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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3번 작품번호 113 〈바비 야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3번 작품번호 113 〈바비 야르〉 
  • 의사신문
  • 승인 2018.02.0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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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26〉 

■나치의 `바비 야르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증언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9월 19일,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바바로사'라는 작전명으로 소련에 침공한 독일군은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 입성했으나 시가전으로 수많은 독일병사가 사망했다. 이 사건은 소련 KGB의 소행이었지만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고 판단한 나치 친위대는 키예프 외곽에 있는 바비 야르에서 이틀 동안 3만 4천여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이 학살은 나치의 가장 규모가 큰 학살로 용서받지 못할 범죄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사건을 주제로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내 반유대주의에 대한 경고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베이스 독창과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는 반 스탈린적인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가 1961년 발표한 `바비 야르'라는 시를 텍스트로 삼기로 했다. 소련의 현실을 비판하는 시를 접한 작곡가는 자신의 의도를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명료하고 직접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는 교향곡 첫 악장에 `유대인 혐오자들 앞에 선 나는 유대인이다'라고 적었다. 또한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와의 대화에서 〈바비 야르〉에 대해 “사람들은 옙투셴코의 시가 발표되기 전부터 바비 야르를 알고 있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지만 시를 읽는 순간 침묵은 깨졌다. 예술은 침묵을 파괴하는 법이다”라고 술회하였다.

이 교향곡은 러시아어의 자연스러운 악센트와 남성 성악가들이 자아내는 무거운 분위기를 띠면서 특히 베이스 독창이 표현해내는 강한 어조의 웅변과 날카로운 표현,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처절한 효과, 현악군의 심원한 선율 등은 시의 메시지와 클라이맥스를 극대화시켜 현실에서 겪고 있는 무서운 진실을 표현하였다. 이 곡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거창한 이념이나 형식적인 정쟁이 아닌, 바로 러시아의 휴머니즘을 지키는 것으로 성악이 더해진 교향곡이라는 형식은 조직적이고 반도덕적인 억압과 폭력을 고발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수단이었다. 원래 성악이 가세한 단악장의 교향시로 구상했지만 첫 악장을 완성한 후 옙투셴코의 다른 시 세 편을 추가하여 합창을 수반한 여러 악장의 교향곡으로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옙투셴코에게 `두려움'을 위한 시를 새로 써 달라고 요청하여 결국 총 5악장으로 구성했다.

소련 정부는 1962년 12월 키릴 콘드라신의 지휘로 모스크바음악원에서 초연이 이루어지자 유대인에 대한 옹호와 관료주의에 대한 조롱이 담긴 작품이라며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이 행사를 무시해버린 채 `어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3번이 연주되었음'이라는 단 한 줄의 기사만을 내보냈다. 그러나 마지막 시의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누가 저주를 퍼부었는지는 잊혔으나, 누가 저주를 받을 것인지 우리는 기억한다.” 결국 초연 당시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퍼부은 청중에 의해 작곡가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제1악장 Babi Yar. Adagio 나치에 의해 바비 야르에서 학살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를 바탕으로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여러 역사적 사실이 나오고 반유대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았다. 극적이면서도 러시아적인 분위기이다. 그의 〈영국 시에 의한 여섯 개의 로망스〉 중 세 번째 곡 `처형 직전의 맥퍼슨의 고별 장면'의 주제가 종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등장하면서 합창의 비극적인 절규는 교향곡 제11번의 군중과 황제 호위대의 충돌 장면을 연상시킨다.

△제2악장 Humour. Allegretto “차르, 왕, 황제와 같은 세계의 통치자들은 사열을 명령할 수 있지만 유머는 명령할 수 없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면서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뒤틀린 풍자와 아이러니컬한 유머, 희화적인 군대 행진곡 리듬이 빛을 발한다. 스탈린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뇌하던 예술가이자 인본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3악장 In the Store. Adagio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과 가정에 충실했던 러시아 여인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그리는 동시에 이들을 속이고 탄압하는 국가의 위선적인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호른의 긴 유니슨과 하프의 무표정한 스타카토, 현악군의 음울한 음조를 바탕으로 베이스와 남성 저역 합창의 담담한 노래가 곡의 탄식조적인 성격을 더욱 배가시킨다.

△제4악장 Fears. Largo 침잠하는 분위기와 강력한 음향적 효과로 가장 큰 두려움이 내부에 있음을 역설한다. 튜바의 음산한 울림이 짙게 깔리며 남성 합창이 “공포는 러시아에서 소멸되어 간다”라는 시를 노래 부른다. 특히 행진곡에 맞춰 합창이 나오며 종소리와 함께 베이스의 웅변과 오케스트라의 약진이 펼쳐지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이 곡의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이다.

△제5악장 Career. Allegretto 플루트 듀오로 목가적인 멜로디가 그로테스크하게 제시되고 폭풍이 지난 뒤 다시 햇살이 펼쳐진다. `갈릴레오'라는 단어가 패러디로 등장하면서 현악과 바순을 비롯한 목관악기들, 드럼, 현악 피치카토가 차례로 빈정거리는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냉소를 띤 클라리넷이 절망적인 비웃음을 묘사하고 현악은 단념하는 듯 자장가를 연주한 후 마지막으로 오르골을 연상케 하는 첼레스타의 구슬픈 선율과 허무한 종소리가 퍼지며 끝을 맺는다.

■들을 만한 음반 : △키릴 콘드라신(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Melodiya, 1967) △마리스 얀손스(지휘), 바이에른 방송심포니 오케스트라(EMI, 2005)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지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Teldec, 1988) △엘리야후 인발(지휘),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Deno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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