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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학회 만찬에서 느낀 것
스페인 바르셀로나 학회 만찬에서 느낀 것
  • 의사신문
  • 승인 2010.05.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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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수<송파ㆍ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

▲ 전현수 원장
2000년 봄 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유럽지역 정신치료학회가 있어 내가 소속한 학회에서 혼자 참석했다.

학회 어른을 모시고 가지 않으니 아주 자유로운 기분으로 학회에 참석하여 학술 발표도 듣고 바르셀로나 관광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서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았다.

피카소가 바르셀로나에 오랫동안 살았던 인연으로 지어진 피카소 박물관도 두 번을 다녀왔다. 미술을 잘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피카소 박물관을 두 번이나 간 것은 피카소에 대해 잘 알수 있게 박물관이 잘 꾸며져 있어 재미도 있고 배우는 것이 많아서였다.

피카소가 어릴 때부터 그린 그림과 작품이 나이별로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11살 때인가 그린 인물화가 나에게는 대가가 그린 작품으로 느껴졌다. 아주 정밀하고 그림이 주는 느낌이 대가의 그림에서 풍기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렇게 정밀하게 그릴 수 있는 미술의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 새로운 사조인 인상파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지 않나 싶었다. 피카소박물관에서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것은 피카소가 그린 인상파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그 과정이 소개가 되어 있었다. 피카소가 그린 어떤 인상파 그림의 실제 모델의 사진이 찍혀있고 그것이 피카소의 눈을 통해 그리고 작품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하는 것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피카소 못지않게 아니면 더 유명한 사람이 가우디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인 실제 은행, 여러 용도의 건물이 도심에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가우디의 작품으로 조성된 공원도 있어 가 보았다. 가우디가 설계하여 짓고 있다가 가우디가 사망하면서 건축이 중단됐다가 다시 짓고 있는 성당도 아주 유명한 명소가 되어 있었다.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도 가보고 스페인 여자 아이들 모두가 영화배우 같이 멋있는 것도 보면서 일주일 정도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학회 마지막 날 환영 만찬은 바르셀로나가 항구 도시라 배에서 진행됐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때 느낀 것이다.

먼저 배의 밑 부분에서 식사를 하고 난 뒤 모두들 갑판으로 올라가 마련된 좌석에 앉아 스페인 뱃노래인지 바르셀로나 뱃노래인지 잘 모르지만 악단들이 부르는 뱃노래를 들었다.

배 머리쪽에 설치된 무대에 7∼8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몇 사람은 아코디언, 기타, 그리고 스페인 민속악기처럼 보이는 악기를 연주하고 나머지 다섯 사람 정도가 청중들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참 듣기 좋았다. 특히 한 사람이 우리 청중의 눈을 끌었다.

나이도 지긋 하신 분인데 노래를 아주 뛰어나게 잘 불러 다른 노래 부르는 사람과 비교가 될 정도였다. 아마 젊었을 때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그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쳐다보았다. 노래가 참 듣기 좋아 노래를 잘 모르는 나도 노래를 듣는데 빠져들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사건이 발생했다. 5명 정도 노래만 부르는 가수 중에 노래 실력이나 나이면에서 2인자로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무대에서 우리가 있는 객석 쪽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그 날 파도가 좀 있었는데 멀미를 한 모양이다.

악단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큰 사고가 난 것이다. 한 사람 빠진 것을 보충하느라 나머지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 해 노래를 불렀다. 아까 말한 왕년의 스타 가수도 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다른 멤버들도 온 힘을 다해 빠진 사람의 공백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2인자 같은 사람이 빠지고 난 뒤부터는 그 전의 흥겨운 노래가 더 이상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하는 데도 불구하고 맥이 빠진 노래가 됐다.

지리한 시간이 흘렀다. 참석자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도 하고 무대를 쳐다보기도 하면서 산만한 가운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대략 30분인가 40분후에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와 노래를 불렀다. 그랬더니 그런 일이 있기 전 노래로 돌아갔다. 단지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그 사실 하나로 그 전의 노래로 돌아간 것이다.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누가 아주 강하고 뛰어나면 그 사람의 영향으로 조직이나 집단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 하나 하나는 자기 소리를 낸다는 것을 여기서 느꼈다. 아마 2인자 뿐만 아니라 어떤 누가 빠졌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무리 미미한 영향을 준 사람이 빠져도 똑 같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경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 일을 경험하고부터는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은 예술이든 작업이든 학문적인 것이든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람들 각각이 자기 소리를 내고 그 소리들이 모여서 전체의 소리가 된다고 느껴졌다.

내가 더 많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내 소리는 약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된다. 누구도 낼 수 없는 각자가 가진 각자의 소리를 내어서 전체의 소리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유사한 경험을 했으리라 믿는다.

전현수<송파ㆍ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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