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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훈도(薰陶) -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리워하며
유쾌한 훈도(薰陶) -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리워하며
  • 의사신문
  • 승인 2018.02.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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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21〉
유 형 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시인·수필가

선생님을 봬 온 지 어언 4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거나 사라졌다. 그러나 선생님의 웃음은 변함없이 호방하다. 목욕탕에서 흘러넘친 물의 양이 바로 자신의 몸의 부피와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옷을 입는 것도 잊은 채 `유레카∼! 유레카∼!' 라고 소리치며 집까지 뛰어갔던 아르키메데스의 통쾌함 같은 웃음은 예나 지금이나 너그럽고 시원하다. 이 불변의 비결은 무엇일까. 순전한 유쾌다.

즐겁고 그 느낌이 시원하고 산뜻할 때 유쾌(愉快)라고 한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언제나 가장 알맞은 것이 꼭 필요한 만큼이면 늘 유쾌하다. 항상 공연한 선입견이나 꾸무럭거리는 뒤끝이 없으면 늘 유쾌하다. 속으론 못마땅하고 시시해도 긍정의 에너지로 활짝 웃어 다스리는 인내와 절제가 꾸준히 넘치면 늘 유쾌하다. 순전한 유쾌는 내남없이 즐겁고 기뻐야한다. 그래서, 선생님을 뵙는 일은 늘 유쾌하다.

선생님의 유쾌함은 내분비학을 가르치고 내분비 의사의 길을 가리킬 때 더욱 빛난다. 대학까지 마친 훌쩍 커버린 혈기왕성한 젊은 의사를 최고의 지식과 동시에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한 분야의 전문 의사로 만드는 일이 어디 쉬운가.

특히 어느 분야보다도 의학적 사변(思辨)이 요구되는 내분비대사학에선 훨씬 더 만만치 않다. 사변이 무언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생각으로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일이어서 멀리 아물아물하고 그윽하기 쉬운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가르침은 사변을 넘어선 지고진(至高眞)을 분명하고 상쾌하게 일깨워준다. 막힘없이 전개되는 선생님의 웅숭깊은 학문적 내공이 없이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렇다고 학문적 공력만으론 미흡하다. 다양한 특성을 발휘하는 내분비대사 의사로서의 자세와 삶을 따스한 성품으로 다듬는 선생님의 변치 않는 유쾌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당최 불가능한 일이다.

도자기 굽기 체험을 한 적이 있다. 흙을 반죽하여 물레 성형으로 굽깎기를 하고 애벌 재벌구이를 거친다. 이렇게 열정과 정성을 들여 도자기 굽는 것을 훈도라 한다. 흙을 다져 질그릇을 굽고 만든다는 뜻으로, 사람의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잘 가르치고 길러서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함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학문이나 덕으로써 사람의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치고 길러 선한 길로 나아가게 함이다.

`훈도를 하다' `훈도를 받는다'로 쓰인다. 글자 풀이를 보태면, 훈(薰)은 `태우고 피운다' 또는 향기를 뜻하고 도(陶)는 질그릇을 의미한다. 특히 도(陶)는 구릉[ 언덕 부]에 굴[ 쌀 포]을 파고 그 속에 그릇[缶 질그릇 부]을 굽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훈도는 천 삼백 도 이상의 고온을 견뎌내며 하나하나 구어 내는 가마와 도공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과정이며 결실이다. 지극한 정성에 진정한 열망이 함께 어울려야 마음에 드는 훌륭한 도자기들 - 더구나 같은 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라도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는 - 을 지어낼 수 있다.

가르치는 이는 누구든지 잘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러한 희망을 실현하고자 교수법도 배우고 연습으로 몸에 익혀도 본다. 영국 출신의 하버드 대학 철학교수 화이트헤드가 구분한대로 혼자 지껄이고, 가르치고, 행하는 단계를 넘어 영감을 주는 가르침을 간절히 소망하다가 밤새 강의하는 꿈만 꾸다가 깨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강의, 지시, 지도, 아니면 훈육에 머문다. 전자통신의 발달과 경쟁에 따라 소통이 사라진 탓인지 혹은 빅데이터에 개개인의 다양성이 휩쓸려 없어진 까닭인지, `교육은 배우고 익힌 것을 다 잊어버리고 남는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설파와 서로 통하는 훈도에 이르는 가르침을 대하긴 쉽지 않다. 간혹 훈도를 접할 적이 있지만 지나친 엄숙과 거리감 때문에 가르침의 본디 목적이 이내 흐려져 그 감명이 오래 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생님도 전자통신과 빅데이터의 큰 물결과 전연 무관하지 않으실 텐데도 제자의 미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이미 잡혀 있는 뒤이은 선약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대화를 끊지 않으신다.

눈에 띄는 발전과 때로 머뭇거리는 답답함 양쪽을 가르지 않고 시원한 웃음으로 품어 기뻐하시고 북돋아 주신다. 그렇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지식은 물론 풍요로운 사람 됨됨을 유쾌하게 담고 있다. 그래서 선생님의 가르침은 유쾌한 훈도다.

도공은 도자기를 굽고 도자기는 익는다고 한다. 활활 끓는 가마 아궁이 앞에서 온몸에 흐르는 땀을 통쾌한 웃음으로 식히시며 도자기를 굽듯 후학을 가르쳐 익히시는 선생님의 유쾌한 가르침. 백두(白頭)에 정년(停年)이 포개어질 즈음, 그 가르침이 무진(無盡)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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