)을 방문하기로 했다. 고맙게도 전남대 민정준 교수 부부가 길동무를 해 주었다. 마침 법정스님 기일인 3월 11일의 바로 전날이었다. 불일암은 송광사 소속으로 폐허가 된 옛 자정암 터에 스님이 1975년 중건한 암자이다. ‘부처의 빛’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짓고 장년기에 17 년 동안 기거하면서 많은 글을 쓰고 사회 활동을 했다. 그 이후에는 강원도 산속에 오두막 집을 짓고 홀로 무소유를 실천하다가 지병으로 2010년 열반하였다.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4시가 넘었다. 스님들을 교육 양산하는 3대 승보사찰(僧寶寺刹) 중 하나인 송광사도 보고 싶었으나, 청량각 계곡에서 다리를 건너 바로 불일암으로 향했다. 그만큼 법정스님의 자취가 그리워서였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편백나무 숲을 만났다. 하늘을 향해 수십 미터를 곧고 높게 자라 장관을 이루고, 숲과 저 만치 떨어져 있는 삼나무는 마치 등대처럼 보였다. 진리를 깨달아 삶의 등대가 되는 것이 젊은 날 출가하는 법정의 소망이었다. 법정이라는 승명도 “부디 수행을 잘하여 불법(法)의 정(頂)수리에 서라.”는 효봉 스승님의 기대와 격려였다. 아직도 추운 초봄으로 편백나무 잎은 나오지 않았으나 나무줄기에는 물기가 오르면서 향기와 함께 나날이 변하는 몸통의 적갈색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단다. 산길 1.5 km는 제법 가파라 40분 오르면서도 몇 차례 쉬어야 했다.

마지막 언덕은 우거진 조리대나무 숲 속의 길로 하늘이 가려져 마치 터널 같았다. 컴컴한 이곳을 지나자 피안의 세상인 양 환하게 불일암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각형의 작은 텃밭을 둘러 싼 단정한 14평의 법당, 2칸짜리 아래채와 해우소가 전부이다. 마침 찾는 이 없어 고요한 절간에 묵언(默言)이란 팻말이 놓여있고 오랜 오동나무와 후박나무가 고즈넉하게 지키고 있었다. 키 큰 후박나무는 스님이 평소 좋아하여 말동무도 되고, 여행 후 돌아올 때마다 껴안아 주었다고 한다. 지금 스님은 이 나무 아래 흙이 되어 누워 계신다. 암자 벽에는 스님이 웃는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아래 유명한 빠삐용 나무 의자가 방명록과 기념용 책갈피를 안고 서있었다. 아궁이 군불거리로 쓰고 남은 참나무로 스님이 의자를 손수 만들고 때때로 여기에 앉아 자연을 즐겼다. 빠삐용 의자로 이름 붙인 것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으려는 경각심에서 였다.

이 절은 자세히 살펴보니 잔잔한 장식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샘물 가는 연꽃 모양의 기와 편으로 둘레를 삼았고 법당 앞에는 매화와 파초가 심어져 있다. 온돌을 데우기 위한 장작나무들은 마치 사각형 샌드위치 박스처럼 가지런히 쌓여져 있고 샘물 옆에 방문객을 위하여 검은 탁자와 의자를 마련해 놓았다. 한마디로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여, 정갈하고 고결한 스님의 내면을 형상화 한 듯하였다.

의자에 앉아 찬물을 마시면서 그윽한 절간을 내려다 보니 저절로 사색에 접어든다. 내가 대학생 때 학교 도서관 벽 낙서에서 찾은 마음에 드는 글귀가 있다. “생각은 높고, 생활은 낮게”. 법정스님은 말씀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은 갖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선택한 가난에는 낭만과 멋과 운치와 향기가 있다.”

스님이 말하는 무소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지만 인간의 지성과 감성을 계발하고 즐기는 약간의 여유와 재화도 필요한 것이다. 실제 그에게는 마실 차와 들을 음악, 볼 책만 있으면 족하다고 했다. 남은 여분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들도 인간적 삶을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법정은 말씀하셨다. “본질적으로 내 소유는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가버린다. 나라는 실체가 없는데 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맡아가지고 있을 뿐이다.”

법정스님에게 무소유는 삶의 방법이자 목표인 듯하다. 그러면 왜 무소유로 살아야 하는가? 스님은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에 있음이다. 영원하지 않은 이 한 때를 최선을 다하여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삶은 놀라운 신비와 아름다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유욕과 재화는 우리 정신과 영혼에게 시간적 공간적으로 부담이 되어 참된 삶을 가로막게 된다. 자기 성취와 자아 완성을 위해서는 소유에서 자유로워야 하겠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빠삐용 의자에 놓여 있는 기념 책갈피를 한 개 만 집어 들었다. 방명록에는 아무 말도 적지 않았다. 기일 전날 참배객이 없어 적막하기까지 한 불일암에서 나름대로 무소유를 생각하며 거닐던 시간은 법정스님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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