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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엽풍란이 움직이다<24>
소엽풍란이 움직이다<24>
  • 의사신문
  • 승인 2010.05.0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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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지 이틀이 지나면서 보라색이 사라지고 있는 재스민 꽃송이
4월 중순 부쩍 자라 올라온 나도풍란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향이 사무실을 휘감는데. 창밖엔 온 천지가 싱그러운 초록입니다.

꽃대 둘을 올려 20여송이의 꽃을 피운 나도풍란은 한 주일동안 함께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화젯거리였습니다. 어쩌면 향이 이렇게 좋을 수 있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봅니다.

지난 해 꽃대 올린 나도풍란을 함께 근무했던 직원에게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도통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며칠 전 그에게서 소식이 왔습니다. 사무실이 향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해군 천안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애도하느라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고,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의 입원기간이 두 달이 넘어가고 있어 도통 즐거울 일이 없을 듯했는데 풍란 하나로 위안을 삼아 4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4월이 가기 전에, 저 꽃이 시들기 전에, 저 향이 희미해지기 전에 나도풍란을 누군가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임자가 나타났습니다. 평소 화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라 생각해 혹시 거절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주말 지나서 가져가겠다고 하시는군요. 또 한 사람이 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렇게 대옆풍란이 간지 한 주일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안방과 거실에 제법 맑은 향이 짙게 떠돌고 있겠지요. 한 주일쯤 더 지나면 꽃이 시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해 주실 것이고 며칠 더 지나면 꽃대를 어떻게 잘라내야 하는지, 물은 어떻게 주면 좋은지, 어디다 두어야 잘 자랄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겠지요.

대옆풍란이 있던 자리엔 재스민 화분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아직은 나무가 그리 튼실하지 않아 꽃은 많이 달리지 않았습니다만 나도풍란 못지않은 독특한 향을 가졌습니다.

꽃을 본 동료직원들이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보라색 꽃과 흰색 꽃이 섞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재스민을 좋아하게 된 것도 사실 그 때문입니다. 어떻게 두 가지 색의 꽃을 피울 수 있는지…

그런데 키우며 그 비밀을 알았습니다. 재스민은 처음 피어날 때는 보라색을 띱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보라색이 조금 사라지고, 또 하루가 가면 희미하게만 남습니다. 그렇게 보라색이 사그라짐과 함께 향도 줄어듭니다.

재스민도 키우기가 그리 어려운 화초는 아닌 듯합니다. 겨울에 얼지 않을 만큼 차게 하고 물만 적당히 주면 4월에 좋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적당히 물주기가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가끔 한 번씩 잎을 관찰합니다. 잎이 시드는 듯 보이면 그 때 흠뻑 물을 줍니다.

난이든 재스민이든 잘 키울 생각이 있다면 제일 필요한 것이 관심입니다. 관심이라는 것이 비단 화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부모님, 아이들, 아내, 친구와 동료에게도 관심은 필요합니다. 다만 적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적당한 물주기와 적당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난마다, 재스민마다, 사람마다 놓인 환경이 다르므로, 키우면서, 살아가면서 겪으면서 알아가는 수밖에요. 너무 늦지는 말아야 하겠지요.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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