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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룰드브루그 시나리오 - 덮어 놓고 오래 살기
스트룰드브루그 시나리오 - 덮어 놓고 오래 살기
  • 의사신문
  • 승인 2018.01.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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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18〉 
유형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시인·수필가 

걸리버는 환호하며 소리친다. “모든 아기들이 적어도 한 번은 불멸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이 나라는 얼마나 행복한가! 고대의 미덕이 살아있는 모범을 이토록 많이 모신 민족, 지나간 모든 시대의 지혜를 가르쳐줄 준비가 된 스승을 이토록 많이 가진 민족은 얼마나 행복한가!”그는 감탄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비할 바 없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바로 저 탁월한 `스트룰드브루그(Struldbrugg)' 들, 즉 불멸의 사람들'이라고 부러워한다. 그리고 “나를 기꺼이 받아준다면, 저 탁월한 존재들인 `스트룰드브루그' 들과 대화하면서 여기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소망한다. 그의 꿈은 이어졌다.

“만일 내가 운이 좋아서 스트룰드브루그 즉, 불멸의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 절약과 재산관리를 통해서 재산을 축적하다 보면 적어도 200년 안에는 이 왕국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도 된다. 그 다음에는 젊은 시절의 초기부터 각종 예술과 학문에 몰두하여 언젠가는 이 방면에서 그 누구보다도 학식이 뛰어나게 될 것이다. 끝으로 사회적·국가적 모든 조치와 주요사건을 잘 기록하고, 여러 대에 걸친 군주들과 위대한 각료들의 성격을 관찰하여 공정하게 묘사할 것이다. 그리고 관습, 언어, 유행, 복장, 식생활, 오락의 각종 변화를 정확하게 기록할 것이다. 이렇게 축적된 지식에 의해 나는 지식과 지혜의 살아 있는 보물창고가 되고, 틀림없이 이 나라의 예언자가 될 것이다.”(`걸리버 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저/이동진 역)

그러나 여러 스트룰드브루그를 만나 그들의 삶을 차차 알고 나서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번영과 건강이 따르는 영원한 젊음을 선택할 것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노년기에 흔히 수반되는 모든 불이익을 감당하면서 어떻게 영원히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30세가 될 때까지 목숨이 유한한 일반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30세부터 80세까지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우울해지고 의욕을 한층 더 상실했다. -- 이 나라에서는 80세를 살면 가장 오래 살았다고 치는데, 그들이 80세가 되면 평범한 노인들의 모든 어리석음과 쇠약함뿐만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무서운 사실에서 파생되는 많은 결함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독선적이고, 화를 잘 내고. 탐욕스럽고, 침울하고, 허영심이 많고, 수다스러울 뿐만 아니라, 우정을 품을 수 없고, 모든 형태의 자연스러운 사랑이 완전히 결핍되어, 자기 손자들보다 어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정도 사랑도 전혀 베풀지 않았다.

그들은 시기,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욕망들에 주로 좌우된다. 그들이 가장 심하게 시기하는듯 보이는 것은 젊은 세대의 악습과 늙은이들의 죽음이다. 젊은 세대의 악습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때, 그들은 쾌락을 누릴 가능성이 자기들에게는 전혀 없다고 깨닫고, 장례식을 볼 때마다 자기들은 거기 도달할 희망조차 품을 수도 없는 안식의 항구로 다른 사람들이 떠나갔다고 탄식하고 불평한다.

그들은 젊은 시절과 중년기에 배우고 관찰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한다 해도 그것은 대단히 부정확하다. 어떠한 일이든 그 진상이나 세부적 내용에 관해서는 그들의 기억력보다 일반적인 전통에 의존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그들 가운데 가장 덜 비참한 사람은 노망이 들어서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다른 `스트룰드브루그' 들의 수많은 고약한 특질이 별로 없기 때문에, 동정과 지원을 더 많이 받는다.”(위와 같음)

무디는 고령사회를 가늠하여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다. 질병상태는 어떻든 그저 수명만 길어지기, 질병을 억제하여 질병에 의해 삭감되는 수명을 되찾기, 건강하게 오래 살기, 늙지 않고 영생하기. 이 중에서 첫 번째 시나리오를 `스트룰드브루그 시나리오'라 부른다.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1990년 이후 2040년까지 매10년마다 노인인구비율이 2.1 퍼센트 포인트에서 8.0 퍼센트 포인트 이상으로 더욱 가파르게 급증해왔고 할 것으로 예측된다. 빠른 고령화는 의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노인 인구 증가를 강제로 줄일 순 없다. 고려장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황혼의 반란'에 나오는 노인배척운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힘들고 벅찰지라도 질병 치료와 예방을 통한 건강 장수, 출산 장려로 노인 인구 비율 줄이기 등의 방안들이 연구,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대책들이 노인차별 우려까지도 해소시켜 줄 순 없을 것이다. 근 2300년 전에 팔십오 세를 누린 스토아 철학자 카토(Marcus Porcius Cato, 기원전 234 ∼ 기원전 149년)가 이미 했던 우려.

“팔백 살을 산다면 여든 살을 살 때보다 그 늙음이 사람들에게 덜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갔다 해도 흘러간 세월이 위안이 되어 어리석은 자의 늙음을 가볍게 해 줄 수는 없지.”

스위프트만큼 스트룰드브루그의 우려를 잘 아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스트룰드브루그를 만나보는 게 제일 낫겠다고 여겨 풍자적 여행기로 남기지 않았을까.

그의 의도대로 스트룰드브루그를 만난 이들은 시에나의 성인 베르나르디노(Bernardino)의 말을 떠올릴 게 분명하다. “당신네는 오래 살고자 했고, 오래 살기를 원했으며, 오래 살지 못할까 걱정했소. 이제 오래 살게 되자 당신네는 불평하오.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늙으려고 하지는 않는군.”

진료실 안의 한 노인병 의사도 스트룰드브루그를 만나 세상에 열중했던 스위프트의 용기를 얻어 입을 뗀다. “늙음이 엄연히 지니는 평범하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한 속성들을 아름답게 옹호할 용기와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어야 노인병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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