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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장 황충
노익장 황충
  • 의사신문
  • 승인 2018.03.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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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24〉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나는 장사에서 천자를 따라나서서부터 이제까지 숱한 싸움터를 누비며 있는 힘을 다 쏟았다. 비록 나이 일흔이 넘었으나 아직도 고기 열 근을 먹고, 두 섬을 들 수 있는 자만 당길 수 있는 활을 쏠 수 있으며 하루 천리를 달리는 말을 몰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나를 늙었다 할 수 있겠는가? 어제 주상께서는 우리들 늙은 장수들이 쓸모없다 하시기로 이렇게 특히 싸움터를 찾아왔다. 동오와 싸워 그 장수를 목 벰으로써 늙어도 늙지 않았음을 보여주려 한다.”[`삼국지' 나관중 저/이문열 역]

황충의 말이다.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오의 여몽에게 사로잡혀 죽고, 장비마저 살해당하자 유비는 두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나라 정벌군을 일으킨다. 이때 유비는 관우와 장비의 아들인 관흥과 장포를 선봉장에 임명하며 `지난날 용맹했던 장수들은 이제 모두 늙어 쓸모없고, 젊은 두 조카가 이토록 용맹스러우니 손권 따위를 겁낼게 무어랴!'라며 두 장수를 격려한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황충이 같은 연배의 장수인 오반을 찾아가 격한 음성으로 불편한 심기를 토로한 것이다.

황충은 예전에 제갈공명과 다투듯이 나눈 대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유비가 한중으로 조조를 치러 갈 때였다. 군사를 몰아 나가려는 황충에게 제갈공명이 제동을 걸었다.
“노장군께서 비록 영특하고 용감하나 조조의 하후연은 이기지 못할 것이오. 장군 대신에 관운장을 불러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황충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대꾸했었다.
“옛날에 염파는 나이 여든이었으나 여전히 한 말 밥에 열 근 고기를 먹었으며 제후들은 그 용맹이 두려워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습니다. 이 몸은 아직 일흔도 차지 않았는데 안 될 게 무엇입니까? 군사께서는 이 몸을 늙었다 하시나 이번에는 부장도 거느리지 않고 이끌고 있는 삼천 명의 병사만 데리고 가서 하후연을 목 베어다 바치겠습니다.”[염파는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장이다. 노년의 나이에도 젊은 장군에 못지않은 힘을 지녀 황충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노익장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문경지교(刎頸之交)' 고사의 주인공이다.]

약속대로 하후연의 목을 베어 왔던 황충이었다.
격하게 불만을 쏟아내고 있을 때 마침 오나라 군사가 쳐들어오자 황충은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말에 올라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오군을 향해 돌진하며 오군의 장수인 반장과 합을 겨루었다. 밀고 밀리는 와중에 반장의 계략에 빠져 적병 한 가운데 몰린 상태에서 적의 장수 마충의 화살에 어깻죽지를 정통으로 맞는다. 관흥과 장포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미 늙고 혈기가 잦아들어 상처는 쉬 아물지 않고 점점 병세가 심해져 갔다.' 소식을 들은 유비는 황급히 `몸소 황충이 누운 곳으로 찾아가 그 등을 어루만지며 잘못을 빌었다.'

“이번에 노장군께서 상처를 입은 것은 모두가 짐의 실언 탓이외다. 부디 용서를 바라오.”
그러자 황충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신은 한낱 무부로서 다행스럽게도 폐하를 만나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살았습니다. 더구나 신의 나이는 일흔하고도 다섯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폐하, 용체를 보존하시어 반드시 중원을 평정하시옵소서.”

유비는 자신의 실언을 거듭 사과했고, 황충은 유비를 원망하지 않고 유비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일흔 다섯이었다. 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애석해 했고, 그의 시신을 성도로 보내 후히 장사지내게 했다. `삼국지'는 황충의 삶을 기려 지은 시를 싣고 있다.

늙은 장수라면 황충일세 / 서천을 얻는 데에 큰 공을 세웠네
금쇠사슬로 만든 갑옷을 덧껴입고 / 활의 몸을 쇠로 만든 철태궁을 둘씩 당겼어라
담력과 기운은 하북을 놀라게 하고 /위엄 찬 이름은 촉 땅을 진정시켰네
죽을 땐 머리 눈처럼 희었으되 /오히려 영웅 됨을 스스로 드러냈네
老將說黃忠(노장설황충) / 收川立大功(수천립대공)
重披金鎖甲(중피금쇄갑) / 雙挽鐵胎弓(쌍만철태궁)
膽氣驚河北(담기경하북) / 威名鎭蜀中(위명진촉중)
臨亡頭似雪(임망두사설) / 猶自顯英雄(유자현영웅)

노익장. 老益壯은 老當益壯(노당익장)의 준말이다.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는 뜻으로 `후한서'에 나오는 팔십을 넘긴 나이에 갑옷을 입고 말을 탄 채 큰 공을 세운 명장 마원이 늘 이르던 말이었다. 요즈음엔 `나이는 들었으나 기력이 더 좋아짐' 또는 `그런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예순 가까운 나이에 `삼국지'에 처음 등장하는 황충은 활솜씨가 뛰어났고 용감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 보 거리의 버들잎을 꿰뚫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 용기와 활솜씨가 나이 들수록 더해졌으니 틀림없이 노익장이다. 그러나 진정한 노익장이라 불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숨을 거두어 가며 유비에게 남긴 마음이다.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는 말 속에 `몸뿐 아니라 마음도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스스로 낮추어 감사와 용서로 죽음을 맞아들이는 늙음이 드러내는 마음. 그래서 시인은 `죽을 땐 머리 눈처럼 희었으되 오히려 영웅 됨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노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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