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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 도착, 흙길 걷다보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석모도 도착, 흙길 걷다보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 의사신문
  • 승인 2018.02.1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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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2018년 낙가산 시산제 산행기 〈상〉
양종욱 마포 양이비인후과의원 원장

서기 2017년 12월 31일.

항상 그렇듯이 다사다난 했던 한 해, 내 생애 다시는 못 만나게 될 丁酉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우리들과 영원히 헤어지려고 하는 순간에 아쉬운 마음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떠나 보내고,희망찬 무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영부영 살다 보니 벌써 4주가 훌쩍 지나갔다.새해 달력 한 장이 벌써 우리 눈에서 사라지려고 하고 있다. 세월이 빠른 건지 내가 급한 건지 아니면 삶이 짧아진 건지, 세월은 빨리도 간다. 오늘은 서울시의사산악회(서의산) 시산제 산행이 있는 날이다.

귀차니즘에 빠져 있는 나는 평소의 일요일 같으면 잠에서 깨 이불 속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뭉그적거리고 있을텐데, 오늘은 서의산 시산제 산행이 있어 벌떡 일어나게 된다. 게으름의 자유를 박탈당한 거 같아 서의산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게으름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하여  나는 일요일에 나와 함께 하는 나홀로 산행을 자주한다. 그렇다고 그림자 벗을 삼아 길을 걷고,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고, 서산에 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생각하며, 감상에 젖는 그런 낭만주의자는 전혀 아니다.

간단한 외출 준비 후 오늘 나를 눈여겨봐줄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거울 앞에 앉아 있게 된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 모습과 머리카락에서 세월이 스쳐 지나간 흔적을 바라보니,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안타깝기만 하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 조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문득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무르익어 간다는 유행가 가사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잠시 쓴웃음이 지어진다. 내 삶의 잔고가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하루 매순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낭을 메고 집 밖을 나와 보니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남아 있던 잠기운을 확 없애준다. 아파트 단지의 가로등불이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둠이 주는 조그마한 선물일 것이다. 맷방석 같이 둥근 보름달은 아니지만 음력 열이틀의 둥근 달이 온유한 빛을 발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더욱 북돋아준다. 별님도 드문드문 영롱한 빛을 나의 두 눈동자에 던져줘 나의 두 눈을 즐겁게 해준다. 별님이 달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도 칠흑 같은 하늘 위로 휘몰아치듯 굽이진 별무리를 보면서 별자리를 찾아 헤맨 어린 시절이 있었고, 머리 위로 무수히 쏟아지며 초롱초롱 선연히 빛나는 별들을 보며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면서 노래 부르던 젊은 날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추운 겨울날 아침 달님과 별님을 길동무하여 은은한 분위기 속에 길을 걷노라니, 옆에 같이 가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며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는 내 자신 감정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위안이 된다. 지난 주 살을 에이는 듯한 최강 한파도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날씨는 좋을거 같아 오늘 날씨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쓸 신임 노민관 회장님의 마음이 편할 거 같아, 회원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덩달아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지하철 역에 도착하니 역이 어둠에 대비되어 훨씬 밝고 깨끗해 보인다. 지하철과 인천공항은 내가 가본 선진국보다 나은 거 같다. 다른 많은 분야도 발전하여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좋은 미래를 꿈꾸며 활기차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약속 장소인 압구정동에 도착해보니, 신임 노민관 회장, 유승훈 등반대장이 보이고 이번에 새로 서의산 총무라는 십자가를 진 박영준 원장이 보인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 서의산 입회 동기인 박영준 원장이 서의산 총무가 되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부디 박영준 총무가 지고 있는 십자가가 고난의 십자가가 아닌 영광의 십자가가 되기를 바란다. 전임 조해석 회장도 보이는데, 표정이 작년과 달리 유난히 밝다. 서의산 회장 하면서 마음 고생이 많았나 보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으니 앞으로는 40년 넘게 밝고 즐거운 산행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님도 회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오셨는데, 김숙희 회장님은 항상 뵐 때 마다 어쩌면 저 나이에 저렇게 곱고 늘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하루하루 열심히 정열적으로 살아서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럽기도 하다. (이 글이 회장님께 대한 무람없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앙망(仰望) 합니다) 그외 많은 낯익은 얼굴들과 살가운 인사를 나누다 보니 차가운 날씨 속에 따뜻한 기운이 몸속에서 기지개를 편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늦게 오신 선생님들이 있어 7시7분에 석모도로 출발한다. 오늘 우리가 가게될 석모도는, 돌투성이인 산자락의 모퉁이로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돌모로가 한자로 석모도(席毛老)로 표기되어 석모도가 되었다고 한다. 해명산, 상봉산, 성주산 세개의 산이 솟아 있다 하여, 행정구역 상 삼산면으로 표기되고, 주민들은 삼산 산다고 한다. 보문사가 있는데, 남해 보리암,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3대 해상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고, 민머루 해수욕장이 있고, 서해 3대 낙조 명소이다. (여수 향일암을 더해 4대 해상 관음 성지라고 하며, 일반적인 3대 관음성지는 설악산 봉정암, 팔공산 갓바위, 남해 보리암이라함) 차창 밖으로 어둠이 가시고 새날이 밝아 오는 여명이 신비한 고요로 서서히 대지의 옷을 벗긴다.

일요일 아침이라 차들도 막힘 없이 신나게 달리고 있다. 내 마음도 신나게 석모도로 달려간다. 약 50분 후에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도를 가로질러 20분 후 작년 6월28일 개통된 석모대교를 지나 석모도를 가게 된다. 바다가 얼어 있는 게 이번 한파가 대단한 거 같다. 섬이 뭍으로 된 것이다. 세상 참 편리해졌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여객선을 타고, 뱃전에 기대어 서서 지근 거리에서 바다를 보며, 갈매기가 하늘에서 날고 바다 위에서 춤추며 노는 것을 보는 낭만, 가게될 섬을 보며 기다리는 느긋한 여유가 사라져서 아쉽기도 하다.

5분 후 오늘 산행 들머리인 석모도 전득이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2018년 1월 28일의 시절 인연이 석모도에 있다고 생각하니 석모도가 정겹다. 도사영지(倒사迎之)라고 하는데, 석모도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로 우리를 맞이해 준다. 햇님도 어느덧 하늘 높이 올라가 있고, 비행기도 빠르게 지나간다. 전임 조회장님 인사 말씀이 있고 이어서 신임 노회장님 말씀이 있었는 데, 작년 보다 말씀에 무게감이 있는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겠지만, 지난 4년간 서의산 총무,등반대장 하면서 서의산에 지극 정성을 쏟아부어 내공이 쌓인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저 자리에 있어도 저렇게 무게감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유승훈 등반대장이 간단하게 산행 일정을 소개한다. 인물이 훤하고 몸매가 좋아 검정 바지에 빨간 등산 자캣이 아주 잘 어울린다. 기념 촬영 후 8시50분 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나무데크 계단을 잠시 오르니 흙길이 나온다. 산자락과 등로에 눈이 다녀간 흔적이 있고, 나무들이 여름 그 무성했던 녹색 왕자의 늠름한 자태며, 가을 그 눈부시게 화려했던 황금 빛 황제의 우아한 용모는 온데 간데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체 말 없이 찬 바람을 맞고 있다. 전형적인 겨울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애써 키운 것도
나눠 주고 나니,
몸무게 가벼운 풀
몸무게 가벼운 들판
몸무게 가벼운 나무
겨울은 몸무게가
가볍다

누군가는 겨울을 버리고,비우고, 기다리는 계절이라고 읊조렸고 누군가는 생명이 움트는 4월은 잔인한달,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하는 겨울이 차라리 따뜻하다고 하였지만, 내 눈에는 여름과 가을에 걸쳤던 옷을 미련없이 훨훨 벗어 버리고 하얀 눈이 내려와 하얀 옷을 입혀주기를 기다리는 앙상한 가지들이, 사랑하는 님 그리는 아낙네와 같아 애닯기만 하다. 지금이라도 하늘 나라에서 사랑의 편지인 하얀 눈이 펄펄 내려 화사한 눈꽃을 피워 주었으면 좋겠다. 봄날의 벚꽃마냥.

흙길을 걸어 가다 보니 대지의 정기를 받았는지 80kg 가까이 나가는 육중한 몸의 걸음 걸이가 사뿐사뿐 가벼워진다. 도시인, 현대인이란 미명하에 아스팔트와 보도블록과 시멘트와 서로 키 재기를 하는 고층 빌딩과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에 둘러쌓여, 삶의 숨결을 잃은 체 각박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흙을 밟으면서 생명의 원천인 대지의 정기를 받으며 나무와 꽃과 새들을 친구삼아 길을 가고, 들녘과 산마루를 보며 아직은 덜 허물어진 자연을 접하고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등산이 주는 축복이고 은혜일 것이다.

약 7분 정도 올라가니 몸에 조금씩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두개의 의자가 있어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쉬어 가라는 친절을 베풀어 준다. 한개가 아닌 두개의 의자가 왠지 푸근해 보인다. 5분 정도 숨가쁘게 올라가니 조망이 탁 트인다. 강화도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지는데, 노구산, 진강산, 혈구산, 고려산, 별립산, 마니산 등이 보이고 멀리 김포의 문수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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