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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義人)의 조건 
의인(義人)의 조건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8.02.05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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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하는 `제네바 선서(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의사는 사전적 의미로 `병을 고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선서처럼 환자를 위해 봉사하고 치료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사실 의료인들이 이런 사명감을 지키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구나 목숨이 하나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서운 질병으로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환자'를 최우선으로 한다.

39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일부 의료진들이 사망했다. 이들은 화재로부터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더 대피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 하고 있다.

의료계를 포함해 국민들 가운데에는 `이번 화재로 사망한 의료인들을 의사자(義死者)로 선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뿐만 아니라 SNS에도 관련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인으로서 자신의 직무에 따른 구조행위를 하다 사망한 것'이라며 의사자 선정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여기에 경찰은 병원 경영진 뿐만 아니라 화재 발생 당시 근무 중이던 의료인들에게까지 환자 구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태세다.

의료인의 목숨이 `파리목숨'보다 못하다는 것일까.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것이 의사의 직업이지만, 지금 당장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 `내 몸 던져 남을 구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더욱이 고(故) 민현식 의사는 세종병원 직원도 아니었다. 그는 화재 발생 때 마지막 순간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1층부터 5층까지 뛰어다니며 `대피하라'고 소리치다가, 결국 화염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응급실 문 앞에서 발견됐다.

이런 사람이 의인(義人)이 아니면, 의사자 선정이 어렵다면, 누가 그 대상이 되는 것인가. 자신의 희생으로 환자들의 목숨을 구한 의료인들을 의사자로 선정해 이들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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