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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기] “석모도 산행, 짧았지만 값졌다”
[동행 취재기] “석모도 산행, 짧았지만 값졌다”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8.01.31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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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대 기자, 서울시의사산악회 '2018년 시산제' 현장을 가다

옛 선조들은 산이 불멸과 원형적 회귀성을 갖는다고 했다. 또한 모든 것을 끌어안는 수용자로서의 의미도 내포한다고 한다. 노장철학의 자연귀의 사상이 그것이며 현실초월의 경지가 이를 잘 나타낸다. 즉 산행을 통해 우리는 욕망과 허상의 내면을 털어버리고 자아를 냉정하게 성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년 첫 달의 목표가 어느새 기억의 문턱으로 넘어서는 1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산행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원들의 산행모임이 있었다. 목적지는 강화도 석모도 해명산과 낙가산 일대, 7시가 다가오자 회원들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출발 장소인 압구정으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만큼 자연스럽게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서로 담소를 나눴고 약속시간이 되자 버스는 강화도로 출발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잠시 눈을 붙이기가 무섭게 도착을 알리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모두 잠에서 깼고 곧장 버스에서 내려 잠시 기념촬영을 한 후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 산행의 첫 목적지인 해명산(海明山)은 강화군 석모도 한가운데 위치한 산이다. 그 늠름한 자태가 으뜸이라고 불리며 강화의 6대산 중 하나로 꼽히는 석모도의 주봉이다.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 해명산은 산 내음은 물론, 강화도 일대 서해바다의 정취까지 느낄 수 있어 자연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에게는 최고의 산이라 꼽히는 곳이라 한다. 산세도 너무 험하지 않고 산행이 수월해 남녀노소 누구에게도 사랑받는다.

목적지를 향하는 발걸음이 처음 다다른 곳은 전득이고개였다. 옛날에는 이 곳을 전다기고개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전(全)씨 집성촌이었던 주변 일대의 영향이었으리라.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고개를 돌아 해명산 중턱에 도착했을 때부터 산세의 위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햇살을 받으며 조금씩 드러나는 눈 덮인 굵은 산자락들을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천천히 가빠오는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쉴 겸 눈을 감고 멈춰서니 여기저기서 산악회를 반기는 새들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서울의 아침에서는 누릴 수 없는 감미로운 호강이었다. 그렇게 산 정상에 오르니 마니산과 매음리의 염전과 더불어 일대의 작은 섬들이 더 작게 내려다보였다. 마치 세상을 발아래 거느렸던 진시황제라도 된 듯, 묘한 기분에 잠시 사로잡혔다.

다시 발길을 돌려 방개고개와 새가리고개의 시원한 능선을 지나 낙가산(落袈山)으로 향했다. 낙가산은 이름부터 독특했다. 낙가산은 ‘두르다’라는 뜻의 낙(落)과 어깨에 걸쳐 입는 승려의 옷인 ‘가사’를 뜻하는 가(袈)가 합쳐져 승복 가사를 두른 산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낙가산에는 ‘보문각’이라는 큰 절이 자리 잡고 있는데 때문에 평상시에 사찰 신자들도 곧잘 이 산을 찾는다고 한다.

이름의 뜻을 알고 나니 낙가산 중턱 능선 위로 보이는 구름이 마치 스님이 걸친 가사처럼 새삼 친근해 뵀다. 산 높이는 낮지만 길게 이어지는 산자락에서 서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 힘들기보단 마음과 몸이 여유로워지는 산행이었다. 산악회 회원들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낙오되는 이 한명 없이 서로를 챙겼고 찬 겨울 공기가 무색해 질만큼 진한 우정의 땀을 함께 흘렸다.

절고개까지 지나니 널찍한 공터가 나왔다. 하나둘씩 공터 한편에 자리를 잡고 각자 산에서 겪은 무용담을 쏟아냈다. 곧이어 돼지대가리가 상위로 올라오고 두툼한 돈뭉치가 물려졌다. 한해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짧은 시산제로 모두의 우환과 걱정을 털어 보냈고 덩달아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터벅터벅 모두 하산했다. 아침과 다르게 하산할 때의 산은 고독한 성찰의 시간을 선물했다. 산에 오르며 한껏 부풀었던 감정들을 접어둔 채 스스로 지나온 삶에 대한 깊은 반성과 또 다시 살아나갈 미래에 대한 깊은 고뇌를 통해 새롭게 열리는 세상과 마주하는 듯 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이 끝나고 모두 아쉬운 작별을 고했고 버스는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성부 시인의 시 하나가 떠올랐다.

산을 가자.
우리를 모래처럼 부숴버리기 해 가자.
산에 오르는 일은 새롭게 산을 만나러 가는 일.
만나서 나를 험하게 다스리는 일.
더 넓은 우리 하늘
우리가 차지하러 가고
우리가 우리를 무뜨려
거듭 태어나게 하는 일!
산을 가자.
먼발치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몸 비비러 가자.
온몸으로 온몸으로
우리 부서지기 해서 가자.

-산中-


이 시에서 시인은 산에 오르는 목적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산에 오른다는 것이다. 이날 산에 오른 회원들의 목적은 저마다 달랐겠지만 그 목적과 이유 모두 값졌으리라. 2018년 무술년 첫 석모도 산행, 짧았지만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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